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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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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고 괜찮은 칭기스 칸 입문서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그리고 머리를 데우기 위해 먼저 문제를 딱 한 문제만 풀어보자.


<문제> 다음 중 ‘칭기스 칸’과 그가 이룩한 ‘몽골제국’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다른 지도자들이 전사들에게 자신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칭기스 칸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② 칭기스 칸은 만민을 다스리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통치자도 미천한 목자와 똑같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③ 몽골은 고려를 특별히 우대했던 편이었다.

④ 칭기스 칸은 자기 명예를 훼손하는 출처가 의심스런 이야기들이 떠도는 것을 장려했다.

⑤ 몽골 군의 만행은 당시 다른 유럽 제국들의 만행에 비해 오히려 훨씬 애교스런 수준이었다. 몽골은 피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를 지녔기 때문에 고문도 싫어했다.

⑥ 몽골의 지도부는 기독교에 대해 무척 관대했고 관심이 많아 몽골 조정을 지배했던 세력은 기독교도들이었다.


과연 몇 개가 정답일까?

문제를 낸 글쓴이가 다소 비겁했음을 인정해야겠다. 어느 정도 눈치 채셨겠지만, 정답은, ‘6개 모두’다. 다시 말해 보기 모두가 칭기스 칸과 몽골에 대한 진실들인 것이다.

다소 의아하다고 느낄 독자들도 많으실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몽골과 칭기스칸은 그동안 우리에게 워낙 친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골과 칭기스 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그동안 가리워져 있었고 연구도 부진했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몽골제국에 의해 호된 맛을 봤던 다른 나라들이 몽골에 대해 거짓 정보를 마구 흘려댔기 때문이다.

거의 세계 모든 이들에게 칭기스 칸이 일군 몽골제국은 ‘피에 굶주린 정복자’ 또는 ‘잔악무도하고 문화를 파괴한 전쟁광’으로 각인되어 있다. 다소 호의적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해도 ‘우연히 역사적 틈바구니에서 운좋게 기회를 잡은 뒤 승승장구했던 유목민족의 영웅’ 정도로 본다.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그러나 어쨌든 그다지 역사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사실로 취급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이런 시각들이 모두 잘못임을, 또는 부적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초기 이룬 성과를 보자.

몽골군은 우선 25년 동안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정복한 것보다 많은 땅과 사람을 정복했다. 칭기스 칸이 아들,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정복한 문명들은 12~13세기 당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문명들이었다. 인구수나 정복한 나라의 숫자, 정복한 땅의 면적면에서 칭기스칸은 역사적으로 이름난 어떤 다른 정복자들보다도 2배 이상이었다. 몽골제국의 최전성기 때 면적은 3000만제곱킬로미터가 남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면적만한 땅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를 합친 것보다도 넓은 면적이라고 한다. 요즘 지도로 다시 보면 칭기스 칸이 정복했던 땅에 지금 30개국 30억명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해 로마제국도 몽골에는 “게임이 안되는 수준”이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칭기스 칸에게 “명함도 못내미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진시황도, 케사르도,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견줄 차원이 못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내용이다.

자료에 따르면 칭기스 칸이 거느렸던 몽골 부족 전체의 인구는 100만명이었다. 이는 오늘날 다국적 거대기업 직원수보다도 적다. 이 100만명에서 징집한 군대는 불과 10만명뿐이었다. 참고삼자면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인구가 20여만명이다. 봉천 1~5동 주민 숫자만큼의 군대를 이끌고 시작해 칭키스 칸은 세상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를 연구한 미국 학자 잭 웨더포드는 칭기스 칸이 이룬 일을 미국을 예로 들어 비유적으로 이야기한다. “교육받은 상인이나 부유한 농부가 아니라 문맹의 노예 한 사람이 순전히 인격과 통솔력, 결단력만으로 미국을 건립했다고 생각해보라. 거기서 더 나아가 미국을 외세의 지배에서 해방하고, 국민을 단결시키고, 알파벳을 만들고, 헌법을 쓰고, 보편적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새로운 전쟁방식을 고안하고, 캐나다에서 브라질까지 군대를 몰고 다니고, 교역로를 열어 양 대륙을 가로지르며 길게 뻗은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었다고 상상해보라.”

읽기 숨찰 정도의 이 업적을 홀몸으로 출발한 한 사람이 이뤄낸 것이다. 웨더포드는 그래서 덧붙인다. “칭기스 칸이 이룬 업적의 규모와 범위는 어떤 수준에서 보던, 어떤 관점에서 보든, 상상의 한계에 도전하며 아무리 설명에 능한 학자라도 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러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차례다. 이토록 엄청난 성과를 내려면 정말 대단한 바탕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고도의 시스템과 경영능력, 다양한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칭기스 칸이 우리가 아는 대로 정말 그렇게 무지막지한 전쟁광 수준이었다면, 그리고 몽골제국이 문화도 없는 미개한 사냥꾼 집단이었다면 과연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설마 그렇다고 친다면, 그러면 이런 깡패나 도적 수준의 무리들한테 정복당한 그 수많은 찬란한 문명국가들은 다 허수아비들이었단 말인가?

이제 저절로 답은 나온다. 칭기스 칸과 그가 이끈 몽골제국은 결국 동시대 다른 어떤 경쟁국가들과 그 지도자들보다 탁월했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되는 훌륭한 국가경영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지녔을 것도 자명하다. 당연히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다시 문제로 돌아갈 차례다. 잭 웨더포드의 책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이 문항들이 진실임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칭기스 칸이란 위대한 영웅의 일생을 다룬 책이 의외로 많지 않고, 그나마 있던 것도 대하소설류였던 점에 비춰 볼 때 이 책은 현재 나와있는 거의 유일하고 괜찮은 칭기스 칸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깔끔하면서도 미려한 문체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이야말로 칭기스 칸 덕분에 가장 덕을 보았다는 사실이 강조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주제이자 교훈은 바로 우리가 몰랐던 ‘유목민적인 사고’의 힘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유목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상한다. 한 곳에 머무르는 자가 아니라 돌아다니는 자, 자신의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유연한 자가 세상의 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20세기까지의 인류 역사가 유목민보다는 정주민들의 역사였다면, 이제 새로운 유목민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이 “성을 쌓는 자는 망하지만, 옮겨다니는 자는 흥한다”고 한 말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유목민족들이 지녔던 가치는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른바 ‘노마디즘’도 그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신인류의 대안을 ‘노마드’(유목민)에서 찾는다. 유목이야말로 21세기 필연의 패러다임이며, 자의든 타의든 현대 사람들은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넘어 끊임없이 새것을 창조하며 살아야한다고 역설한다. 국경은 사라지고, 유목을 가로막았던 모든 것들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사라지고 있으므로 이제 우리는 정착민이면서 동시에 유목민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주장이 바로 ‘노마디즘’이다.

이같은 노마디즘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바로 바로 칭기스 칸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별볼일 없는 노예의 자식이었던 그가, 아무런 혈연의 도움도 없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었던 철학과 방법이 바로 유목민의 철학과 사고였다. 이 책은 영웅의 흥미로운 일생을 통해 그가 정립한 유목민족의 철학과 그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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