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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익산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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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나들이

- 금마땅에 스며 있는 백제의 자취 -



글·이현숙 |여행작가


겨울이 제 빛깔을 내기 시작했다. 철따라 자연색이 바뀌는 모습은 계절의 순환을 막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해서 이 좋은 겨울날,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익산으로 간다. 우리 나라 최고의 석탑이 있는 금마땅은 백제의 중심지다. 또한 익산은 역사적으로 찬란한 금속문화를 이룩하였던 보석의 도시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조성된 귀금속 공단에 90여 개 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제일 먼저 들를 곳은 호남고속도로에서 가까운 보석박물관. 10만여 점의 진귀한 세계 각국의 보석이 전시돼 있으며, 구입도 가능하다. 보석의 왕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자연이 창조해 낸 최고의 예술품 루비 등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수많은 보석류를 감상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박물관에는 7개의 전시실이 있다. 광섬유를 이용해 우주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초대의 장을 비롯해 국내 보석의 시대별 발달사를 훑어볼 수 있는 인식의 장, 보석의 생성과 성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체험의 장, 그리고 감동의 장, 역동의 장, 결실의 장, 아트 갤러리 등 주제별로 나눠져 있다. 보석으로 예술작품을 만든 감동의 장은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다이아몬드 213개로 꽃술을 만들고 꽃잎은 연옥, 꽃줄기는 금, 꽃받침은 백수정으로 만든 ‘보석 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백수정을 가공해 만든 아담과 이브, 예수, 성모 마리아 상도 눈길을 오래 붙잡아 둔다. 보석박물관 옆에는 실물크기의 공룡 골격 화석 등 500여 점의 국내·외의 진귀한 화석들을 전시해 놓은 화석전시관이 있어 연계해 둘러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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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와 북서쪽으로 약 2km 정도 가면 넓은 논밭 한가운데 20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돌장승이 마주 서 있다. 보물로 지정된 이 돌장승은 속칭 ‘인석’이라 불리는데 네모난 얼굴에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 등이 퍽이나 자애스럽다. 전설에 따르면 이 두 기의 석장승은 원래 하나는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라고 한다. 그런데 두 석상 사이로 냇물(옥룡천)이 흘러서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1년에 단 한 번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냇물이 꽁꽁 얼면 냇물을 건너 만났다가 닭이 울면 헤어져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애달픈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들판에 쓸쓸히 서 있는 이 두 석상을 불상이라기보다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믿고 있다.

석장승이 있는 곳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왕궁리 5층석탑(왕궁면 왕궁리)이 있다. 미륵사지와 쌍벽을 이루는 익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옛날 궁궐터가 있던 자리로 백제 양식의 5층 석탑은 국보 제 2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나온 금제 금강경판과 금제 사리함, 사리병 등은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이 석탑을 자세히 보면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백제탑의 전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탑의 구조는 큰 울림을 준다. 이곳에서 가까운 익산시 석왕동에는 동서로 약 200미터의 간격을 두고 두 개의 능이 있는데, 백제 말(600~641) 왕과 왕비(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 능산리 고분과 같은 형식인 굴식돌방무덤으로 가운데 것(대왕능)이 약간 큰 편이다.

여기서 자동차로 20여 분 달리면 미륵사지(금마면 기양리 미륵산 남쪽 자락)로 갈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로 백제 무왕이 부인 선화공주의 청을 듣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미륵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남아 있다. 무왕이 부인인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지금의 미륵산) 사자사로 가던 중 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이를 신통하게 여긴 선화공주가 무왕에게 부탁해 이곳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무왕 때(600~640년 추정) 세워진 높이 14.24m의 다층석탑은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이 짙게 배어 있다. 수수한 아름다움은 오래 간다 했던가. 그러나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딜 수 없었던지 지금 미륵사지석탑(국보 11호)은 해체되어 새로 복원되었다.

미륵사지를 발굴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1980년. 발굴 결과 이곳엔 거대한 전(殿)과 탑, 그리고 회랑(回廊)이 법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뒤로 강당과 승당이 세워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테면 1기의 탑과 1채의 법당으로 이루어진 사찰 3 개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었는데, 3기의 탑 중 가운데 탑은 목조탑이고 동쪽과 서쪽에 석탑이 하나씩 서 있었다는 것이다.

미륵사지 터 옆에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 보존해 놓은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있다. 19,000여 점에 이르는 소장 유물은 그 옛날 미륵사의 영화를 짐작케 해준다. 유물실, 불교미술실, 영상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미륵사지 뒤편에 야트막하게 솟아 있는 용화산(미륵산)은 가벼운 산행 코스로 좋다. 정상 부근에는 그 옛날 신통력을 발휘했던 지명법사가 머물렀다는 사자사터가 남아 있다. 현재는 작은 암자가 들어서 그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미륵사 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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