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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은 “상담적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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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은 “상담적 기능”이 있다 

효찬_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지금도 그 여자는 매년, 토정비결을 보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토정비결 풀이 책을 두 권이나 가지고 있다. 매년 책력을 사서 주변사람들의 토정비결을 보아준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전화로 읽어주기도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복사해서 나눠준다……토정비결은 그 여자의 삶의 풍향계이고 나침반이기도 하다. 삶에 위안이 되고 마음을 편히 가지게 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수용할 태세를 갖추게 해 준다. 그거면 충분하다. 토정비결이 미신이고 불확실한 확률 게임이면 어떤가….

김형경의 소설 <세월>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소설속의 그 여자처럼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무탈하게 다시 한해를 보낼 수 있기를 간구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함께 더 바란다면 ‘귀인’을 만나 원하는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원 없이 ‘돈 폭탄’을 맞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설 <세월>에는 또 이런 대목도 나온다. “기특해.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게.” 그 여자는 금세 목이 아파온다. 역술가는 그 여자의 사주에서, 얼굴에서 무엇을 읽어낸 걸까.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여자가 힘들게 자신을 지켜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여자는 그런 자잘한 위안들을 얻기 위해 역술가들을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와 같이 삶은 때로는 그것이 뻔히 보이는 허언일지라도 위안이 필요하다. 위안을 통해 용기를 얻고 삶을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곧추세울 수 있다. 소년시절을 뒤돌아보면 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토정비결 책을 꺼내놓고 가족의 한해 신수를 보고 결과를 들려주었다. 토정비결 책은 지금은 흔하고 인터넷으로도 토정비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에 영남의 산골에서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토정비결을 소장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가족의 토정비결뿐만 아니라 소설속의 그 여자처럼 이웃들의 토정비결도 보아드렸다. ‘세월이 흐르는 물 같으니 매사를 속히 도모하라.’ ‘마음이 산란하니 세상일이 꿈같다.’ ‘동산에 청송을 옮겨 심어 숲을 이룬다.’ 그런 구절을 읽을 때 그 여자는 토정선생을 아주 가까이서 느낀다….

그러고 보면 토정비결의 힘은 단순히 한해 신수에 나오는 문구의 얽매임이 아니라, 그 문구가 제시해주는 삶의 경건함이 아닐까. <세월>에서도 그 여자는 토정비결을 보면서 단순히 운명론적인 글자에 얽매이기보다 삶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도전하고 또 교훈을 얻는 역동성을 전달받게 된다.

새해초 보았던 내가 보았던 토정비결의 글귀에서도 야누스적인 삶의 두 가지 단면을 읽어낼 수 있었다. 토정비결을 읽노라면 단순히 한해 운세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인생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고 새해에도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일이 끝으로 갈수록 좋은 기운이 작용하고 귀인이 들어 어려움이 해결될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재물이 따르게 될 것이니 마음과 몸이 힘들어도 결국 반드시 명예나 재물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반드시 재물을 추구하여 크게 얻되 덕을 쌓으시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재물과 함께 가족의 건강을 항상 돌보아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운세가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토정비결은 세상살이의 힘듦을 알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쉬어가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뜀박질을 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경고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지를 북돋워준다. 권세의 운이 깃들 것이라면서도 탐욕과 속됨을 경계한다. 재물의 축복을 들려주면서도 다른 재물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호사다마를 경계하기도 하고 새옹지마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전화위복이 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래서 김형경은 <세월>에서 토정비결의 힘은 단순히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친다는데 머물지 않는다고 그 의미를 부여한다. 이를테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정신분석학적 기능도 한다는 것이다. “자주 역술가를 찾아다니지만, 그 여자가 역술가들에게 진정 원하는 것은 정신과 상담의의 기능이다.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혹은 마음속이 몹시 혼돈스러울 때, 어머니나 언니의 기능, 혹은 정신과 상담의의 기능을 역술가들에게서 찾는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 스스로도 다 아는 문제를 시시콜콜 털어놓기 보다는 역술가를 만나 그들이 들려주는 덕담을 듣는 편이 더 위안이 된다. 중년이 되면 좋을 거야. 말년이 되면 더 괜찮아. 무슨 일을 해도 잘 할 거야. 그런 말들에서 힘을 얻기 위해 역술가들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이 너무 잦으면 탈을 일으키겠지만 일 년에 한두 번쯤 토정비결을 보거나 역술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권태로운 삶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오락’일 수 있지 않을까.

토정비결은 조선 후기부터 수백 년간 정월 초승이면 으레 토정비결로 그 해 신수를 알아보는 민간의 세시풍경이 됐다. 절대 권력이나 지배층에 의해 고통 받고 짐승과 같은 모진 삶을 살아가야 했던 봉건시대를 살아간 이지함은 백성의 인간적인 삶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나 살아갈 용기와 희망,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토정비결을 만들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거창하게 의미를 깃들이지 않아도 토정비결에는 인간이 인간에 느낄 수 있는 고결한 감정인 측은지심, 즉 사람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불쌍하게 여긴 게 아니다. 토정비결을 보면 불쌍한 마음을 어루어만지고 다독이면서 새로이 삶을 긍정하고 일어서게 하는 힘을 느끼게 해준다. 토정비결은 개인적으로 길흉화복과 입신양명에 대한 경계와 여망을 예고하지만 사회심리적으로는 새롭게 도전하게 하고 치유하게 하는 기능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세월>에서 그 여자는 불편한 마음으로 위축된 심리 속에서 상담을 하는 정신과를 찾기보다 토정비결을 보거나 역술가를 찾는지도 모른다. 물론 토정비결이나 역술가의 사주풀이를 맹신해 굿을 하거나 거액을 들여 부적을 만드는 미신적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모든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지나침’의 한 단면일 것이다. 지나침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에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서양에서는 토정비결 대신 새해마다 타로카드를 통해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타로 점은 타로카드에 그려진 여러 그림을 보고 그림이 상징하는 내용에 따라 점괘를 구체화한다. 토정비결이 수많은 ‘데이터 은행’에 저장된 내용으로 통계적인 과학성이 깃들어 있지만 타로 점은 어쩌면 이보다 우연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토정비결이 유행하듯이 유럽에서는 지금도 타로점이 성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인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에도 “낮잠을 자고 카드놀이를 하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타로 점을 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에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욕망으로 인해 지금도 타로 점에서 손금 점, 잎사귀 점 등과 같은 온갖 점술이 성행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찰스 M. 윈의 <사이비 사이언스>(원제 : Quantum leaps in the wrong direction)에는 “타로점이 유행하자 가톨릭교회는 타로 점을 악마의 발명품으로 선고했다.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는 타로 점을 금지시켰으며, 뉘른베르크의 시장에서는 타로 카드를 불태우기도 하였다”고 적고 있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불안한 미래를 들여다보고 위안과 안정을 얻기 위해 토정비결이나 타로, 점 등이 유행했고 지금도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타로카드와 토정비결을 사회심리학적 ․ 정신분석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도 타로카드는 현재나 미래의 삶에 대한 경구(警句)가 토정비결이 들려주는 것과 다르다. 토정비결의 한해 운세를 읽으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교훈적인 경구를 통해 새해를 설계하고 용기와 위안을 얻게 된다. 심지어 히브리스(hybris, 자만)를 경계하는 교훈적인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타로카드는 다만 우연히 제시된 그림을 통해 길흉화복을 점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토정비결은 타로에 비해 훨씬 고차원적인 인생살이의 방정식을 총합화한 것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운세에 합당하게 ‘승화’시키는 역할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에서 김형경이 들려주는 것처럼 역술가들은 정신과 상담의의 기능도 한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4명이 점이나 사주를 본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역술은 생활로 파고들고 있다. 김형경의 소설에서와 같이 경쟁과 갈등이 극심해진 사회에서 요즘은 역술이 미래예측보다는 '인생 상담'의 기능을 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편하게 애기할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인간적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역술인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역술인들도 역술을 그대로 믿지 말고 강한의지와 용기로써 밀고나 가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다. 이쯤 되면 토정비결은 사회심리적인 ‘메타언어’(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언어 그 자체를 다시 언급하는 한 차원 높은 고차원적 언어)가 되는 셈이다. 삶을 긍정하게 하면서도 지나침을 경계하는 것이야말로 토정비결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하면 지나친 예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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