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스터디]
황금의 샘: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대한석유협회 자문위원 이 희두
석유산업 종사자로서 특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 있다면, 그 중의 하나는 다른 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의 『황금의 샘: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 Power)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영문 원서는 1992년에 초판, 2008년에 증보판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1993년에 초판이, 2017년에 증보판이 나왔는데, 둘 다 김태유·허은녕 교수의 번역이다. 세계 최고의 저자가 한국에서 최상의 번역자까지 만난 셈이다.
이 책은 출판 즉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저자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BS/BBC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부동의 석유산업 바이블로 군림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의 석유스터디에서는 작년에 같은 저자의 『에너지전쟁 2030』을 공부한데 이어서 금년에는 이 『황금의 샘』을 공부했다. 번역서 기준으로 총 711쪽에 이르는 대작이라서 12회로 나누어 꼼꼼하게 숙독했다. 시기별로 보자면 『황금의 샘』을 먼저 읽고 『에너지전쟁 2030』을 나중에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에너지 문제들을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에 석유산업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순서를 바꾸었다. 순서야 어째든, 두 권을 책을 모두 읽어볼 것을 권한다.
『황금의 샘』은 이미 서평이 많이 나와 있고, 저자는 본지(2018년 여름호)에서도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여기서는 중복을 피하고자 책의 본문인 세계석유산업 150여년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과 인물을 골라서 ‘답이 달린’ 퀴즈 형식으로 제시했다. 다만 지면제약 상 번역서 제1권에 해당하는 제3부까지로 한정했다. 기회가 되면 나머지 내용도 소개할 예정이다. 아무튼 이 글을 통해서 독자들이 석학 예긴이 세계석유산업에 선물한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생생하게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럼 다 같이, 아래 문장들의 [ ] 속이 비어 있다고 가정하고, 『황금의 샘』 퀴즈에 도전해 보자.
1850년대 초, 캐나다인 에이브러햄 제스너는 아스팔트로부터 석유를 추출해 질 좋은 등화유로 정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것을 [케로신]이라 불렀다. 이 말은 그리스어로 왁스를 의미하는 ‘케로스’와 기름을 의미하는 ‘엘라이온’을 합성한 것이다.
에드윈 [드레이크]는 한때 철도승무원으로 일했다. 타운센드는 드레이크를 펜실베니아州 타이터스빌로 보내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드레이크 대령 귀하’라고 적힌 편지를 몇 통 발송했다. 그 덕분에 1959년 8월 세계 최초로 시추를 통해 유정을 발견한 드레이크는 지금까지 ‘대령’ 드레이크(‘Colonel’ Drake)로 불리게 되었다.
미국 석유산업의 초창기 골격을 형성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 영국 관습법에서 나온 [포획 법규]였다. 사냥 중에 동물이나 새가 타인의 소유지로 옮겨갔다면, 그 땅의 소유자만이 그 사냥감을 잡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록펠러는 1939년 뉴욕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1937년까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는 주식회사 형태로 정유산업을 조직화하고자 했다. 1870년 1월 10일 록펠러는 [스탠다드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명은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표준적인 품질’이라는 뜻이다.
당시 러시아 땅이던 [바쿠]는 고대 배화교도들이 ‘영원한 불기둥’으로 숭배하는 지역이다. [노벨家]의 장남 로버트 노벨은 1873년 3월 바쿠에서 작은 정유공장 하나를 샀다. 노벨家는 이렇게 러시아 석유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차남 루드윅 노벨은 후에 ‘바쿠의 석유왕’이 되었다. 한편 노벨家에 대항해서 바쿠-바툼 철도 사업에 자본을 댄 [로스차일드家]는 1886년에 카스피해 & 흑해 석유회사(러시아어 약자인 브니또社로 불림)를 설립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석유분출 이야기가 전승되어 왔다. 동수마트라 담배회사의 지배인이었던 아이일코 잔스 질케르는 1885년 봄 어렵게 유정 굴착에 성공했다. 그 후 1890년에는 네덜란드 국왕 윌리엄 3세로부터 ‘로얄(Royal)’ 칭호를 허락받아서 [로얄 더치] 회사를 설립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1879년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1882년에는 은행가 J. P. (모건)의 사무실에서 조명시연회도 가졌다. 전기조명으로 석유시장이 대위기를 맞았을 때, <말없이 달리는 마차>라 불리던 자동차가 출현했고, 그 중심인물은 헨리 [포드]였다
텍사스 보몬트 근처 해안의 야생 들소들이 사는 그 언덕은 (스핀들 탑)이라고 불렸다. 1901년 1월 10일,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진흙이 분출되더니, 뒤이어 끈끈한 녹색의 원유가 세차게 터져 나오며 주변 돌들을 수백 피트 하늘 위로 날려버렸다. 이렇게 <텍사스 석유 붐>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생산과 과밀한 유정탑으로 석유생산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자금을 빌려준 은행은 불안한 나머지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로서 [메론家의 걸프] 회사가 탄생했다. 그 와중에, 조셉 컬리건은 1902년 봄 텍사스 회사를 설립했고, 1906년 회사명을 (텍사코)로 바꾸었다.
1900년 질케르에 이어 로열 더치를 이끌게 된 헨리 [디터딩]은 경쟁자 마커스 [새뮤얼]과의 통합 협상에 착수했다. 통합은 1907년에 완결되어 [로얄 더치 쉘] 그룹이 탄생했다. 회사 명칭은 이 협상에서 디터딩이 승자임을 의미한다.
1911년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스탠다드 오일이 분할되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지주회사였던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로서 나중에 [액슨]이 되었다. 두 번째는 순자산 9%를 보유한 뉴욕 스탠다드 오일로서 나중에 [모빌]이 되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오일은 [쉐브론], 오하이오 스탠다드 오일은 소하이오(Sohio), 인디애나 스탠다드는 아모코(Amoco), 콘티넨탈 오일은 코노코(Conoco)가 되었으며, 아틀랜틱은 아르코(ARCO)의 일부가 되었다가 후에 선(Sun)사에 흡수되었다.
윌리엄 녹스 [다아시]의 대리인은 국왕에게 약 5천 파운드의 뇌물을 추가로 주었다. 이 추가 뇌물이 주효해 1901년 5월 28일, 다아시는 페르시아 영토의 3/4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해 60년간 석유 이권을 확보했다. 1908년 5월 26일 새벽 4시, 마침내 석유가 터져나았다. 석유 이권 협정에 서명한지 만 7년에서 이틀이 모자라는 날이었다. 그래서 1909년 4월 19일, 현 BP의 전신인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가 상장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해군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해군함정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유로의 전환은 고통스러운 바다와의 투쟁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한다면 영국 해군의 힘과 효율성은 세계최강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이었다(Mastery itself was the prize of the venture).” 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제목 The Prizes는 여기서 따온 것이다.
1927년 10월 15일 오전 10시, 터키의 바바 거거 1호 유정에서 온 사막을 진동시키는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곧 이어 회사 간 협상이 진행됐다. ‘석유 외교의 탈레랑’으로 존경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이었던 아르메니아 출신의 백만장자인 칼루스트 [굴벤키안]은 커다란 중동 지도를 놓고 붉은 펜으로 지금은 사라진 터키 제국의 국경을 따라 줄을 그었다. 이것이 후일 [적선협정赤線協定]으로 불리게 된 자제조항의 연원이다.
1910년, [멕시코]에서는 포트레로 델리아노 4호 유전을 필두로 유전 발견 붐이 일었다. 그러나 1911년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서 지하자원의 국가소유 원칙을 담은 1917년 헌법이 제정되었다. 그 결과 투자가 감소하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어 멕시코는 곧 세계 석유 강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한편 1922년 12월에는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분지에서 라 로사 유전이 발견되었다.
1930년 10월 3일 오후 8시, 다음날 조간에 “조이너의 시추정, 마침내 대분출 시작!”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서특필된 사건이 일어났다. 세 달이 지나자 두 개의 유정이 더 발견되었다. 동부 텍사스 유전은 [블랙 자이언트]라고 불렸다. 당시까지의 유전 중 최대 규모였다.
1938년 3월 18일 밤, 멕시코 정부는 석유회사 수용명령을 발표했다. 국민들은 멕시코시티를 6시간이나 행진하며 환영했다. 이렇게 새서 [멕시코 국영석유회사]가 설립됐다. 이는 세계 국영 석유회사 중 첫 번째 사례로서 미래 석유산업의 한 모델을 제시한 것이었다.
1874년 뉴질랜드 농장에서 태어난 프랭크 [홈스]는 광산기사로 전 세계를 떠돌며 생활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아라비아 해안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돼 있다고 확신하고 이스턴 & 제너럴 신디케이트 설립하고 바레인과 사우디 지역의 여러 석유이권을 얻었다. 그러다 재정난에 빠지자 1927년 11월 (걸프)가 아라비아 지역의 모든 석유이권을 인수받고 또 쿠웨이트 이권 확보에 홈스를 참가시켰다. 그런데 적선협정 제약 때문에 걸프는 바레인 이권을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석유회사, 약칭 소칼]에게 넘겼고, 그래서 소칼은 바레인, 걸프는 쿠웨이트에서 각각 사업을 벌이는 모양세가 됐다.
1931년 5월 31일, 소칼이 드디어 바레인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그러자 아라비아 전역의 상황이 돌변했다. 1933년 5월 소칼과 사우디 간에 석유이권 협정이 체결되었고, 소칼은 사우디에서 [캘리포니아-아라비안 스탠다드 석유회사, 약칭 카속Casoc)를 설립했다. 한편 1933년 12월 앵글로-페르시안은 쿠웨이트와 50대 50 합작으로 [쿠웨이트 석유회사]를 설립했고, 1936년에는 소칼과 텍사코가 합작회사 [캘리포니아-텍사스 석유회사, 약칭 칼텍스Caltex]를 설립했다.
[쿠웨이트]에서는 1935년 석유탐사가 시작돼 1938년 2월 23일 버간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었다. 곧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1938년 3월 담맘 지역 7호 시추정에서 대규모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로서 세계석유산업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바로 그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새로운 개발활동은 중지되었고 기업들은 일시 휴면상태로 들어갔다. 중동시대의 개막은 종전 이후로 잠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