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크로체),“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
(칼라일), “역사란 의식의 각성에 의하여 생겨난 자연과의 결렬”(부
르크하르트),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
정이자,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들어본 말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합니다. 허나 현재와 과거 운운하
는 정의는 분명 귀에 쏙 들어오는 익숙한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녹슬지 않은 고전 ‘역사란 무엇인가’
연합뉴스 기자 고 형 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그 유명한 고전의 저자 E.H.카의 정의입니다. 바로 그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카 교수가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행한 연속강연‘What is History?’는 역사철학 의 새 방향을 제시해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는 안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공동체가 새로운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사건을 앞두고 있던 1987년 3월 번역, 인쇄된 것을 아마도 1988년쯤에 구입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고판으로 1천500원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물가가 많이 오르긴 올랐나봐요. 묘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때문에 독자 여러분께 권해드리는 것은‘역사란 무엇인가’일뿐 내가 손에 쥔 이 낡디 낡은 싸구려 책도 아니고 새로운 문고판이나 비싼 하드커버도 아닙니다. 그저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안목을 가져다주는 그 무엇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기쁨이 이런 것일까요. 영어를 직역한 데서 오는 국어의 어색함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한두마디 촌철살인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을 접할 때마다 고개를 순간순간 끄덕 였습니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니다.”이것을 두고 “와 너무 멋진 은유야!”하고 감탄하는 필자가 경박스런 것일까 자문도 하지만 그런 나를 어쩔 수는 없다고 변호합니다. 기자 노릇을 하고 있어서 입니다. 아전인수격 비유인지는 몰라도 기자의 경우도 사실(fact)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되고 주인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노예가 되면 무턱대고 널브러진 사실을 안목없이 수집하는 추수주의가 되고, 그렇다고 주인이 되면 저 귀퉁이에 있는 오롯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실도 숨기고 해석에만 매달려 엉뚱한 선도. 계도주의에 경도되기 십상인 탓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리하여 역사가는 의미있는 사실을 수집하고, 그것을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고 재구성하고 분석하고 또 재정렬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간단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필자의 ‘턱없는’(?) 주관이 나옵니다. 너무 무리하게 본 것일까요?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니다.”이것을 두고“와 너무 멋진 은유야!”하고 감탄하는 필자가 경박스런 것일까 자문도 하지만 그런나를 어쩔 수는 없다고 변호합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카 교수는 무엇보다 영국의 학문적 업적과 궤도를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짚었다는 느낌도 감히 가져봅니다. 하지만 시.공간을 넘나들며 풍부한 역사.학문적 실례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검증적 또는 고증적 태도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데에는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라는 챕터에서의 한 사례는 너무도 평이하지만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나 경험을 보여줍니다. 약간의 각색을 곁들인 원문을 옮겨봅시다. “죤즈는 파티에서 술을 보통량보다 과음하고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브레이크가 시원치 않은 차를 몰고, 앞이 도무지 안보이는 브라인드 코너에 이르렀을 때에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를 사려고 길을 건너던 로빈슨을 치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중략) 이 일은 운전하는 사람이 반쯤 취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시원치 않은 브레이크 때문이었을까요?, 또한 아니면 브라인드 코너 때문이었을까요?, 뭐야 그것도 아니면 로빈슨의 담배에 대한 욕망때문 아닐까요?”여러분은 어느 원인에 가장 많은 합리성을 부여하면서 손을 들어줄 것입니까?
카 교수의 말은 이어집니다. “물론 로빈슨이 끽연자였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기회와 우연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이 처럼 겉보기에는 나름대로) 철두철미 진실하고 철두철미 논리적입니다. (중략) 그러나 장군이 아름다운 여왕에게 반했기 때문에 싸움에 진다든가(그 유명한‘클레 오파트라의 코’?)...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길에서 치어 죽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명제로서는 통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그런 환경에서 차에 치여 이 세상을 떠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설명하는 원인으로 그 것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우연적 요소인 것입니다. 그건 일부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역사나 기타 모든 사건의 돌발적 계기는 될 수 있겠으나 전체를 설명하거나 본질을 꿰뚫는 근본으로는 도무지 충분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행위에 있어서 그 근저를 이루는 원인이나 이유, 동기를 살펴야지, 어떤 인물이나 환경의 우연적 요소를 골간을 이루는 배경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뜻일 겁니다. 역사는 그렇게 되면 돌출적 인물들의 선택적 행위나 걸출한 인간군상들의 모험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 다름아니겠죠. 진보로서의 역사라는 장에서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량을 얻었으며, 이것이 다음으로 또 잘 전승이 될까요?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는 역설도 카 교수는 전합니다.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할 열쇠를 제공할 수 있어서 라는 이유도 답니다. 역사를 보는 안목과 미래를 향한 통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제 노트북 옆에 둔 1987년 발행판 책자도 이제 20살 성년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굴곡이 있을지언정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확신합니다. 일상에 치이고 생활에 허덕이는 우리지만 한번 느긋한 마음으로 역사와 대화해 봅시다. 이것이 한가롭고, 예의없고, 주책스런, 그리고 낡아빠진 권유가 아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