친구같고 연인같은 삶의 선율
- 색소폰의 세계
글 | 김재영_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팀 과장
올해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국정감사기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석유산업에 관한 관심은 뜨겁고 국정감사 기간 내내 이어진 늦은 퇴근에 잠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침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침대에서 일으켜 또다시 버스에 몸을 싣는다. 오늘도 아침부터 제대로 한번 앉아 쉬어보지도 못하고 국회의원회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계는 밤 열두시를 가리킨다. 늦은 귀가길 마지막 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 빈자리를 찾아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Eric Marienthal의 ‘Newyork state of mind'가 흘러나온다.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색소폰의 음색에 빠져들며 기억은 대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입학선물을 해주시겠다던 고3시절의 부모님의 약속에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알토색소폰 한 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내게 색소폰은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유명 연주인의 음반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그들의 연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가 어떤 모델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색소폰과 음악은 내 전부가 되어갔고, 점점 나 자신은 현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진로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진로를 바꾸겠다는 나의 고집에 부모님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나의 고집도 대단했지만 부모님의 설득도 끝이 없었다. 휴학을 하고 군에 다녀오고 난 이후까지도 평행선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온 나라를 덮친 IMF 사태의 한파는 우리 가정도 비껴가지 않았다. 지금껏 당연하게 누려왔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빼앗아 가버리는 무서운 현실에 정신이 퍼뜩 들었고, 그때서야 내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다시는 허튼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그렇게나 아꼈던 내 첫 색소폰도 팔아 없앴다. 하지만 자아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음악이 없는 일상은 무미건조하고 아무 의미가 없었으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였다. 결국 다시 색소폰을 구입해 순수한 취미로서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미 음악과 색소폰은 내게 힘들고 외로울 때엔 위로와 용기가 되고 즐거움은 함께 나누는 친구 같고 연인 같은, 또 보호자 같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음악과 색소폰을 나의 동반자로 삼아 지내왔다. 지금까지도 몇몇 마음 맞는 후배들과 밴드를 만들어 함께 연습도 하고 공연장을 빌려 공연도 하면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지낸다. 고단한 일상에 지쳐도 무대 위에 서있을 때만큼은 난 세상 최고가 된다. 화려한 조명,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넘쳐흐르는 아드레날린..
어느새 버스는 집 앞 정류소로 들어선다. 이미 현실로 돌아왔지만 내 몸엔 아직도 아드레날린이 흘러 다닌다. 기분 좋은 상상의 개운한 뒷맛이 남아있다. 아직 예정된 공연까진 석 달이나 남아있다. 내일은 또 고단한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오늘 밤 나는 무대 위의 행복한 나를 상상하면서 누구보다도 편안한 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냥 만족스럽지만도 않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나 접대가 잦은 업무 특성상 규칙적인 여가시간을 활용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변변한 학원 한 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기에 체계적인 레슨을 받아보고 싶어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그나마 세를 주고 공동연습실을 마련한 후로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자유롭게 연습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만, 직장인들에게 취미생활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풀고 스스로 성취감도 느껴가면서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는 평상시에 흔히 접하기가 쉬운 악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가요를 듣다 보면 색소폰의 선율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팝스 오케스트라에서도 빠지지 않는 악기가 색소폰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신비롭고 멀게 느껴지는 악기, 그것이 색소폰이다. 색소폰은 초보자들에게 배우기 호락호락한 악기는 아니다. 그 도도함 또한 색소폰의 매력중의 하나이다. 색소폰을 접해보고자 하는 이들이 색소폰을 취미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고자 한다.
모든 악기가 그렇겠지만 색소폰 또한 기초가 중요하다. 제대로 학원 한 번 다녀보지 못한 나로써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는 학원에 등록하거나 개인레슨을 통해 기초를 배울 것을 권한다. 기초를 튼튼히 다져놓은 이후에는 혼자 연습을 해도 실력을 쌓아가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교재도 많이 나와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자세, 앙부쉬르(Embouchure)라고 불리는 입 모양, 호흡 등은 전문가로부터 직접 배우고 교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색소폰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우선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선택해 구입해야 한다. 색소폰의 종류는 대표적으로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세 가지 종류를 많이 사용한다. (물론 소프릴로, 소프라니노, 바리톤,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등 다른 성부의 색소폰도 있지만, 전공자 이외에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케니지가 연주하는 종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높고 여성스러운 음색을 지니고 있다. 테너 색소폰은 중간 음역과 낮은 음역의 남성적이며 중후한 음색을 낸다. 처음 배울 때에는 알토색소폰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누르는 방법과 부는 방법이 같기 때문에 알토로 배워도 소프라노나 테너도 쉽게 불 수 있다. 소프라노색소폰은 초보자가 불면 소리는 쉽게 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음정이 불안정하고 특히, 고음의 경우 컨트롤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서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테너색소폰은 악기가 크기 때문에 많은 호흡량을 필요로 하고 알토보다 힘이 든다. 초보자에게 저음, 중음, 고음을 비교적 쉽게 낼 수 있는 악기가 알토색소폰이다. 특별히 테너나 소프라노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알토색소폰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색소폰은 악기 본체에 결합하여 입으로 물어 소리를 내는 마우스피스와 리드라는 것이 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크기가 다르듯 마우스피스와 리드도 악기에 따라 각각 달리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마우스피스도 소프라노, 알토, 테너용이 따로 있다. 악기를 구입할 때에는 형편에 맞추어 초급자용부터 고급자용까지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마우스피스는 꼭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색소폰을 배우기 위한 기간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20~30대를 기준할 때 간단한 동요 정도는 2-3주 정도면 연주할 수 있고, 가벼운 곡들은 한 달 정도면 기본적인 멜로디를 낼 수 있다. 물론 연주 시 삑삑 소리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친구나 가족 앞에서 불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3~6개월을 꾸준히 하면 대중가요나 복음성가 정도는 연주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겠지만 색소폰도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타고난 음악성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꾸준한 연습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음반에서 듣던 멋진 소리와는 달리 자신이 내는 소리에 불평하며 한 두 달이 채 안되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실력이 쌓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의 연주라도 연말모임 혹은 연인의 생일에 한곡만 연주 할 기회를 갖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삑 소리가 나며 음이 틀릴지라도 색소폰을 들고 연주하는 그 모습만으로 당신의 연주는 모두의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