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의 여행
글·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
역사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도 없다. 역사는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숨겨뒀다가 하나씩 꺼내어 들려준다. 물론 그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은 후대의 이야기꾼들이다. 언제나 역사란 그 시대의 관심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부각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도 시각이 달라지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언제나 변하는 생물과도 같고, 계속 새롭게 버전업되는 드라마와도 같다. 소설처럼 흥미롭고,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역사의 순간들은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작가들이 매달려온 영원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특별히 역사 소설이란 장르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역사는 그 자체로도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가 만다.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더욱 감동적인 것이다. 당연히 역사책이 그 자체로 소설책 이상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처럼 역사 가운데 특별히 극적인 시기나 장면을 마치 소설처럼 재구성한 역사책들이 부쩍 늘어나 역사책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들 새로운 역사책들은 역사 전문가가 썼기 때문에 소설처럼 허구의 사실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읽기에는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는 점에서 이런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또한 역사소설은 대부분 몇 권씩 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큰 맘을 먹지 않으면 완독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 시도할 용기조차 잘 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런 단행본 역사책들은 1~2권 정도의 적당한 분량이어서 읽는 데에 부담이 없는 것도 강점이다. 또한 예전 역사책들처럼 특유의 가르치려 드는 그런 문체와 딱딱하고 교과서 같은 편집을 버린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역사 이야기 특유의 재미와 함께 역사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하고 진지한 교훈,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인간 군상들의 극적인 모습을 만나 보고 싶다면 요즘 역사책들에 눈을 한번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근 나온 책들 가운데 소설책 읽듯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는 책 2권을 골라 소개한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이덕일 지음/김영사 펴냄·각권 1만2900원
다산 정약용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짜증낼 정도로 다산은 우리 역사를 대표하는 주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 다산의 삶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과서에서 언제나 주입식으로 ‘실학의 집대성자’라는 추상적인 말로만 암기시켜왔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사 최고의 천재로 그를 묘사하는 것도 대중들로 하여금 그를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란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는 대천재이고,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다. 그러나 실제 조선왕조 500년 내내 정약용처럼, 아니 정약용의 형제들처럼, 그들 집안처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예도 없다. 다산 못잖게 다산의 형제들은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고, 동시에 다산 이상으로 처절한 삶을 살았다. 동생 다산처럼 실학자로 유명하며 <자산어보>란 책을 남긴 다산의 둘째형인 손암 정약전, 그리고 다산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삶은 그야말로 처절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정약용의 이름에 가려 이들의 삶은 더욱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전문 작가 이덕일씨가 쓴 이 책은 그저 시험볼 때에나 접하는 교과서 속의 위인이 아닌 인간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의 진짜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정약용의 형제들처럼 한집안의 형제 3명이 동시에 역사적으로 유명하면서도 살아생전 그토록 가혹하게 핍박과 저주를 받았던 비운의 형제도 없었다. 남인과 노론의 당쟁,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정조와 권신들의 갈등, 가혹했던 천주교 박해 등 조선 후기 온갖 역사의 질곡이 그들 집안을 철저하게 난도질한 탓이었다. 한마디로 이들 형제의 이야기는 ‘비극의 종합 선물세트’였다. 지은이는 이들이 학문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한계의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인간의 고결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는 교훈을 결코 강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실감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정씨 형제의 비극은 남인 집안에서 태어난 것에서 비롯됐다. 막내였지만 형들보다 앞서 두각을 나타낸 정약용의 천재성도 오히려 그에게는 화를 부른 원인이 됐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노론과 맞섰던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노론 벽파는 수십년 동안 정약용, 그리고 그의 형 정약전까지 싸잡아 공격했다. 정약용과 정약전이 결국 천주교 신앙을 버렸지만 평생 이들을 천주교 신자로 음해했고, 그 바람에 형제는 평생 그 탄압속에서 살아야 했다.
신앙을 버린 대신 목숨을 건진 이들 형제와 달리 매형 이승훈과 다산의 셋째형 정약종, 정약종의 장남 철상은 천주교 신앙을 지키며 같은 날 목숨을 잃었다. 정약종의 부인과 둘째아들 하상, 딸도 그 얼마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형당했다. 특히 다른 형제들보다 나중에 천주교를 믿기 시작한 정약종이 처형되는 장면은 우리 역사속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힐만한 순간이었다. 형장에서 정약종은 “땅을 내려다보며 죽는 것보다 하늘을 우러러 죽는 것이 더 낫다”며 하늘을 보고 형틀에 누워 칼을 받았다. 망나니가 오히려 혼이 빠져 목이 반쯤밖에 잘리지 않았을 정도였던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순교였다.
약종이 목이 잘린 이틀 뒤에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길에 올랐고 이후 형제는 평생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유배 7년째 되던해, 정약용이 자기 자식을 제쳐놓고 학문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을 정도로 똑똑했던 형 정약전의 아들 학초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떴고, 그 이듬해에는 시집 오자마자 시댁이 풍비박산나는 고통을 겪었던 정약용의 둘째며느리도 먼저 저세상 사람이 되는 참척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 형제는 이런 고통속에서도 세상을 저주하지도 않았고, 또 선비로서의 길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약용은 훗날 ‘다산학’이라 불리는 거대한 학문을 세웠으며, 형 정약전은 유배지 민중들과 어울리며 생물학의 명저〈자산어보〉를 남겼다.
정약전은 귀양 16년째에 결국 숨을 거뒀다. 그리고 2년 뒤, 귀양 18년째에야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미 형제 모두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정약용은 이후 숨을 거둘 때까지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과 벗, 동지들의 묘지명을 쓰는데 바쳤다. 그가 남긴 묘비명은 억울하게 죽거나 귀양갔던 시대의 희생자들의 무죄를 알리는 진혼굿이기도 했다.
이 거대한 비극의 드라마를 통해 지은이는 이들 형제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으나 단지 열린 사회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저주받고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는 과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지 되묻는다.
짜르의 마지막 함대
콘스탄틴 플레샤코프 지음, 표완수·황의방 옮김 /중심 펴냄·1만8000원
“넬슨은 군신에 비유될 수 없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
누가 이렇게 말했을까? 뜻밖에도 그 주인공은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다. 그리고 그가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은 지금부터 100년전, 러일 전쟁이 끝난 뒤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러일 전쟁의 승전국은 일본이었고,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도고 제독의 탁월한 지도력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이순신이 있다면 일본에게는 도고가 최고의 군인으로 지금까지 숭앙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넬슨에 비교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새삼 이순신의 위대함에 놀라게 되는 장면이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지금까지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는 순간이다. 당시 러시아의 해군력은 세계 2위였다. 반면 일본은 신생 공업국으로 군사력이나 국력이나 러시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러시아의 대참패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국가가 유럽 열강을 이긴 전쟁이었고, 이 전쟁의 결과로 두 나라의 운명과 조선의 운명까지 바뀌었다. 일본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한국을 집어삼키며 승승장구 강국으로 발전했고, 러시아는 패전의 충격속에 혁명 열기가 드세지며 결국 볼셰비키 정권 탄생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 책은 이 역사적 전쟁의 두 주인공인 러시아 해군과 일본 해군의 전투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처럼 책은 러시아 해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이유는 당시 러시아 함대처럼 불운했던 함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일본의 승리에 경악했지만, 사실 알고보면 승패는 정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태평양 쪽에 부동항, 즉 얼지 않는 항구가 없었던 러시아는 지구를 한바퀴 돌아가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과 정반대편에 있던 발틱 함대는 무려 9달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아가는 3만6000킬로미터의 여정을 거친 뒤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전장에 도착했고, 결국 최신무기로 무장한 일본 해군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하고 말았다. 말이 전투였지 사실상 도륙과도 같았던 싸움이었다. 일본군의 집중포화속에서 러시아군은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지금까지 대한해협을 건너는 러시아 배들이 바다에 꽃을 던질 정도로 당시 러시아의 젊은 해군들은 처참하게 죽어갔다.
러시아의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지은이는 두 가지 직업의 장점을 잘 살려 장렬히 산화한 ‘러시아 해군 제2태평양전대’의 비극적인 운명을 소설처럼 보여준다. 무능력하면서도 독불장군이었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무모한 지시가 결국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부패할대로 부패한 제국 군대에서 유일하게 청렴했던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입대하기 전에는 전구조차 본 적도 없는 농투성이들이었던 오합지졸 초보 군인들을 데리고 승산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일본군의 기습에 그는 사력을 다해 지휘했지만 곧 정신을 잃고 말았고 결국 일본의 병원에서 패장으로서 도고 제독을 만나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