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출퇴근하기
에쓰-오일 자전거 동호회 에쓰-바이크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은 ‘추억의 물건’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즐긴 적은 있지만, 나이들어 어느덧 운전을 배우고 차를 사게 된 후에는 공원에 연인 혹은 가족들과 산책을 하다가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면 한번쯤 빌려타보기는 하지만 삶의 공간 안에 편입될 수는 없고 단지 특별한 놀이기구의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인 ‘추억의 물건’.
나에게도 어린 시절 자전거를 처음 만났던 경험과 자전거와 헤어진 경험은 이러한 일반적 범주에 들어간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골목길에서 친구가 못보던 번쩍번쩍 빛나는 자전거에 타고 앉아 있던 어느 날, 그 자전거에 한번 올라타 보고 싶어서 그 친구 녀석의 고개가 한껏 뒤로 제껴질 정도로 거드름을 피워도 다 용서되었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자전거의 번쩍거림에 반해서, 동네에서 떨어진 공터로 축구나 야구를 하러 갈 때 다른 아이들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갈 때에도 여유있게 안장에 앉아서 발을 저어 달려나가던 그 모습에 매혹되어서 난 그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넘어지기를 거듭하면서 어찌 어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고 그 후 몇 개월간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내 자전거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전거는 내 손에 들어오자 마자 내가 아끼던 모든 물건을 밀어내고 보물 1호의 자리를 차지했었다.
학교에 갈 때에도, 동네에서 심부름을 갈 때에도,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가면 한시간은 가야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던 수영장에 갈 때에도 언제나 자전거는 나와 함께 있었다. 그 무렵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난 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범위 내의 모든 거리를 달렸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대략 열다섯 여섯 무렵부터 자전거는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때부터 마흔살이 될 때까지 난 자전거를 잊고 살았었다.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 누구나와 같이, 야근이다 회식이다 해서 늦은 시간에 퇴근하다 보면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뱃살이 손에 한웅큼 잡히는 마흔 살.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직장 내의 다른 분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을 보게된 것이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것이 가능할까를 이리저리 재다가 어느날인가 그냥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자’라는 평소의 신념(?)에 부합되게 휴일날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와본 것이다. 한강을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집과 회사와의 거리는 불과 5km안팎. 의외로 쉬운 일이었고 그렇게 오랜만에 타고 달려본 자전거는 내 몸안의 세포와 근육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할 때에는 5km 정도 달려오지만 퇴근할 때에는 운동을 겸할 생각으로 여의도에서 잠수교까지 가서 잠수교를 건너 다시 원효대교 북단으로 돌아오는 약 15km의 라이딩을 매일 반복하기 시작했다.
처음 잠수교까지 갔다 돌아왔을 때에는 정말 불과 15km의 거리를, 그것도 자전거로 4~50분 달린 것인데도 숨이 턱에 차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내가 이 짓을 왜 하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도 했었다. 내일부터는 이런 미친 짓 하지 말고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해야겠다는 생각도 그 반문 후에는 꼭 이어지는 결심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달 정도가 지나자 자전거는 내게, 끊기 힘든 마약이 되었다.
처음 회사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때 썼던 자전거는, 인터넷을 설치하면 사은품으로 주던 이른바 철티비(MTB, 즉 mountain bike의 형태를 한 쇠로 된 유사 산악 자전거라는 뜻)였다. 박스에 든 채로 배송 받아 집에서 조립한 후 타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자전거를 꺼내온 탓에 기어 변속은 제대로 되지 않아 언덕길을 올라갈 때면 무리하게 힘을 소모하고 평지를 달릴 때는 헛바퀴가 돌 듯 제대로 힘을 전달하지 못하는, 그런 자전거였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여서 한시간을 달리고 나면 자전거가 만들어 내는 바람에 스트레스는 날려가고, 흐르는 땀에 내 몸안의 모든 노폐물이 씻겨나가는 느낌을 즐기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늘려나가게 되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에는, 라이더 들이 자주 간다는 곳, 좋은 라이딩 코스라고 하는 곳을 인터넷에서 찾아내서 한번 씩 달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달려가는 거리와 속도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혼자서 130km를 달렸던 날 엉덩이는 안장과의 마찰열에 허물이 생겼지만 난 근거 없는 성취감에 스스로 고무되기도 했던 것이다.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길은 의외로 많다. MTB를 가지고 있다면 웬만한 산길들은 다 달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자전거 주행에 속하지 않으므로 일단 제외하더라도, 서울 시내에는 한강과 그 지류인 중랑천, 안양천, 불광천 등을 따라 많은 자전거 도로들이 확보되어 있고, 서울이 아닌 곳에도 많은 자전거 도로들이 있다. 더욱이 고유가 시대에 자전거가, 비용을 고려해서 뿐만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관점에서도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 각 지자체는 계속해서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점점 더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은 많은 사람이 고려해볼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 생각된다.
자전거 출퇴근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은, 우선 힘이 얼마나 들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건 각자의 출퇴근 거리에 따라, 도로의 상태에 따라, 그 경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니 각자의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강변을 끼고 출퇴근을 할 수 있다면 처음 시작하는 초보의 기준으로 한강 자전거 도로의 속도는 약 시속 20km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여의도를 기점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거리는 대략 올림픽대교 부근 혹은 군자교 부근 정도이다. 자전거 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나 인도를 이용할 경우 대략 걸리는 시간은 그 두배 정도 계산하면 된다. 따라서 실행에 옮기기 전에 휴일날 느긋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한번 와보면 스스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받는 질문은, 땀은 얼마나 흘리고 그것을 어떻게 씻는가 하는 문제. 나의 경우에는 아침 출근 시간에는 이른바 ‘샤방샤방 라이딩’으로 최대한 땀을 흘리지 않고 출근해서 화장실에서 가볍게 세면을 하는 것으로 끝내지만 같은 직장 내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분들은, 인근 헬스클럽을 끊어서 그 샤워실을 이용하거나 인근 목욕탕과 협의를 통해 매일 아침 샤워를 싼 비용으로 해결하거나 하는 방법을 쓰곤 한다. 회사내에 샤워시설만 있다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이겠지만 역시 각자의 사정에 맞추어 방법을 찾는 수 밖에 없다.
세번째는 옷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출퇴근 때 바지와 와이셔츠를 배낭에 넣어서 가지고 오고 자전거를 탈 때에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타고 다닌다. 거리가 멀다면 더더욱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고 처음에 자전거를 탈 때에는 자전거용 쫄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조금 타다 보면 자전거 전용 의류의 필요성과 편리함을 알게 된다.
출퇴근을 위해 특별한 자전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처음 자출(자전거 출퇴근)을 위해 사용했던 자전거는 사은품 철티비. 그 자전거로도 한시간 정도면 20km는 달릴 수 있고 출퇴근에 큰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몇 달 지난 후에 약 20만원 정도 하는, 조금 더 나은 자전거로 바꾸고 나서야 자전거를 타는 맛을 알 수 있었고 자전거에 달린 변속기의 편리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자의 경제 사정에 맞추어 조금 더 나은 자전거를 장만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된다. 출퇴근 거리가 먼 경우, 좀더 속도를 낼 수 있는 자전거인 싸이클을 타서 더 크고 얇은 바퀴의 효율성을 이용한다면 훨씬 쉽고 편하게 출퇴근이 가능할 것이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권할 것은 약 20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가진 ‘자출사’라는 모임(www.naver.com/bikecity)이다. 자출을 십수년간 해온 사람부터 이제 막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사람까지, 1km의 가까운 거리에서부터 왕복 100km의 거리를 출퇴근 하는 사람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인 만큼 자출을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정보를 전달해줄 수 있는 ‘자출과 관련한 정보의 보고’인 곳이다. 자전거 및 용품의 구입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회원들 간에 중고 용품 거래도 활발하여 처음 시작하는 초보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강변을 달리다 보면 근래 부쩍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자전거를 출퇴근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그래도 아직 자전거 출퇴근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산적해 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며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 차와 함께 도로를 달리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도로에는 같은 차로 달릴 때에도 위협적인 운전자들이 많고 그들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하기 전의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로가에 주정차되어 있는 차량, 불시에 문을 열고 내리는 택시 승객, 뒤에서 클랙션을 울리고 밀어붙이기를 서슴지 않는 대형 차량의 위협, 자전거 도로로 지정된 표시가 있는 인도 위에 주차된 차량과 인도 부분을 굳이 피하고 자전거 표시가 그려진 위를 걸어가는 보행자들.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갈 때의 위협요소들이다.
그렇지만 차량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 그리고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존재인 것은 아니다. 누구나 차를 타면 운전자가 되고 자전거에 올라 앉으면 라이더가 되며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누구나 보행자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과 개선은 어쩌면 우리 생활 안으로 자전거가 다시 들어와, 모두의 생활 속에 하나의 유용한 수단으로 다시 자리잡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