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의 일본 오타루
이동진_네이버 영화평론가
그런 눈(雪)은 처음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를 떠난 밤 기차가 오타루를 향해 달리는 동안, 눈은 세상의 질료였고 환경이었으며 리듬이었다. 비명 대신 기적 소리를 내뱉으며 눈의 나라로 빨려 들어간 기차가 소실점을 향해 외로이 두 줄 철로를 탈 때, 철길 좌우로 생겨나는 눈보라가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는 현실감을 지웠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눈과 수평으로 펼쳐지는 눈이 호수처럼 고여있는 눈과 만나 빚어낸 하얀 밤은 몽롱했다.
‘러브 레터’에선 그렇게 환상인 듯 현실인 듯 모호하게 묘사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온통 눈 세상인 오타루에서 찍은 그 영화에선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겨울은 ‘환’(幻)의 계절이니까. 새로 내리는 눈이 이미 내린 눈 위에 켜켜이 쌓여가며 일종의 나이테를 이루는 곳에선 삶이 좀더 자주 꿈처럼 느껴질 테니까. 사람의 키를 훌쩍 넘겨 쌓인 눈 사이로 낸 좁은 길 위를 모두들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지도를 얻으러 들렀던 삿포로 공항 안내 센터에서 ‘눈길 걷는 법’이란 소책자까지 함께 챙겨줬던 게 뒤늦게 이해가 됐다.
아침을 맞은 오타루 우체국은 분주했다. 오타루는 많은 이의 가슴 속에 추억처럼 남아 있는 멜로 ‘러브 레터’의 촬영지.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곱게 쓴 편지를 부치는 사람은 없었고 소포를 보내는 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과 핸드폰 때문에 글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손길에 스스로를 맡길 필요가 없었다.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설레게 했던 시간의 문턱이 사라진 곳에서 허전해진 사람들은 부지런히 물건을 보냈다.
오타루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편지를 부친 뒤 자전거를 타고 떠나려던 후지이 이츠키(女)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릴 듣고 고개를 돌린다. 부른 사람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男)를 등반 사고로 잃은 지 몇 해가 지나도록 잊지 못해 그가 중학 시절 살았던 오타루까지 흔적을 찾아온 히로코였다. 방금 스쳐지나간 사람이 동급생이었던 후지이 이츠키(男)에 대한 추억을 자신에게 편지로 일일이 전해주었던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女)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파 속에서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110년 되었다는 일본 전통 여관에 묵었더니 정확히 아침 8시에 주인 여자가 들어와 이불을 갠 뒤 무릎을 꿇고 아침 인사를 한다. 방 한 가운데 차려주는 정갈한 아침 식사를 하고 너무나 예쁜 소도시 오타루의 시내를 걸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오타루 운하였다. 물길 옆에 운치 있게 난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 운하 주변의 오르골 가게에서 바깥에 설치해 놓은 눈더미 사이로 누군가 하트 모양을 새긴 후 그 밑에 작은 굴을 파놓은 것을 발견했다. 굴은 딱 두 사람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이 굴을 파놓고 잠시 들어앉았을 연인들에게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은 예배당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참 소담스럽다는 생각을 하다가 오르골 소리를 좇아 충동적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각양각색의 귀여운 오르골 중에서 핸들을 돌리면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상자 모양의 오르골을 샀다.
운하 근처에는 갈 곳도 많았다. 주변을 따라 산책하다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유리 공방(工房)에 들러 3층 전망대에 올랐더니 비망록 노트에 한국 관광객들이 적어놓은 구절들이 적잖이 보였다. “△△와 ◇◇가 처음 떠난 여행. 너무 좋다. 오타루에 오길 잘했어요”라고 남자가 쓴 한글 메모 밑에 여자가 짧게 덧붙인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씨, 사랑해요.” 사랑의 추억은 언젠가 사라져도, 사랑의 흔적은 불멸한다.
오타루 시내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 외곽으로 10여분 달리자 아사리 중학교가 나왔다. 극중 두 명의 후지이 이츠키가 다녔던 학교였다. 한 학년에 3개 반(班)이 있는 3층 짜리 작은 교사(校舍)는 방학중이라 텅 비어 있었다. 일본어를 가르친다는 40대 교사 이타바시 토우루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학교 곳곳을 둘러보았다. 촬영 장소였다는 2학년 B반 풍경은 한국의 교실과 다를 바 없었다. 칠판 오른쪽 구석엔 주번 이름을 쓰는 자리가 있었고, 교실 뒤 벽엔 학교 행사 때 찍은 아이들의 장난스런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앉았던 교실 뒤쪽 의자에 앉아보니 내가 지나온 10대 시절과 ‘러브 레터’의 학교 생활이 연이어 떠오르며 겹쳐졌다.
학교 도서실은 육중한 책장이 꽉 들어찬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여느 교실처럼 작고 소박했다. 극중 도서실 장면들은 시내의 유서 깊은 건물인 구(舊) 일본우편선 오타루 지점에서 따로 찍었지만 계속 휴관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학교 현관 쪽으로 갈 때 멀리 복도에서 다른 교사가 지나가자 영어로 이야기하느라 이제껏 과묵했던 이타바시 선생님이 신기한 듯 들뜬 일본어로 외쳤다. “러브 레터 때문에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야.”
현관에서 여학생 10여명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까르르 웃으며 도망간다. 3학년인 농구부원들이라는데도 생각보다 작았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에게 어려 보인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들도 ‘러브 레터’에서처럼 그들만의 진지한 사랑앓이를 한다. 풋사랑이라고 웃어넘기지 말 것. 최초의 상처가 가장 깊으니까.
오타루와 삿포로 중간 쯤에 있는 제니바코 역 근처엔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사는 곳으로 내내 영화 속에 나왔던 집이 있다. 어렵게 집 전화번호를 얻어 사전에 여러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주소만 들고 무작정 택시를 탔다.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때마침 쏟아지는 폭설 속에서 기사는 방향을 제대로 못잡은 채 끝없이 헤맸다. 간신히 집 근처에 도착했지만 엄청난 눈 때문에 차가 집 앞까지 갈 수가 없어서 200여 미터를 걸었다.
언덕 아래 골목 끝 그 집은 초인종 누르는 부분을 제외하고 입구 기둥 전체가 눈더미에 묻혀 있었다. 촬영 당시 설치했다는 인상적인 빨간 우체통은 없었지만, 집은 한 눈에 극중 장면들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영어 ‘익스큐즈 미’와 일본어 ‘스미마셍’을 번갈아 외치며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 정적 속에 함박눈만 쌓였다. 눈은 눈(眼)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침묵이었다. 움직여도 소리를 내지 않는 눈이 얼어붙은 채 떨고 있는 나그네의 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내려앉았다.
히로코가 눈 속에서 누워 있던 첫 장면을 찍은 텐구산은 겨울철 인기 높은 스키장이었다. 단체로 스키장에 온 초등학생들 때문에 강습 받는 곳은 붐볐지만 평일이라서인지 슬로프는 한산했다. 스노우 보드를 든 사람들에 섞여 케이블 카를 타고 산에 올랐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시가지 전체와 바다를 눈 멀도록 내려다보고 있자니 한 해의 시작과 끝이 모두 들어 있는 겨울은 ‘환’(環)의 계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계를 없애며 세상을 침묵 속에 잠기게 하는 몽환적인 눈 속에선 시작도 끝도 결국 서로 꼬리를 물고 끝없이 도는 시간의 환(環) 위 어딘지도 모를 작은 점에 지나지 않았다.
스키장에서 내려가는 케이블 카에 타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러브 레터’는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남자와의 사랑을 떠올리는 두 여자의 추억을 다룬 영화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을 뜻하는 신 크로노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신 가이아의 자식이었다. 오타루의 겨울, 하늘과 땅 사이엔 온통 새하얀 눈이 시간을 덮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열정도 그리움도 꿈도 현실도 모두가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케이블 카가 덜컹 움직였다. 그래도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숨을 참은 채 죽은 듯 눈 속에 한참 누웠다가 숨을 토하며 일어나 산을 허위허위 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히로코처럼.
영화 소개-‘러브레터’
‘러브 레터’는 일본 극영화로 한국에서 가장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감독 이와이 슈운지는 홍콩 감독 왕가위와 함께 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열혈 추종자들을 거느렸다. 몇 해 전 등반 사고로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던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을 발견한 뒤 호기심에 거기 적힌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그 주소는 그와 함께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명이인 여자 이츠키의 것. 여자 이츠키는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남자 이츠키에 대한 추억을 히로코에게 하나씩 편지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