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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마당] 쉽게 접하는 인간의 정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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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접하는 인간의 정신세계


글 ·구본준|한겨레신문 기자


어느 나라에나 그 시대 가장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철학이나 사상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라면 아마 도올 김용옥 같은 사람이 꼽힐겁니다. 그렇다면 옆나라 일본에는 어떤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할까요? 일본의 유명한 지식인 가운데 가와이 하야오(78)란 사람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을 대표하는 심리학자인 융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임상심리학자, 심리요법가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설명보다는 ‘일본 문화청장관을 지낸 사람’이라고 하는게 더 쉬울겁니다. 그러니까 일본 문화부장관이지요.

이 가와이 하야오는 일본이 21세기를 앞두고 국가적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구성한 ‘21세기 일본의 구상’위원회 위원장으로 뽑혔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 정신의 미래를 담보하는 국책 프로젝트로, 가와이 하야오가 위원장인데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가 위원으로 참석합니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일본의 미래를 밝힐 화두이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과제를 설정해 밝혔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정신’이었습니다. 세계를 주름잡는 경제대국 일본이 자국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문제로 정신을 꼽았다는 점. 의미심장합니다.

심리학자이니 평생 `정신의 문제에 천착해왔고, 세계적 학자이니 적임자로 뽑혔던 겁니다. 그런데,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이 가와이 장관이 <아사히 신문>의 요청으로 특별 기획 대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담의 주제는 ‘불교’였습니다. 불교를 주제로 지성들이 대담을 벌이고, 이를 <아사히 신문>지면에 연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담이니 당연히 가와이의 상대자가 있어야 하겠지요. 칠순을 바라보는 노학자이자 일국의 장관인 거물과 대담을 나눌 사람, 그것도 `불교라는 형이상학적이기 그지없고 어렵기 짝이 없어 보이는 주제로 대담할 파트너라면 당연히 일본 지성계를 대표할 급이어야 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가와이 장관이 고른 그 파트너는 나카자와 신이치(55) 주오대 교수였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는 신화학과 종교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사유로 요즘 일본 인문학계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종교학자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저술가이자 인문학자라고 보면 됩니다. 사람만은 자기만의 독특한 이론으로, 철학이나 종교 신화 같은 어려운 주제를 쉬운 말로 새롭게 해석해 들려줘 일본에서 주목받는 사람입니다.

이 나카자와는 이력이 독특합니다. 1979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티베트 승려를 만나서 스승으로 모시면서 3년 동안 밀교를 연구하고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외국어대학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이듬해에 저서 <티베트와 모차르트>를 펴냈습니다. 이 책이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하면서 나카자와 신이치는 겨우 32살에 일본 인문학계의 차세대 사상가로 꼽히게 됩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들이 바로 이 나카자와의 책들입니다. 현재 국내에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대표작은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란 이름으로 모두 5권이 나와있는데 모두 이 교수가 한 강의를 그대로 담은 강의록입니다. 나카자와 신이치가 가와이 일본 문화부장관과 만나 ‘정신’에 대해 대담을 했을 때 주제는 바로 ‘불교’였습니다. 누구나 잘 알지만 제대로 알기는 힘든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두 석학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담하는 주체가 빵빵한 지성의 대담이니, 당연히 팽팽하고 치열한 지성의 향연이 펼쳐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달리 장관이자 노학자인 가와이는 이 대담에서 철저하게 `학생이 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카자와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 국내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책 이름은 <불교가 좋다>(동아시아 펴냄)입니다. 나카자와가 보기에 불교는 어떤 것이며, 그 특징은 무엇이며, 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종교와 신화, 그리고 때로는 심리학이라는 인간 정신의 심원에 대한 심오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대담 특유의 생생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구체적이고 쉬운 입말 문장 덕분에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워 보여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철학, 종교, 신화학 뭐 이런 것을 떠올릴 때 등장하는 어렵고 추상적인 것들이 없습니다. 종교라는 딱딱한 주제를 종교간 비교로 보여주기 때문에 훨씬 이해가 빠르고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어서 불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게 해주는 미덕이 가득합니다. 책에서 나카자와는 불교는 한마디로 “종교가 아닌 종교”이며, 가장 큰 특징은 ‘대칭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나 이슬람, 유대교 등이 대부분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엄청나게 비대칭적인 것을 전제로 하는데, 불교는 유독 ‘인간과 신 사이의 대칭적 관계’를 중시해왔다는 겁니다. 또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철저한 대칭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는 신석기 시대의 ‘야생적 사고’를 간직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종교라고 봅니다. 이 점에서 불교는 신화적 사고를 몰아내고 세계를 제패한 다른 초월적 종교와는 달리 신화와 매우 비슷하며, 국가와 대제국의 탄생 이후 인간사회에서 사라진 샤머니즘적인 정신세계를 ‘야생의 사고’와 이어주는 특징을 지녔다는 설명이지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전 지구적 신화에 가장 가까운 종교는 불교뿐”이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또한 레비 스트로스가 “나는 신석기 시대 사람이고, 신석기인의 사고로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라며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종교는 오로지 불교뿐”이라고 했던 것도 여기에 이어지게 되겠습니다. 나카자와는 그래서 인간 사고의 가장 최초의 상태와 가장 발달한 상태를 하나로 결합하는 이같은 불교의 장점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유대교 같은 일신교들이 지닌 비대칭성이 과학 발전 등의 성과를 낳기도 했지만 많은 부작용, 곧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파생시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불교의 대칭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책은 인문학책이라면 딱딱한 것, 특정 계층 사람들만 보는 책, 또한 전공자들에게나 필요한 책이라고 여기는 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 관련 서적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줄 만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카자와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 독특하고 명쾌한 해석이야말로 이 책 최고의 강점입니다. 이 책이 맘에 안드시는 분은, 그리고 나카자와가 맘에 드시는 분은 나카자와의 국내 데뷔작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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