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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아~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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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마당>

아~ 오라버니!


글·하동숙 |대한석유협회



어린 여자아이에게 ‘오빠’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든든한 단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밖에서 뛰노는 걸 좋아했고, 오빠는 반대로 내성적이서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말도 더디고, 표현 능력도 뒤쳐졌다.

오빠와 나는 학년은 2학년 차이가 나지만, 나이는 한 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다. 나이 차이에서 짐작이 가듯이 어린 시절 오빠와 나는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다툼이 잦았다. 그 때문에 엄마에게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날도 엄마가 안계신 틈(?)을 타 오빠와 나는 전쟁을 치루고 있었고, 절정으로 치달아 승부가 나기 직전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다.

“너희 또 싸우고 있어? 내가 없으면 가만히 있지를 않는구나! 둘 다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엄마는 안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셨고, 오빠와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닫혀진 안방문 앞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일단 무릎 꿇고 손을 들면 입에서 자동으로 잘못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눈물까지 흘려가며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란 단어만 되풀이 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 숙련의 과정을 통해 터득한 불쌍하게 보이는 방법을 동원하여, 울음 섞인 목소리를 더욱 크게하여 엄마를 향해 부르짖었다.

“용서해주세요..엉엉.. 용서해주세요..”

너무 시끄러웠던지 엄마는 안방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치셨다.

“조용히 해!”

그때였다.

“조용히 해주세요.. 엉엉.. 조용히 해주세요.. 조용히 해주세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오빠가 안방을 향해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닌가.

오빠는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던 ‘용서해달라’는 말이 그만 ‘조용히 하라’는 말과 뒤섞여 조용히 해달라는 말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던 것이다.

엄마와 나는 그순간 깔깔거리며 웃었고, 내가 웃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며 오빠는 나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너 왜 웃어? 너도 빨리 빌어.. 엉엉..”

오빠의 말실수로 엄마는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셨고, 본의 아니게 우리를 용서해주셨다.


또, 오빠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네에서 놀다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 한참을 서로가 맞다는 둥 아니라는 둥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데, 친구의 언니가 나타났다.

“언니, 얘 좀 혼내줘..”

“뭐? 너 왜 내 동생 괴롭히니?”

자초지종도 듣지 않은 채 무조건 동생편만 드는 그 언니가 너무 얄미웠다. 그 자매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터라 둘이 모이니 나는 더욱 찍소리도 못하고 수세에 몰려 백기를 들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오빠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도 오빠가 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오빠에게 다가갔다.

“오빠! 글쎄, 쟤네들이 나를…”

오빠는 내 말을 가로 막은 채 부끄러워하며 내게 말했다.

“챙피해… 얼른 집에 들어가..”

오빠의 등장으로, 잠깐 위축됐던 그 자매도, 기세등등하게 오빠를 외쳤던 나도 그 자리에서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의 다툼이 진행될 리도 없었다.


오빠와 나는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비슷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닭이다. 어릴 때 ‘전설의 고향’에서 목이 잘린 채 뛰어다니는 닭을 본 후로 오빠도 나도 닭을 가장 무서워한다. 때문인지 새 종류는 왠지 모르게 무섭고 싫다. 초점 없는 눈동자하며 주름진 발, 걸을 때마다 뒤뚱뒤뚱 목을 앞뒤로 흔드는 것까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하니 손이 부르르 떨리게 무섭다.

나는 베란다 창문으로 대문이 보이는 공동주택 2층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나를 반기는 것은 대문 앞에 앉아있는 많이 지쳐보이는 비둘기 한 마리였다. 순간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졌다. 쫓을 용기도 나지 않고, 담을 넘기엔 교복 치마가 문제였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는 왜 안들어오고 부르냐는 표정으로 2층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엄마! 비둘기… 비둘기…”

“그냥 들어와”

“무섭단 말이에요.. 쫓아주세요”

“비둘기가 뭐가 무섭다고… 기다려!”

엄마가 친히 대문까지 나오셔서 그 비둘기를 쫓았다. 그 비둘기는 날개를 다쳤는지 제대로 날지도 못했다. 비둘기는 안간힘을 다해 날려고 하다가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 치곤 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엄마는 내게 비둘기가 안보이게 길을 내주었고, 난 쏜살같이 내 방으로 숨도 쉬지 않고 뛰었다.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교복을 갈아입고 마루로 나왔다. 그런 나를 엄마는 별걸 다 무서워한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셨다.

그때, 대문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비둘기… 비둘기…”

엄마는 베란다 창문으로 대문쪽을 바라보신 후 빗자루를 들고 대문으로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얘네들이 진짜 귀찮게.. 그깟 비둘기를 무서워하고 난리야..”

나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비둘기가 다시 대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오빠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오빠도 비둘기가 무서웠던 것이다.


오빠는 커가며 내성적인 성격을 조금씩 버리더니 군대 전역 후에는 유년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며 부끄러워하던 오빠… 그런 오빠가 결혼식장에서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하객들을 향해 끝도 없이 큰소리로 만세를 외치는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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