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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 사회를 변화시킬 에너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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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변화시킬 에너지, 와인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졌다. 요즈음 신문이나 잡지를 펴들면 꼭 한 두 꼭지는 와인을 다루고 있다. TV 드라마에서도 가족이나 연인끼리 외식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와인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집에서까지 와인을 마신다. 모임에 나가 보아도 와인을 마시거나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나 내가 정작 와인을 구입해서 집에서 마시거나, 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하는 것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소주나 맥주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 모험을 하기에는 아직은 가격이 높다. 어떤 잔을 사용하여 어떤 음식과 함께 마셔야 좋을까 고민해 보다가 너무 복잡해 그만 포기해 버린 적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와인이 무엇인가? 와인은 정말 낯선 것일까?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어떤 편견이나 선입관이 와인을 이렇게 힘든 것으로 만들었을까?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와인에 관해서 애기하기 보다는 한 '농산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자연의 에너지가 와인으로

옛부터 우리는 '농심은 천심'이라고 하며 농업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농산물을 아껴 왔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힘을 주는 음식이기에 더욱 맛있게, 더욱 보기 좋게 종자를 개량하고 품질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농부는 봄에 돋은 여린 새 싹이 서리를 맞을까 걱정하고, 꽃이 피어 수정기를 맞이 할 때 비가 오지 않을까 저어하고, 열매에 보다 많은 태양 볕을 쪼이기 위해 나뭇잎을 솎아 준다. 이제 수확기를 맞아 좋은 날씨를 기원하며, 풍작 후엔 하늘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 땅의 모든 농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이 이렇거니와 포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똑같은 농산물이다. 이렇게 생산된 새콤하고 달콤한 포도를 우리는 맛있게 먹었고, 우연히 발견된 발효과정에서 알코올이 생산되어 우리는 적지않은 '흥겨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다만, 어떤 나라들은 기후와 토양이 포도 재배에 보다 더 적합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품질 좋고 특징 있는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었다. 포도 나무는 태양이 잘 비치는 곳에서 광합성을 통해 당분을 만들고, 깊이 뿌리를 내려 땅으로부터 영양분과 광물질을 뽑아 올려 자기의 '개성'을 형성한다. 그래서 더운 지역에서 만든 포도주와 서늘한 지역에서 만든 포도주가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한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포도와 화강암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같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홍로' '부사'의 맛과 특성이 다르듯이, 포도도 그 품종에 따라 맛과 향, 그리고 색깔이 다르다는 것까지 염두에 둔다면, 바로 여기서 지구상의 수만 가지 다른 포도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며, 포도주 생산자는 이 포도의 특성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조련사와 같다. 그러면 이 농산물인 포도주가 다른 술들과는 달리 왜 유독 세인들의 다양한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 어떤 매력이 포도주, 와인에 있는 것일까?

 

역사의 에너지, 와인

와인은 8,000년 이상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 병 한 병의 와인 역시 자기 역사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와인이 갖는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와인이 갖는 위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광범위하고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와인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작품 중의 하나이며 각 문명마다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태초부터 찾아볼 수 있는 것, , 그릇, 의복 등과 함께 인류의 첫 생활 주변품 이었다. 발효 과정을 거쳐 술로 만들 수 있는 많은 과일들 중에서 포도는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특별히 사랑받아 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포도로 만든 와인은 인간을 기분 좋게 하는 주요 목적 이외의 어떤 또 다른 능력과 가치를 가져 왔던 것이다.

첫째, 포도의 품종, 토양 그리고 기후에 따라서 와인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기후, 날씨, 와인메이커의 능력, 포도 품종의 선택, 토양, 지형 등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와인이 생산된다. 둘째, 와인은 오랜 기간 숙성과 보관이 가능하며 특히 스스로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이다. 즉 우연과 자연의 산물인 이 포도주가 모든 화학변화를 거쳐 스스로 숙성되고 변화되고 보관 가능하다는 점이다. 셋째, 이처럼 소중한 와인은 또한 재화로서 교환수단으로도 사용되는 등 물질적 가치, 상징적 가치를 가졌다. 와인은 무역을 위한 좋은 상품으로써, 고대인들은 와인을 귀금속이나 노예와 맞교환 하였으며,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장기 보관과 자기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재산의 증식 수단으로서도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삶을 다채롭게 하는 에너자이저, 와인

서구인들에게 있어 와인은 우리의 막걸리요 소주다. 일상의 식탁에 올라 음식의 맛을 돋구워 주며 수분을 공급해 준다. 와인의 산과 타닌은 생기와 신선감을 주며 지방분의 소화와 단백질의 흡수를 도와준다. 와인은 한 입 넣어 식사와 같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분량을 제공해 주며, 음식을 동반하기에 적절한 다채로운 풍미를 가지고 있다. 맥주는 너무 배부르고 맛이 밋밋하며, 소주는 너무 알코올이 높고 향과 맛이 단순하다. 식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음식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볼륨감과 풍미와 부담 없는 알코올 도수는 와인 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더구나 포도주의 색깔과 향과 맛은 매우 다채로워서 그 자체 만으로 충분한 화제거리를 제공한다. 각 포도 품종 마다 다른 색, 그리고 그 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을 즐기는 것 또한 큰 기쁨에 속한다. 그 향은 어떠한가. 100% 포도로 만들었음에도 느낄 수 있는 바나나 향과 복숭아 향은 무엇이며, 버섯 향과 고추 내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이 수십 가지 향이 조화롭게 연출하는 '묵은 향'은 또 얼마나 신기한가! 또한 각기 다른 와인을 공부하며 습득하게 되는 외국어에 대한 지식과 서양 사회와 역사에 대한 문화 상식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 다양한 문화의 산물인 와인, 다채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는 와인은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에너지, 와인

와인 역시 알코올이 있으나 과음하지 않는다면, 건강과 무병장수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특별한 약이 없었던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는 와인이 곧 소독약이자 치료제였다. 오늘날에도 성인병과 관련하여 와인의 좋은 효과를 보여 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와인은 그 특성상 과음하게 되는 술이 아니다. 와인만 홀로 마시는 경우에도 그 향과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즐기며, 식사와 함께 마시는 경우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즐기며 천천히 마시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반주'의 선에서 끝난다. 때때로 과음하여 내 건강을 해치고, 다음 날의 업무에 소홀하게 되고, 사회적 책무를 흐트러뜨리기 쉬운 것을 생각할 때, 와인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와인을 중심으로 하는 음주 문화가 부부와 가족과 사회에 '대화'를 가져 오게 되어 결국 그 사회가 건강하게 되기를 바란다. 부부끼리 그 어떤 기념일에 다정한 연인처럼 와인을 마시며 사랑을 더욱 키워보라. 온 가족이 함께 식사 중에 맛있고 부드러운 와인을 들면서 다 큰 자식들과도 허물없이 대화해 보라. 건강한 부부, 건강한 가족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물리칠 때가 됐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맛이 이상할 뿐이다아직은 즐겨 마시기엔 가격이 높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마셔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 몫 거든다. 그러나 최근의 와인 소비 형태가 20~40대 중심의 가족 소비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마트에서 1만원대 아래의 와인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점, 일반인들이 와인을 '공부'하려 한다는 점 등이 미래의 한국 주류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포석이 아닌가 한다. 때론 약간 어렵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기에.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 포도로 만들었다. 자연은 순리가 있으며, 무리하지 않는다. 와인 한 잔에 자연의 에너지와 삶의 여유가 담겨 있다.

 

 

 

 

 

 

 

필자 :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미식인문학 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과 미식의 매력에 빠져, 와인 교육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20여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 교육과 미식 인문학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sonwin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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