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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을만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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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마당]

어른이 읽을만한 만화

글 |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신문을 보면서 만화를 건너 뛰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스포츠 신문의 경우 아예 만화가 기사 못잖게 독자들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면, 만화책은? 만화가 ‘책’으로 묶이는 순간 어른들의 눈초리는 싸늘해진다. 청소년들의 공부시간을 잡아먹는 ‘해충’ 수준으로 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하릴없이 소일하기 위해 보는 것으로 단정해버린다.
 이런 결론이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탓할 수는 없다. 적어도 여러 가지 만화를 많이는 아니더라도 보고 난 뒤에 이렇게 판단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만화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고 막연히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실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화를 좋아하고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자신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다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면 분명 거기에는 이유가 있고, 그 맞지 않는 것이 틀림없이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화에 관한한 이런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많은 이들이 미처 생각지 않고 다른 취향을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만화는 그런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장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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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점에서 만화에 대한 이런 편견들을 씻어줄만한 ‘어른용’ 만화들을 소개한다. 만화가 왜 예술이며, 미래 멀티미디어 문화시대의 첨병인지 가르쳐주는 거창한 만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만화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남기고 책을 읽고나면 아쉽게 만드는 그런 만화들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결국 보고 나서 재미있으며 읽고나면 자신의 심정을 들킨 듯한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 나온 만화들 가운데 어린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담은 만화들을 골라봤다.
 
 스스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라면, 최근 나온 만화 <아버지>(애니북스 펴냄)를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만화가 소설이나 다큐멘터리처럼 감동을 주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그 주제가 교훈적이면서도 재미도 있기를 원한다면 이 만화가 제격이다. 


 <아버지>는 적어도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만화들 가운데 어른이 즐길만한 만화로는 단연 손에 꼽힐만한 만화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라고하면 기계적으로 ‘야한’ 만화를 떠올리는 경향이 강한데, 이 만화는 그런 ‘성애만화’가 아니라 본질적 의미의 ‘성인만화’다. 어른들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세대차이는 나겠지만 자녀들이 보아도 자녀만의 또다른 감동을 얻을 만한 만화다.

 이 만화는 중년에 접어든 한 직장인이 고향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가족간의 갈등을 소재로 특별한 사건도, 현란한 그림이나 자극적 대사도 전혀 없이 사람을 빨아들여 주인공의 마음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정갈한 그림이 여운을 남긴다.


image 지은이 다니구치 지로는 이 만화로 세계 주요 만화 만화페스티벌 3곳에서 상을 거머쥐었고, 이후 국내에도 소개된 <열 네 살>(샘터 펴냄)으로 다시 한번 만화계에 자기 이름을 각인시켰다. 책은 <아버지>가 먼저 나왔지만 국내에는 오히려 더 나중에 나온 셈이다. 먼저 나온 <열 네 살>도 국내에서 아주 좋은 평을 얻었는데, 작품의 완성도나 감동적인 측면에서는 이 <아버지>를 더 높이 치는 이들이 많다.
 
 이제 결혼을 앞둔 비교적 신참 직장 여성이라면, 그리고 결혼한 중견 여성 직장이라면, 그리고 아내에게 책을 하나쯤 권해주고픈 남성 직장이나 만화를 너무 좋아해 여성취향의 만화라도 상관없이 읽는 남성 직장인이라면, 역시 최근 나온 독특한 만화책 겸 에세이책 <선현경의 가족 관찰기>(뜨인돌 펴냄)를 권한다.
 이 만화는 아이를 낳아 키워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맞아 맞아, 나도 이랬어’라고 할만한 유머가 가득하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이라면 ‘맞아 맞아, 우리 남편도 이래’라고 흉볼만한 것들이 더욱 잔뜩 담겨있다. 지은이는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남자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아image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엄청나게 게으르면서 소심한데도 극단적이고 고집 센 남편과, 부모를 반반씩 닮은 귀여운 딸을 데리고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남의 집을 엿보는 재미, 그리고 다른 집도 다 똑같이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를 전해준다.
 지은이 선현경씨는 사실 지금까지는 ‘만화가 이우일씨의 아내’로 많이 불렸지만 이 만화로 자신도 어엿한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임을 증명해보였다. <도날드 닭> 등의 엽기만화, 또는 저항정신 투철한 신세대 만화로 널리 알려진 남편 이우일씨와는 달리 부드럽고 여성적이면서도 잔잔한 유머가 일품이다.
 
 만화를 통해 재미보다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그리고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만화를 가족용으로 하나 사려고 한다면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 펴냄)를 권한다.
 이 만화는 기사가 아닌 만화로 언론을 실천하는 ‘만화 저널리즘’이란 독특한 분야를 일궈낸 작가 조 사코의 작품으로, 중동 분쟁의 핵심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참상을 만화의 형식을 빌어 고발하는 논픽션 다큐멘터리같은 만화다. 얼마전 작고한 세계적인 석학이자 국내 지식인들에게 엄청image난 영향을 끼친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 만화를 가리켜 “사코의 작품은 우리가 성급하게 어떤 구호에 동조하거나, 낭만적인 감상에 젖어 우리가 승리하리라고 외치는 일을 자제하도록 해준다. 아마 이것은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지은이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 어느 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한쪽을 동정하지도, 한쪽을 영웅시하지도 않는다. 고통받는 절규의 땅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끈다. 해외 주요 언론에서 만화 예술의 매체적 가능성을 선보인 작품으로 “만화사에 남을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국내에 소개된 조 사코의 만화로는 역시 보스니아 내전을 고발한 ‘만화 저널리즘 만화’ <안전지대 고라즈데>가 있다.
 
 진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지금도 간혹 비디오가게에 들를 때 만화책을 빌리기image도 한다면, 성인독자들이 즐길만한 철저한 오락성을 원한다면, 만화 특유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쿄시로 2030>(시공사 펴냄)이란 만화를 ‘감히’ 권한다.
 ‘감히’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이 만화가 취향에 따라서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 만화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만화는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일본만화중에서도 가장 ‘화끈한’ 만화로 꼽힐만하다. ‘야함’의 수준에서도 다른 만화들 이상이며, 폭력적 묘사에서는 거의 영화 <킬빌> 수준이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또 남성들 취향의 성적 묘사가 잦아 여성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한마디로 철저하게 성인 남성들의 취향을 추구하는 만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를 ‘감히’ 권한 이유는, 만화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상상력’ 면에서 뛰어나고 재미 역시 보장된 만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조차 표현하기 힘든 불가능한 상상을 마음대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만화의 매력이라고 하면 이 만화는 상상력에 관한한 극한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충격을 준다. 지나친 과학 추구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일종의 ‘디스토피아’ 만화로, 인간 유전자 개조가 야기한 암울한 미래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만화다. 잔인한데다가 또한 요즘 문화에서 유행하는 ‘악취미 유머’ 또는 ‘화장실 유머’ 역시 가득하다. 그럼에도 진짜 만화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컬트적’ 열광을 얻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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