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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이야기] 숲속에서 터득하는 창조성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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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터득하는 창조성과 치유

허창무(시인, 숲생태연구가)

 

숲과 창조의 비밀

태초의 생명이 물(바다)에서 탄생하여 육지로 올라오고 숲을 이룬 이후, 숲은 생명의 산실이며 보고가 되었습니다. 숲은 식물과 동물, 미생물 등 뭇 생명의 집합체입니다. 숲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생명의 탄생과 사멸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시원인 단세포생명체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해왔습니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숲속은 35억 년 전 최초의 그 모든 생물인 박테리아로부터 현생인류의 조상까지 그 모든 진화과정을 통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면면히 물려받은 유전자를 다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숲은 유전자정보은행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정신은 진화에 의해 미리 형성되어있는 것입니다. 개인은 과거와 연결되어있는데, 자신의 어렸을 때의 과거뿐만 아니라 인류의 과거, 동물의 진화의 과거, 더 나아가서는 생물진화의 아주 먼 과거와도 연결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집단심리가 개인심리로 계속 분화해 나갑니다. '집단무의식은 새롭게 태어나는 생물진화의 전체적인 정신적 유산을 각 개인의 두뇌구조 속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개인의 두뇌는 까마득한 시공을 건너온 정보가 축적된 보고이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앞선 생명체의 유전자를 계승했다하더라도 일상적인 의식의 세계에서는 그것을 꺼내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바다 속 저 깊이 침전되어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모든 생명을 탄생시킨 숲에 그 모든 생명체의 정신적 유산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숲에 가서 지난 세대의 숨은 지혜를 꺼내 보아야합니다. 위대한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이런 심리상태를 객관적 심리화(Objective psyche)라고 말하고, 이 집단무의식 가운데서 '다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원형적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태초의 부름을 듣는다.'고 했지요. 예를 들면, 집단무의식 속에 어머니의 잠재적 이미지가 있다고 하면, 그 이미지는 유아가 현실의 어머니를 지각하고 어머니에게 반응함으로써 재빨리 명확한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어떤 것을 쉽게 지각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쉽게 반응하는 것은 집단무의식 속에 그 소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경험이 많을수록 잠재적 이미지가 표출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집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숲이 부여하는 많은 장점들을 보다 더 빨리 체득하기 위해서는 숲에 관한 체험 및 교육의 기회를 넓혀나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가장 하기 쉬운 방법은 숲에 들어가서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면서 숲의 비밀을 알아내고 위대한 창조의 원천을 발굴하는 것이지요.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 멀리 갈 것도 없이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진리를 터득했고, 공자님도 태산에 올라 유교사상을 가다듬었지요. 이퇴계도 서화담도 모두 요산요수의 스승들입니다. 그뿐인가요. 불멸의 음악을 남긴 하이든, 베토벤, 요한슈트라우스 등도 비엔나의 숲속에서 악상을 얻었지요. 루소는 본격적인 의미의 자연주의자였고, 토마스 만과 헬만 헤세 등 노벨상 수상 작가들도 숲속에서 불멸의 문학작품을 구상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숲은 창조의 원천입니다.

 

숲 치유

일찍이 노자는 도덕경에서 산골짜기를 도()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란 높은 곳이나 누구에게나 보이는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낮은 곳, 은밀한 곳에 있습니다. 골짜기로 내려섬은 노자가 말하는 곡신(谷神: 골짜기의 신)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원천인 골짜기로 간다는 뜻이지요. 생명의 신비에 귀 기울이고, 생의 약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태초의 생명이 물에서 탄생했다고 말했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이 흐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지요. 그곳에서는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특수하고 귀족적인 곳에서 평범한 세계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숲은 '생명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숲에 들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엄마품속에 안긴 것처럼 안온해지는 것은 숲이 모성애를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숲에 들면 어른도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아도 숲에서는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는 피톤치드라는 테르펜 물질이 발산됩니다. 그것은 공기 중의 인체에 유해한 미생물을 죽이므로 숲속 공기는 늘 신선합니다. 산속에서 요양하는 병자가 병후회복이 빠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서라도 숲이 보이는 병실에 든 환자와 벽만 바라보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의 회복속도는 전자가 후자보다 30%정도 빠르다는 임상실험의 결과도 나왔습니다.

자연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 자연의 정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개인의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할뿐만 아니라 지구의 황폐화를 방지하는 데도 공헌하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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