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에서 데리다까지
황정운
우연히 시작된 100권의 책 읽기
내년에는 체계적으로 책을 읽어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2011년 연말에 집 근처 교보문고에서 <신기한 수학 나라의 알렉스> 책을 사왔던 기억이 납니다. 한 주에 한 권씩 읽으면 52권 정도 읽겠다는 생각으로 1월 1일 첫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꼭 1년 전인데 생각보다 책 읽는 속도가 빨라 100권을 읽어봐야지 라고 중간에 계획을 바꾸었죠. 책 100권을 읽으면 회사에서 누가 백만원을 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알아보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재미있는 기억이 납니다.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목차를 정리하는 재미가 점점 가속이 붙어 결국 연말에 다다른 요 즈음 무사히 책 100권 읽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책은 많이 읽어왔으나 늘 주제가 두서 없었고 그 깊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학교 다닐때는 묵향, 비뢰도, 퇴마록 같은 판타지와 무협지를 미친듯 읽었고 가끔 정신이 번쩍 들어 도서관에서 실락원 같은 고전을 빌려오면 역시 한 자도 안 읽고 반납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대학 때는 .. 온통 경영, 경제, 금융과 같은 분야나 물리학, 천문학과 같은 자연과학 책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과 같이 인문, 미학,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과 4~5년 전 부터였습니다. 그것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서 희랍 철학책을 읽었다가, 갑자기 서양미술사를 읽었다가 하는 식이었는데, 늘 아쉬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죠. 그러던 중 2010년엔가 회사 근처 명동예술극장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아 어떤 식으로 책을 읽어야겠다, 어떤 식으로 지식의 물줄기를 이어나가야겠다 라는 느낌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마 "인간의 삶이란 철학의 뿌리에서 시작하여 인문의 기둥을 지나 예술과 건축이라는 잎을 피우는 것" 이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읽어왔던 인문과 미학의 텍스트들이 저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올해는 그러한 전체의 틀 - 철학의 뿌리에서부터 예술의 잎까지 - 을 통사하여 다양한 텍스트를 읽어보자는 계획으로 책 100권을 읽어봤던 것 같습니다. 분명 올해가 아닌 작년, 재작년에도 비슷한 분량으로 책을 읽어왔을테지만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책을 읽으니 여러가지 생각이 정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1) 당위가 아닌 함께 투쟁하고 고민하려는 작가의 글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곰곰히 올 해 읽은 책들을 생각해보니 상대적으로 제가 더 감명받았던 작가들은 단지 본인이 아는 내용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의 성찰을 보여주거나, 혹은 정보의 나열이 아닌 사유의 흐름을 책 읽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려는 작가들의 텍스트가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나의 서양음악 순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고뇌의 원근법>, <디아스포라 기행>, <언어의 감옥에서>, <난민과 국민사이>,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등의 책을 통해 만난 재일조선인 서경식 선생의 글은 이미 여러차례 제가 받은 감동을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이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이건 이럴수도 있다는 고민의 텍스트들이 올 한 해 이 분의 책에 열광토록 했습니다. 더불어 상명대 박정자 명예교수의 책도 훌륭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에서 데리다까지>, <시선은 권력이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빈센트의 구두> 등과 같은 책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미학에 관한 책들인데 철학의 깊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그 세계를 알 수 있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을 쓴 쁘리모 레비의 책도 훌륭했습니다. 물론 20여년 전 자살하며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말이죠.
반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여러 작가들의 글은 선입견 때문인지 쉽게 읽히지 않았는데요. 오래 전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며 감탄했던 진중권 의 <서양미술사> 시리즈는 다소 어지럽게 다가왔고, 혹시나 하고 읽었던 공지영 의 책은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분명 그 나름대로 깊숙한 사색이 있었을테지만 읽는 내내 그 둘의 얼굴이 책 위로 아른거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습니다.
2) 결국 미학은 철학에서 시작한다.
대학 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던 것 중 하나가, 나는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점에 관심이 많은거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책을 읽다보니 정확히 제가 관심있던 분야는 "이건 왜 아름다운건가?", "어떤 건 사람들에게 미로 환영받고, 어떤 것은 추로 배제되는 것일까?" 라는 아름다움의 왜 에 대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올해 김용옥의 <아름다움과 추함>, 이중톈의 <미학강의>, 이현우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 등의 책을 읽다보니 결국 그 아름다움의 왜를 찾아나서는 학문이 미학인데, 이 미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철학의 기반이 없이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안타까움만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냥 어디 미술관 가서 아 이 그림 멋있다, 이 화가를 좀 더 알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는다하여 미학을 알아갈 수는 없겠단 뒤늦은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과 함께 가을부터는 '철학에 대한 책 읽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이정우 선생의 철학입문강의를 알게되었고 지난 늦가을부터는 온라인으로 희랍 철학부터 조금씩 공부해나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내년에는 서양철학사, 현대철학사, 실존주의철학에 대한 다양하고 두꺼운 텍스트를 일 년 내내 잘 읽어보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 해 처럼 무식하게 100권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정도 느긋하고 진지하게 그런 텍스트들을 읽어내려 하고 있고 삼 년 정도의 책 읽기 계획도 대강은 생각해 두었습니다. 결국은 철학과 예술의 교집합 속에 미학이 있는 것인데 각각의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두면 나 스스로는 삼 년 뒤에 많은 생각의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시 목표를 세워두면 어떻게든 해 나간다는 격언을 마음 속으로 떠올리며, 내년에도 99%의 지겨움과 1%의 자기만족으로 가득한 텍스트 읽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