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빅뱅』 & 『오일의 공포』
대한석유협회 자문위원 이희두
석유협회 석유스터디는 얼마 전 이종헌의 『에너지 빅뱅』과 손지우·이종헌의 『오일의 공포』를 함께 공부했다.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처음이다. 우리가 당면한 에너지 문제들을 가장 빠르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종헌은 에너지전문 저널리스트로 지금은 플래츠(Platts) 한국대표이고 공저자 손지우는 SK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5년 11월에 나온 『오일의 공포』는 발간 즉시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하락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더구나 유가가 머지않아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두 저자는 과감하게 저유가 시대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저유가는 우리 경제에 축복이 아니라 공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저유가의 장기화를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미국 셰일혁명으로 원유와 가스 공급이 계속 늘어나고 채굴원가도 지속 하락할 것이다.
산유국들의 감산합의는 지켜지기 어렵다. 산유국 간 이해충돌, 무임승차 유혹 때문이다.
유가는 투자(자본투자/매출액)와 함께 10~15년 주기의 사이클을 보였다. 2000~13년은 상승기였다. 이런 유가 사이클 상, 2014년에 시작된 저유가는 1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또 지금은 100년 주기의 에너지 대전환이 진행 중이다. 과거 100여 년 전 석탄에서 석유로 이행했듯, 지금은 석유에서 탈석유로, 즉 가스와 신재생으로 전환 중이다. 석유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고, 가스와 신재생이 석탄을 물론 원자력 발전까지 대체할 것이다.
저유가가 우리경제에 공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우리 경제는 정유, 화학, 기계, 철강, 건설 등 중화학 비중이 이례적으로 높다. 이들 산업은 매출과 이윤율이 대체로 유가에 비례하기 때문에 저유가는 불리하다.
조선, 기계, 건설 등 수주산업은 유가가 하락하면 수주물량이 줄고 채산성이 악화된다.
저유가는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의 금융 불안을 초래하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채무위기, 외환위기, 경제위기를 유발한다.
이런 인식 하에서, 저자들이 제안하는 기업의 대응책은 이렇다.
저유가 상황에서는 과감한 투자가 오히려 유효한 방책이 될 수 있지만 위험이 크다. 현실적인 방안은 기존분야에 특화기술을 접목하는 스페셜티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전동 드릴에서 배터리 관리시스템 분야로 진출한 보쉬, 석유에서 화학분야로 진출한 뒤퐁과 다우, 석유화학에서 제약, 농자재로 진출한 바이에르, 바스프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2017년에 나온 이종헌의 『에너지 빅뱅』은 2년 전의 『오일의 공포』에 비해서 그 내용이 훨씬 방대하고 상세하다. 2년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앞선 책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저자의 연구열을 잔뜩 부추긴 모양이다. 모두가 바라는 선순환이다.
『에너지 빅뱅』은 세 장으로 구성돼있다. 이하 순서에 따라 핵심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제1장 에너지, 경제를 바꾼다」 인류의 에너지 역사는 나무와 자연력→석탄과 증기기관→석유와 내연기관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다시 석유에서 천연가스와 신재생으로 넘어가는 대전환기이다. 머지않아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고, 신재생과 핵융합 발전이 석탄발전 심지어는 원자력까지 대체할 것이다. 유가는 시장수급뿐만 아니라 큰 손들의 정치적·전략적 판단에 의해서 좌우된다. 작금의 유가하락 이면에는 미국-사우디 연합이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新7공주파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숨어있다. 개도산유국들은 유가전쟁의 최대 피해자이다.
[제2장 에너지, 세계를 바꾼다] ⓵중동지역 분쟁의 원천은 에너지와 종파다. 집권세력과 다수종파가 다른 곳, 종족과 국경이 일치하지 않는 곳에서 주로 분쟁이 발생한다. 분쟁의 명분 뒤에는 석유 이권이 숨어있다. 셰일혁명, 탈석유시대의 영향으로 중동의 위상은 점점 축소될 것이다. ⓶ 미국은 셰일혁명 덕분에 에너지안보문제를 해결했다. 이제는 중동에서 발을 빼면서 ‘아시아 피봇’ 기치 하에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 셰일광구들의 매장량은 엄청나다. 채굴원가도 하락 중이다. 2015년에 이미 세계최대 원유생산국이 됐고, 가스에 이어 원유도 곧 순수출국이 된다. 미국산 LNG는 세계가스시장에 대변화를 초래했다. 한·중·일은 미국산 원유와 가스의 수입을 늘리고 있다. 미국 우선을 표방한 트럼프는 미국의 신고립주의 경향을 상징한다. ⓷중국은 ‘투 오션’ 전략에 이어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옛날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육상 실크로드와 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상 실크로드를 부활한다는 뜻이다. 중국경제는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중앙아시아,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입을 늘리고 있으며, 해상운송의 안전을 위해 파키스탄과 미얀마를 통한 파이프라인 건설도 추진 중이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정부가 석탄의 대안으로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원자로는 2015년 36기에서 2030년 100기, 2050년 200기로 늘어날 예정이다.
⓸러시아는 유럽 PNG시장 잠식에 대비해 ‘신동방정책’을 추진 중이다. 야말반도와 북극해, 시베리아에서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 열심이다. 가즈프롬(가스), 로스네프트(석유), 트랜스네프트(파이프라인) 3대 국영기업이 그 중심에 있다. ⓹일본은 미·일협력 강화와 더불어 ‘보통국가’로의 이행을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큰 어려움을 겪던 중 값싼 미국산 LNG수입은 일종의 구세주였다. 또 러시아와의 해저 파이프라인 등 대륙과의 연결을 도모하고 있다.
[제3장 에너지, 한반도의 미래를 바꾼다] 에너지 분야는 북한 문제를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석유의존도가 지극히 낮은 북한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원유공급 중단조치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진정한 대박은 ‘연결’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 북한지역을 통과하는 한반도 파이프라인 등은 한반도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아울러 북한에는 그 대가를 현금이 아닌 전기, 가스, 정유화학공장 건설기자재 등의 현물로 지불한다면 핵개발이나 군사전용 등의 우려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에너지전환은 한반도에도 새로운 기회다. 석탄은 어차피 퇴출될 운명이고 원전은 대형사고나 폐기물 처리문제 등을 감안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미래 에너지는 가스와 신재생이라는 답이 나온다. 어떤 에너지든 명암이 있다. 에너지 문제는 결국 과감한 선택이다. 선택을 주저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다.
이상 내용 소개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이 있다. 이 책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유익하다. 저자들은 해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당면 에너지 문제들의 실상은 물론 참신한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저기 논리적인 비약이나 성급한 결론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탈석유시대와 에너지 전환, 전기차로의 대체, 원전의 지속가능성, 핵융합 기술의 실현가능성, 남북 에너지 협력 등이다. 이런 부분들은 독자들이 신중하게 읽고 판단할 거라 믿는다. 아무튼 좋은 책을 써낸 이종헌, 손지우 두 저자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저자와 독자 간의 선순환 과정이 계속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