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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픈 날 우리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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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픈 날 우리는 달린다

여행작가 길지혜

<자유로야경(1)>

자유로. 시원하게 뻗은 그 길은 어쩐지 아련하다. 지금은 닿을 수 없지만 언젠가 이어질 그 길목까지 정성스레 닦아놓은 것 같아서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북단에서 파주시 문산읍 자유의 다리에 이르는 46.6km의 여정. 봄꽃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어느 날이면 문득 가고 싶어지는 그곳. 굽이굽이 펼쳐진 임진강을 바라보며 우리는 달린다. 지금, 서울 시내의 대표 드라이브 코스로 정평이 난 자유로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바람이 되고픈 날 우리는 달린다. 쉼 없이 폐달을 밟아 느끼는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한 때 유행한 CF의 한 장면처럼 자유로이 떠나고픈 게 누구나의 마음이다. 평소 출퇴근 시간이면 꽉 막혀 있을 자유로가 일요일 오전엔 한가롭다. 서울로 매일같이 왕래하는 23만 대의 차가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주말에야 그 이름값을 한다. 이 날은 아무런 막힘없이 달렸다. 창문을 열었다. 마주 오는 바람이 자동차 몸체를 타고 창밖으로 뻗은 내 손을 세차게 스쳐지나 간다. 길은 늘 말이 없지만 답답한 도시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가까이 느끼는 존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바로 길이다.

<그곳>

평양과 개성으로 자유로가 이어지는 그 날

왕복 4차선과 6차선, 10차선으로 도로가 변덕을 부려도 줄곧 임진강과 가까운 1차선 도로를 택했다. 90km의 규정 속도로 달리면서 더 이상 핸들을 비틀지 않아도 된다. 2차선 국도의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도 좋지만, 때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마음도 뻥 뚫리는 것 같다. 남한에서 갈 수 있는 마지막 땅까지를 연결하는 길이다. 달리는 내내 잘 알면서도 낯선 도시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평양과 개성. 표지판을 따라가면 마치 평양과 개성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간 이어질 그 길. 그 날은 자유로가 담은 염원처럼 진정한 자유로가 되는 날일게다.

가는 길 어디를 들려도 관광명소

자유로는 드라이브 코스이자, 유명한 주말 나들이 코스다. 도로의 출구 어디를 빠져나가도 관광명소와 이어져있다. 자유로 초입 행주산성·장릉·자운서원·화석정·지석묘군 등의 유적지를 비롯하여 재두루미도래지, 오두산 통일전망대, 파주 헤이리 마을, 파주 프로방스, 아울렛쇼핑몰, 임진각 등의 관광지가 즐비해 볼거리가 넘친다.

<임진각공원>

바람의 언덕이 전하는 마음의 바람

이 길 끝엔 임진각이다. 북녘 땅을 아스라이 볼 수 있는 곳. 임진각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평화누리 공원에는 너른 잔디밭 위 펄럭이는 바람과 솟대의 아름다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가느다란 나일론실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독수리 연은 어떻고. 자연의 바람과 우리 마음의 바람이 한데 어울려 더욱 세찬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99만 평방미터. 30만 평에 달하는 잔디언덕이 얕은 경사를 따라 대형 피크닉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이곳까지 다다르는 길을 자유로라 부르는 데엔 평양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바람개비><통일부르기>

길 위를 달리며 맞았던 바람은 이곳에서도 불어온다. 색색의 바람개비도 오케스트라의 지휘에 맞춰 일제히 연주를 시작한 것 같다. 3천여 개가 구릉을 가득 메우고 연인과 가족, 아이들은 그곳에서 동심으로 돌아간다. 모두의 공원이다. 혼자여도, 누군가 함께여도 전혀 외롭지 않은 자유로를 달려 그 끝에 다다른 자유는 맛있다.

<북한>

북녘이 고향인 어린들에게는 그리움을 대신하는 철마 앞 매점의 북한 소주. 수많은 실향민들이 향수를 달래는 곳이다. 바라만 봐도 가슴 뭉클해지는 자유의 다리. 벽 같은 철망에 걸린 무수한 소망들이 흩날린다. 바람은 명징하다. 자유로운 바람은 소원을 태우고 경계 없이 다닌다. 이것이 자유로를 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곳, 역사의 슬픔을 견지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내 고향이 있기에 마음 따듯해지는 곳이다.

돌아오는 길엔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 들려도 좋겠다. 서울의 젖줄인 한강과 북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임진강 모두를 만날 수 있다. 118m 오두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옛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나오는 오두산 성터가 남아있는 곳으로 고대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1992년 제1 자유로가 개통된 해 개관해 지금껏 1,800만 명이 다녀간 곳이다.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의 전망대는 맑은 날이면 북한의 명산과 주요도시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낭만 드라이브, 국도를 달리다

쭉 뻗은 대로의 드라이브보다, 구불구불한 이차선 국도를 따라 낭만을 플러스 하고 싶다면 양평으로 핸들을 돌려보자. 강변길 따라 만나는 가슴 탁 트이는 풍경은 다가오는 여름, 마음 뉠 곳을 마련해주는 휴식처가 되어준다. 양평은 용문산을 비롯한 명산 여럿이 병풍처럼 둘러져있고 남한강, 북한강의 푸른 물줄기를 휘감고 있어 하늘 아래 절경이라 이를만한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천릿길을 달려온 두 물줄기가 한 몸을 이루는 두물머리’, 일 년 내내 아름다운 수련 꽃이 가득한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등 볼거리도 넘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양평군립미술관을 목적지로 설정해두고 드라이브 코스를 짜보자. 양평군립미술관은 개관 2년 사이 약 32만 명이 다녀갔다. 양평군민 전체 인구의 세 배에 달하는 숫자다. 삼박자를 갖췄다. 쉽고, 재밌고, 열려있다. 예술가의 마을 양평으로 향하는 길 위에 올라서면 달리는 동안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고, 풍류를 한껏 즐기는 예술가가 될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길 위에서 낭만가객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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