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그동안 일본 문화를 막고 있던 빗장이 올해부터 완전히 풀렸다.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이유는 사실 일본문화를 우리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물밀 듯 밀려들어오는 세상임을 감안하면 그동안 우리는 일본 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방이 시기상조냐 아니냐를 떠나 시대적 흐름으로 볼 때 일본이란 나라만을 특별하게 외면하기란 실제 불가능한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란 강대국을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가 한국이란 지적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점을 감안할 때, 일본에 대해 올바른 이해부터 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이웃나라라는 특수관계, 그리고 식민지배라는 원한 사무친 역사적 관계 때문에 사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은 다소 특수한 편이다.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 그리고 경험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며,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 긍정적보다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은 그저 야만적이었던 섬나라였지만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건네받아 그나마 개화가 되었고, 근대기에 운좋게 한국이나 중국보다 먼저 개국을 하는 바람에 한발 앞서 국력을 키웠던 운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 역시 ‘가부키’ 분장이 연상시키듯 기괴하고 괴팍스런 분위기의 것들이 많으며, 섹스와 이상한 취미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짐짓 생각하는 편이다. 자생적인 문화보다는 ‘모방의 나라’답게 남의 것 들여와 약간 변형하는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이런 ‘검증되지 않은’ 속설과 생각에서 일본과 일본문화에 대한 오해가 시작된다. 말이 좋아 오해지만 실제는 무지와 오만에 가깝다. 일단 우리의 자존심은 잠시 접어 두도록 하고 객관적으로 현재 일본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우선 질문 하나. 외국, 특히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아시아에서 ‘문화국가’는 어느나라일까? 이들이 꼽게 될 나라는 단 3개국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 인도, 그리고 일본. 나머지 나라는 모두 이 세 문화의 아종일 것으로 싸잡아 추측한다. 우리나라는 짐작대로 아쉽지만 포함되지 않는다. 바로 이 세 나라는 그대로 현재에도 문화 강국으로 인정받는다. 세계 각국에는 이 세나라 문화에 대한 마니아들을 비롯한 추종자와 팬들이 존재하면서 왕성하게 이 세나라 문화를 수입해 소비하고 있다.
일본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모범 답안은, 일찍이 우리나라 고고학계 최고의 ‘어른’이었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의 지은이) 선생이 말한 바 있다. “일본은 과거, 현재 모두 문화적으로 나름대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 우수함, 일본적인 미를 일단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 일본 문화가 세계 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막강하다. 그만한 영향을 미친 나라는 거의 드물다 할 정도다. 특히 미술과 공예분야에서는 일본은 외국 문화인들에게 중국과 동급으로 다뤄진다. ‘미술’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화가 집단은 단연 ‘인상파’다. 남녀노소와 국적을 불문하고, 그리고 학력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회화 유파는 인상파가 유일하다. 우리가 미술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 또한 대부분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 집중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인상파’가 탄생한 것이 일본 미술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문화를 대표하는 목판화 ‘우키요에’가 서양으로 흘러들어가 당시 유화와는 전혀 다른 화풍을 선보이며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고흐를 비롯해 모네 등이 이 일본 판화에 완전히 매혹되어 자신들의 그림의 영감을 얻고 연습해 거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일본 판화나 도자기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를 비롯해 일본 공예품, 일본 건축 등이 서양에 미친 영향도 만만찮은 정도가 아니다. 실제 영어 사전을 펼쳐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영어 표기인 ‘China’가 아니라 소문자로 시작하는 ‘china’는 ‘도자기’란 일반명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뜻하는 대문자 ‘Japan’이 아닌 ‘japan’은 ‘옻칠하다’ 또는 ‘칠기’란 일반어휘로 영어속에 자리잡았다. 중국은 도자기로, 일본은 칠기로 서양사람들을 사로잡아왔던 흔적이다. 역시 아쉽게도 ‘korea’는 없다.
이런 현상은 현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미국 대중문화보다도 먼저 새로운 활력과 힘을 발현시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제 많은 서양 작가, 문화생산자들에게 일본 대중문화가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 <스타워즈>로 세계를 휩쓴 조지 루카스외 스티븐 스필버그 등 수 많은 영화감독들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등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스타워즈>의 축을 이루고 있는 우주의 기사 집단 ‘제다이’가 바로 일본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지다이’(시대)란 단어에서 나왔고, 한때 애니메이션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익을 올렸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일본 만화영화 <정글대제>를 베꼈으며, 영화 <고질라>는 일본만의 어린이 장르인 ‘특촬물’의 대명사 <고지라>에서 나온 것 등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일본 만화와 게임이 세계 최강이란 사실은 굳이 새삼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이처럼 일본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단순히 경제대국이 아니다. 강력한 문화적 힘을 지닌 나라다. 이같은 문화적 저력으로 자국 상품들을 포장해 더 비싼 값에 팔아먹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막강한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당연히 일본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의 준비는 대단히 미흡하다. 실제 서점에 가보면 일본에 대한 좋은 길잡이 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부분 얄팍한 일본 생활 경험에 비춘 에세이거나 학문적 검증이 되지 않은 상식들을 정설처럼 포장한 책들이다. 문제는 일본에 대한 지식을 기계적으로 전달하기라도 하면 좋은데 선무당이 사람잡듯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일본에 대해 사람들에게 가장 잘못된 시각을 주입시키고 있고, 또 실제 일본에 대한 풍부한 이해도 부족한 이가 쓴 일본 입문서로는 단연 <일본은 없다>를 들 수 있다. 아주 짧은 기간 일본에 머문 특정 개인의 사적인 경험으로 일본을 재단해 단정짓듯이 잘라 말하기 때문에 들을 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이런 지식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지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개인적 경험을 앞세우는 다른 책들도 대부분 함량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편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나온 일본에 대한 가장 뛰어난 입문서는 서양사람이 쓴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유문화사 펴냄)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분야에서 최고의 책으로 추천받고 있다. 2차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이 일본이란 특이한 나라를 알기 위해 연구한 성과를 책으로 펴낸 것인데, 지금 읽어도 탁월한 분석들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여전히 유명한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서도 수십년째 잘 팔리고 있는 일본인론의 고전이다.
그러나 바쁜 직장 생활속에서 쉽게 재미있게 일본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들도 많다. 머리도 식히고 출퇴근 시간에 짬을 내 일본에 대한 상식도 늘리고자 한다면 우선 <퀴즈 재팬>(카피바라북스 펴냄·8800원)이 어떨까. 일본에 대한 퀴즈를 단계별로 높아지는 수준에 따라 풀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가 잘 모를 법한 것들만 골라 문제로 내서 푸는 재미가 있고, 풍성한 정보를 곁들여 해답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내용도 충실한 편이다.
일본의 문화가 어떤 역사적 흐름을 거쳐왔는지 간략하게 알고 싶다면 시공사에서 나오는 ‘디스커버리 문고’에 들어있는 <영원한 일본>(넬리 드레이 지음·7000원)이 제격이다. 일단 크기도 작고 분량도 적지만 빼어난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시대별로 요점을 잘 잡아낸 설명들도 밀도가 높다.
내용도 재미있고 글쓴이들의 권위도 검증된 ‘알기 쉬운 일본문화’ 책으로는 글로세움 출판사에서 나온 일본문화총서 시리즈가 있다. 전체 6권 가운데 1권인 <게다도 짝이 있다>와 <스모 남편과 벤토 부인>(각권 1만2000원)이 각각 일본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길잡이책으로 좋다. 일본 전공 교수들이 전공분야별로 글을 썼는데, 전혀 교수티를 내지 않고 재미있게 써서 대중적 눈높이에 맞췄다.
일본사회와 문화를 77가지 키워드들을 풀이하는 책 <맨눈으로 보는 일본>(모티브 펴냄·2만원)도 일본에 대한 지식을 쌓기 시작하는 입문서로는 안성맞춤이다. 이밖에 역시 상식도 늘리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는 <일본을 강하게 만든 문화코드16>(나무와숲 펴냄·9500원)도 호평을 받았던 책이다.
대중문화 분야 대한 심도 있는 일본문화론을 접하고 싶다면 <일본 대중문화-리액션의 예술> (김필동 지음, 새움 펴냄, 9000원)을 들 수 있다. 다른 일본 대중문화 해설서들보다는 한 수 높은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일본만의 문화적 특징으로 꼽히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책 <오타쿠-가상 세계의 아이들>(에티엔 바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2000원)은 현대 일본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일본에서 20년 넘게 산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일본 오타쿠가 왜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지를 세밀하게 파헤치면서 이를 전후 일본의 숨막히는 사회분위기와 입시지옥 등이 빚어낸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풀이한다. 이런 현상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