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스터디」 와 『에너지전쟁 2030』
대한석유협회 자문위원 이희두
대한석유헙회는 김효석 회장의 취임 이후 협회를 학습조직으로 바꾸기 위해서 금년 5월부터 전 임직원이 참가하는 공부모임 「석유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협회 임직원 스스로 좋은 책, 논문, 자료 등을 골라서 함께 읽고, 요약 발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인데, 주 1회가 원칙이지만 신축적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유능한 오일맨’이 되기 위해서는 석유만이 아니라 가스, 석탄, 전기, 원자력, 신재생 등 에너지 전반에 대해서 깊이 알아야 한다. 석유산업뿐만 아니라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해양, 발전 등 관련 산업분야에 대해서도 숙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동은 물론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서 세계 각 지역과 각 나라의 정치경제 정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통해야 한다. 아울러 화학, 물리, 지구과학 등 필수 과학기술지식뿐만 아니라 환경, 재정, 조세,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까지 겸비해야 한다.
이런 기본인식 하에서, 협회가 「석유 스터디」의 첫 번째 교재로 선정한 것이 바로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의 『THE QUEST』((『에너지전쟁 2030』, 이경남 역)이다. 왜 이 책을 선정했는지는, 저자 대니얼 예긴의 다음과 같은 약력을 보면 저절로 수긍이 갈 것이다.
대니얼 예긴은 에너지산업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현재 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협회 회장과 IHS 부사장이고 CNBC 비즈니스 뉴스 네트워크에서 에너지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예긴은 2011년 『THE QUEST』 앞서 1991년에 『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 POWER』 (『황금의 샘』, 김태유, 허은영 역)를 썼다. 이 책은 1860년대 석유산업의 태동부터 1990년대 초반 냉전 말기까지의 세계 석유산업 역사를 다루었는데, 퓰리처 상과 미국 에너지 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석유산업 서적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또 가장 널리 인용되는 고전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석유산업 종사자 또는 에너지산업 연구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필독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에 김태유, 허은녕 교수가 초판을 번역했다가, 최근 2017년 8월에 2010년 개정증보판을 다시 번역했다.
예긴의 저서들은 왜 성공했고 심지어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해서 명쾌하게 정리했다는 점이다. 원서 기준으로 『THE PRIZE』는 908쪽, 『THE QUEST』는 82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관련분야 전문가라도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끝까지 정독하기가 쉽지 않다. 예긴은 이 방대한 분량을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관성 있고 짜임새 있게 훌륭하게 정리해냈다. 둘째로는 치우침이 없는 객관적 태도이다. 석유산업이든 에너지산업이든, 우리 주변에는 너무 편향된 책들이 많다. 이를테면 록펠러나 석유 메이저들은 악이고 OPEC나 개도산유국들은 선이며, 화석연료는 악이고 신재생은 선이라는 등의 단순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하다. 또 그 반대편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런데 예긴의 시각은 객관적이다. 어떤 문제를 대하든 끝까지 과학적, 논리적, 합리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에너지 2030』은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는 각 부의 제목을 중심으로 어떤 내용인지만 간략히 소개한다.
<제1부 석유의 신세계>는 『THE PRIZE』의 후속편으로서 1990년대 초반부터 2011년 무렵까지의 약 20년간에 걸친 석유산업의 변화상을 다룬다. 먼저 소련붕괴와 더불어 새로 탄생한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카스피海 국가들을 다룬다. 소련붕괴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저유가였다는 사실, 옐친이 민영화하던 석유산업을 푸틴이 다시 국유화하고 국가통제를 강화해 나가는 모습, 카스피 지역의 파이프라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 각국의 각축전 등이 흥미진진하게 서술된다. 이어서 1990년대 말 슈퍼 메이저들의 합병과정, 그리고 베네수엘라,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 이른바 「석유국가」들의 극심한 혼란상, 2000년대 들어서 진행된 사상초유 고유가의 배경 등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기술한다.
<제2부 공급 물량의 확보>는 피크 오일(Peak Oil)로 대표되는 석유고갈론 등 석유공급 문제를 다룬다. 우선 역사적으로 거듭 반복되고 있는 피크 오일, 석유고갈론은 오류임을 밝힌다. 그리고 기술발전 덕분에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비재래형석유, 심해유전, 오일샌드, 셰일오일, LNG, 셰일가스 등의 현상과 전망에 대해 알아본다. 이러한 비전통석유의 증가와 2000년대 들어서 급속하게 진행 중인 미국 셰일혁명 덕분에,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공급측면에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중동과 해상 운송로 등 에너지안보 문제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 편이다. 앞으로 미중 대립구도가 어떻게 진전될지가 중요한 변수이다.
<제3부 전기시대>는 석탄, 가스, 원전, 석유 등 발전 믹스, 전력시장 민영화 등 전력산업 전반에 대해서 검토한다. 당분간 원전과 석탄 발전은 줄고 천연가스와 신재생 발전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가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에너지 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에너지 전기화, 전력산업 민영화 등은 앞으로도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본다.
<제4부 기후와 탄소>는 현재 가장 큰 이슈의 중 하나인 환경 문제를 다룬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처음에는 오히려 빙하기 도래를 우려한 일부 선구자들에 의해서 알프스의 빙하연구로부터 시작해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의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세계기후변화협약의 진행과정, 탄소거래시장 탄생의 배경, 각국의 자동차 배기가스기준 등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환경문제를 생각하고 해결방향을 모색함에 있어서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제5부 새로운 에너지>는 태양열과 태양광, 풍력, 에너지절약 등 재생에너지에 대해서 검토한다. 우선 지금의 재생에너지 붐은 이미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직후 급속하게 일어났다가 1980년대 중반이후 저유가로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고 신중한 자세를 당부하기 위해서다. 현재 투자가 가장 활발한 풍력, 연구개발이 가장 활발한 태양광 등이 빠른 시일 내에 진정한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건축단열 등 에너지 절약 및 효율향상에 대한 강조가 흥미롭다.
<제6부 미래로 가는 길>은 바이오연료,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자동차와 연료에 대해서 검토한다. 역사적으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앞서 등장했다는 사실부터 지적하고 들어간다. 바이오 연료는 인간이 연료를 경작하는 시대, 지난 100여년 석유시대 탄화수소인간(Hydrocarbon Man)이 바이오시대 탄수화물인간(Carbohydrate Man)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개발과 충전에 운명이 달렸고 수소차는 아직 기술과 비용 면에서 제약이 많다고 본다. 미래 차를 향한 경주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한 세기 전에는 내연기관차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이번 새로운 경주의 승자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본다. 새로운 승자는 환경, 안보, 비용, 성능을 골고루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차종이 아니라 다양한 목적의 다양한 차종이 동시에 승자가 될 수도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서 각 장의 도입부마다 재미있고 유익한 일화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읽으면서는 재미가 있고 읽고 나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필력부족과 지면제약 탓에 이런 재미난 내용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 책의 한글 번역문은 영어 원문 못지않게 매끄럽고 수려하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직접 읽으면서, 직업적 성취감과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만끽하는 기회를 갖기를 희망한다. 협회에서는 앞으로도 틈틈이 협회보를 통해서 「석유 스터디」에서 다룬 책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질책을 부탁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