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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는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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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는 역사이야기

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잔 다르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5세기에 벌어졌던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소녀. 6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와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잔다르크는 그 이름이 높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역사적 사실이니까. 그러나 잠깐, 잔다르크는 과연 진정한 프랑스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을까?

너무나 당연히 그랬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잔다르크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잔다르크가 위기에서 구해낸 오를레앙 지역이나 잔다르크가 태어난 동레미 마을 등 잔다르크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그 이름이 알려졌을 뿐, 프랑스 사람 대부분은 잔다르크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잔다르크가 프랑스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나폴레옹의 치밀한 계획 때문이었다. 스스로 황제가 되기를 꿈꿨던 나폴레옹은 죽은 지 400년이 넘은 잔다르크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스스로를 잔다르크에 비유하면서 프랑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극해 마침내 황제에 올랐다. 프랑스 각지에 세워진 동상들도 대부분 나폴레옹 이후인 19세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역사적 사실이 반드시 과거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후대 사람들의 입맛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잔다르크처럼. 그리고 이는 비단 프랑스와 서양만의 현상은 아니다.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이 후대의 필요성에 따라 갑자기 부각되는 사례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광개토대왕비다. 광개토대왕비는 1천여년을 역사적 관심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역사적 사실로 등장한 유물이다. 그리고 이 잊혀졌던 유물을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이 이 광개토대왕비를 부각시켰던 것은 발견 당시 러일전쟁을 앞두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 비문에 새겨진 사실을 당시 상황에 대입시켜 해석했고, 이를 통해 역사적 유사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이었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에서 일본과 고구려가 대치했다고 써있듯이 일본이 당시에도 고구려, 즉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와 비슷한 북방세력과 대결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당시 상황과 고대사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입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쪽에서 이런 주장에 동조할리는 없었다.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 내린 다른 해석을 정인보 등이 내놓으며 이 고대 비문을 둘러싼 학문적 싸움을 벌였다.

잔다르크와 광개토대왕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란 결국 ‘현재의 필요에 따라 바라본 과거’일 수 밖에 없다. 광개토대왕비로 대표되는 한반도의 고대사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 각각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역사란 늘 해당 시기의 시각이 반영된 주관적인 해석의 산물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잘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과 가치가 시대를 초월해 늘 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가 갖고 있는 본질적 속성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깨우쳐주면서 우리에게 사고의 전환이나 시각의 교정을 요구하는 역사책들이 여럿 나왔image. 특히 우리의 세계사 상식은 그동안 일방적인 서구 시각으로 해석된 교재로 배우는 바람에 서구 중심적 사고에 젖어 제3세계나 아시아권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특히 많았다. 이른바 ‘세계화시대’에 살아가는 요즘, 세계 다양한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시 한번 역사의 이런 속성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크다. 한쪽의 입장에서만 서술하는 일방적인 역사가 아니라 비교적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책, 그리고 역사란 후대에 의해 늘 가공되고 조작될 수 있는 위험을 지녔다는 속성을 일깨워주는 책,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교양 상식들이 풍성하게 담긴 역사책들을 골라 소개한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문학 저술가 가운데 한 명인 이성형 박사의 책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까치 펴냄·12000)은 재미와 교훈이 조화를 잘 이루는 빼어난 역사교양서이다. “유럽은 역사학자를 발명했고, 이들을 잘 활용했다”고 한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말처럼, 그동안 역사는 유럽의 것이었다. 유럽이 주도하는 역사는 유럽만이 ‘중심’이며 그 밖의 모든 지역은 ‘주변’이라고 전제하면서 역사란 중심에서 주변으로 뻗어나가고, 동시에 기원에서 단계별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시켜왔다. 이 책은 이렇게 왜곡된 역사관에 의해 비뚤어진 시각을 고쳐주는 교정렌즈같은 책이다. 사실 유럽이 지금처럼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라는 희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유럽이 주장하는 역사를 뒤집어 보게 만드는 다양한 역사적 해석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도록 이끌어준다.

image지은이는 유럽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던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목처럼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것이 남미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시작이었다. 진정한 아메리카 주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흔히 말하는 콜럼버스의 ‘발견’은 오로지 ‘침입’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오류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지정학적으로 공정한 세계사를 가르쳐준다.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지식을 종횡으로 꿰는 글의 재미도 빼어나다.

<금서, 세상을 바꾼 책>(한상범 지음·이끌리오 펴냄·15000) 역시 시대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크게 바뀌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추앙받은 역사적 사실이 반드시 당대에도 현재의 평가대로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금서’라는 주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단테의 <신곡>부터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루소의 <에밀> 등 지금 우리가 교과서에서 꼭 외워야 하는 항목으로 배워야 하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고전들이 당대에는 사회를 흔든다는 이유로 금서였다는 것은 지금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발표된 시대에는 불온서적으로 매도되면서 온갖 비난과 박해를 받았지만 책 자체의 가치image가 빛을 발하면서 결국 역사적으로 승리를 거뒀다.

책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우리 사회의 금서 이야기는 앞에서 나열하는 서양 금서들의 이야기 이상으로 울림을 남긴다. 가령 마르크스를 가장 비판했던 막스 베버를 마르크스로 착각하고 수입금지 처분을 내린 일이나 마르크스를 읽지도 않은 ‘지적 색맹’인 교수가 마르크스를 비판하다가 학생들 앞에서 엉터리 강의가 폭로되던 이야기들은 ‘웃기기에 더 슬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새롭고 수준높은 해석을 책으로 만나보고 싶다면 단연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1~2권·한겨레신문사 펴냄·11000), 러시아출신으로 귀화해 한국인이 된 박노자 교수의 <나를 배반한 역사>(인물과사상사 펴냄·1만원)을 권한다. 두 책 모두 한국인이 오히려 잘 모르는 한국사의 숨은 이야기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새롭고 공정한 해석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몇 년새 나온 역사교양서 가운image데 가장 좋은 평가와 반응을 얻어낸 검증된 책들이다.

<대한민국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들, 곧 진보와 보수, 친미와 반미, 친일과 독립운동, 독재와 민주화, 주한미군과 베트남전쟁 등등이 우리 역사속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려주면서 요즘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근현대사의 역사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뽑아내 상식과 편견속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의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역사 소설 읽듯 쉽게 읽힌다.

박노자 교수의 책은 과연 이 책을 쓴 사람이 원래 외국인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글쓴이의 해박한 한국사 지식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박 교수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고 한발짝 물러선 개관적, 보편적 시각으로 한국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정관념과 왜곡된 가치관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한다. 짜임새가 탄탄하고 흡입력이 강한 대중적 글쓰기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글솜씨는 다시 한번 이 파란 눈의 한국 학자의 놀라운 한국어 실력과 한국사 지식에 대해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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