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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린 투혼(鬪魂), 그 이름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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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저린 투혼(鬪魂), 그 이름은 코리아

변재곤 칼럼니스트(aricom2@naver.com  

 9월의 청명한 가을 저녁, 인천 아시안게임의 개막을 알리는 노래가 장중하고 화려하게 주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고은 시인의 헌시(獻詩)인 ‘아시아드의 노래’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마력 같은 선율이 더해졌다. 
 “막이 오른다 / 문이 열린 / 항구의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 달려라 / 뛰어라 / 온 몸으로 던져라 / 온 마음으로 맞서라 / 스러졌다 일어서라 / 아시아의 오랜 역사로 / 아시아의 새로운 우정으로 / 여기 모여 / 아시아의 역사를 새로 여는 날 / 오늘을 노래하라….”(아시아드의 노래 中) 시처럼 노래처럼 45억의 아시아인은 인천 아시안게임의 개최를 그렇게 선언했다.


 고진감래의 전형을 보여준 선수들이 있다. ‘고교생 명사수’ 김청용(17)을 들 수 있겠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따낸 값진 금메달이었다. 청주 서현중 2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총을 잡게 된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쳤다. 태권도 대표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운동선수의 고뇌를 잘 알기에 학업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그 역시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대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는 약속과 엄명을 내린 후, 본격적인 뒷바라지에 들어갔다.
 헌데 천정벽력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소년은 그날 이후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집안의 가장이자 홀로 남게 된 어머니의 안부를 챙기며,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의 생전의 당부를 되뇌였다.
 경쟁자 팡웨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진종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였다. 김청용의 금메달 수상은 한마디로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의 가족사가 전해진 후 많은 이들이 한마디씩 건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기뻐하시겠구나!

 스포트라이트는 늘 내 것이 아니었다. 그림자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氣)마저 죽을 수는 없었다. 매트위에서 사력(死力)을 다한다는 각오는,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만년 2진 김은경(26.여)은 그날도 같은 생각으로 여자 유도 78kg이상급 준결승에 진출했다. 아뿔싸! 일본의 이나모리 나미와 붙은 경기에서 허벅다리걸기 한판패를 당하면서, 매트에 닿은 오른쪽 어깨가 급기야 탈구되고 말았다. 운명의 여신은 이번에도 비껴가는 듯 했다. 곧 있을 동메달 결정전에 나설 것인가, 기권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그 누구도 그녀의 기권에 이견을 달 수 없는 큰 부상이었다.
 이대로 자신과의 승부를 끝낼 수는 없었다. 어금니를 질끈 물고 탈구된 어깨를 어찌어찌 끼워 맞추고, 경기에 나섰다. 상대는 나지르 사르바쇼바(키르키스스탄)였다. 투혼은 결코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것인가. 종료 직전 혼신을 다해 안뒤축걸기를 시도했다. 주심의 손이 그녀의 승리를 알리는 순간, 매트위에 떨어진 도복의 띠마저도 주을 수 없었다. 이미 어깨뼈는 또 다시 탈구된 상태였다. 처녀출전으로 이룬 그녀의 아시안게임의 동메달은 그 어떤 메달보다 값졌다. 포기하지 않는 그녀에게 관중들은 소리쳐 외쳤다. 장하다! 정말 장하다! 김은경.


 남자역도의 원정식(24)은 작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과 아시아클럽 선수권에서 인상144kg, 용상 180kg, 합계 324kg을 들어 5관왕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미래를 이끌 역사로 주목받았다. 당연히 인천아시안게임은 자신의 기록을 갱신할 절호의 기회였다. 호사다마였을까? 인상에서 밀렸던 그는 용상에서 승부를 걸고자 했다.
 무사히 1차시기를 성공하고, 2차시기에 한꺼번에 183kg으로 중량을 올렸다. 동메달을 확정짓고 싶어 했다. 이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바벨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왼쪽무릎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내에게 금메달을 안기고 싶었다. 그 일념 하나로 지옥 같은 훈련도 견뎌냈다. 막상 3차시기에 출전도 못할 부상을 당하니 기가 막혔다. 앞으로 1년간의 재활기간을 묵묵히 참아낼 밖에. 외신은 그에게 ‘최선을 다한 당신이 챔피언’이라는 제목을 달아 송고했다. 그의 도전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유도 천재’ 김재범의 몸은 가히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다. 왼손의 셋째손가락은 구부러지지 않고 어깨와 무릎은 이미 잦은 부상으로 전성기를 지난 상태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달성했기에 은퇴를 해도 무방한 스타급 선수였다.
 하지만 본인이 허락한 순간만이 은퇴라는 일념으로 끝나면 다시 또 새로운 목표가 설정됐다. “나는 1%이지만 그 1%에서도 더 1%가 되고자 한다.”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 아시안 게임 2연패라는 금자탑이 만들어지게 됐다. 진정한 유도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개인보다 팀이 우선임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는 구기 종목이었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것이 오히려 선수들을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축구 대표 팀을 꼽고 싶다. 결승전이 끝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병역혜택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 경기, 한 경기에만 집중했다.
 결승전은 얄궂게도 북한과 36년만의 맞대결이었다. 좀처럼 승부를 짓지 못하던 대표 팀은 연장후반 15분경에 임창우(22)의 오른발 슈팅이 골망을 가르면서 대반전 드라마가 완성됐다. 7경기 전승과 13득점에 무실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이광종호(號)의 팀플레이는 눈부셨다. 브라질월드컵 이후 침체기를 맞은 대표 팀에게 서광이 비치는 날이기도 했다.


 남자농구의 금메달은 유재학 감독의 용병술과 리더십이 십분 발휘된 결과였다. 올해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뉴질랜드 전훈 중에 감독은 선수에게 부쩍 화를 많이 냈다. “잘난 체하고 멋 부리는 농구를 그만두고, 적극적인 농구와 팀플레이에 집중하라.”는 주문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다잡아 나갔다. 선수 선발과정도 병역혜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직 실력만을 우선시했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만했다.
 반면 야구대표팀의 금메달은 일부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유는 처음부터 병역혜택을 위한 팀 구성이라는 순수성에 대한 의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6일간의 열전에서 종합 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정한 승리자는 메달의 획득과 색깔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지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국가대표라는 현재의 위치에 오른 모든 선수가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이제 우리도 금, 은, 동으로 나누어 차별적으로 표기하는 방식보다, 모든 메달을 종합적으로 집계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모색할 때이다. 행복이 성적순이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불행을 강요하는 사회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도 메달을 구별하지 않고 총 합계로 집계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국가별 메달집게를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인천아시안게임의 아쉬운 점이라면 대회 조직위원회의 준비부족을 들 수 있겠다. 경기진행 도중에 체육관이 정전되고, 대회 성화가 12분간 꺼지는 소동이 일어나고, 관람권 발매기가 부족해서 입장을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등 7년여 준비를 무색케 했다.
 여하간 소홀했던 부분은 매뉴얼을 만들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로 넘겨 성공적인 개최의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 이제 아시아는 인천의 힘과 사랑과 우정을 기억하면서,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기약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리 서로 같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 이것만은 잊지 말자. 시인의 말처럼 오늘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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