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와 ‘스타워즈’
글 | 이동진_네이버 영화평론가
북아프리카 튀니지 여행을 결정했을 때, 제일 먼저 상상한 것은 광막한 사막과 불모의 황야였다. 베두인족들이 낙타를 타고 끝없는 모래 언덕을 넘어 석양 속으로 사라졌던 곳. 베르베르인들이 땅 속 깊숙이 파들어간 굴로 집을 삼아 타오르는 광야의 열기를 피했던 곳. 튀니지에서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황량한 대지였고, 그 속에서 티끌이 되어 부유하는 나 자신이었다.
튀니지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내게 튀니지의 인상을 결정지은 것은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였다. 얼마나 이국적이고 초현실적인 풍경이면 SF의 공간으로까지 활용되었을까. 1977년에 시작해서 2005년에 끝난 ‘스타워즈’ 시리즈는 부자(父子)인 두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와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의 고향인 타투인 행성 장면을 모두 튀니지에서 찍었다. 타투인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었다.
1. 모스 에스파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부터 ‘스타워즈 에피소드 3-시스의 복수’까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고향 마을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세트는 쇼트 엘 가르사의 모스 에스파라는 곳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모스 에스파에 도착했을 때, 무엇보다 세트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아나킨의 주인인 와토의 만물상을 비롯, 스태프들이 4개월 반 동안 30~40동에 이르는 건물을 일일이 지어 외계의 마을을 통째로 재현한 이곳은 보존상태가 상당히 훌륭했다. 튀니지 곳곳을 여행하고 나니, 스타워즈 세트장 안 건물들의 외양이 튀니지 남부 사막 지역의 전통 부락 모습에서 고스란히 빌어왔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에 등장했던 주인공 루크 집 마당의 커다란 안테나 2개가 옮겨져 서있는 입구를 지나 세트 사이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와토의 만물상 속으로 들어갔다. 세트의 외관은 영화 속 장면들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말끔한 편이었지만, 폐허에 가까운 내부는 바람이 바깥에서 실어온 모래들로 지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다스 몰과 콰이곤 진이 광선검 대결을 벌이고, 아나킨이 포드 레이스를 펼치는 장면을 찍었던 곳 주변은 온통 거대한 모래 사막이었다. 모래 언덕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세트장 바로 옆의 사구(砂丘)에 올랐다. 발목까지 푹푹 빨아들이는 모래 위를 걷다가 충동적으로 신발을 벗어 저 멀리 아래 세상을 향해 하나씩 힘껏 던졌다. 양말까지 벗어 주머니에 넣고 나니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세사(世事)에 지친 객(客)의 몸을 세사(細砂)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모래는 차갑고 부드러웠다.
사막에선 모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어왔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결국 콰이곤 진 일행이 거센 모래 바람을 피해 어린 소년 아나킨의 집을 방문함으로써 빚어지게 된 장대한 비극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래는 고체이고 액체이며 기체였다. 한데 모여 언덕을 이룰 때는 고체였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때는 액체였으며, 바람이 불어 지표면에서 흩날릴 때는 기체였다. 사막에서 모래는 무형의 형질로 그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이룬 모래는 잔바람에도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임 없이 속삭였다. 이제 어둠이 사막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모래는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수근거릴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는 - |
2. 쇼트 엘 제리드
사하라가 모래 바다였다면, 쇼트 엘 제리드는 소금 바다였다. 지표면 융기 후 바다가 증발해 거대한 소금 평원으로 변한 이곳에선 그 어떤 경계도 없었다. 실구름이 옅게 펴져 있는 하늘과 소금으로 뒤덮인 땅은 지평선을 문질러 없앤 뒤 서로를 부둥켜안고서 전후좌우 없이 동그란 세상 하나를 만들었다.
쇼트 엘 제리드는 튀니지 남서부 도시 토주르에서 남동부 가베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횡단해야 하는 거대한 소택지다. 이곳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루크가 악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임무에 동참할 것을 오비완 케노비로부터 요청받고 고민에 잠겨 배회하던 장소로 등장했다.
한때 바다의 밑바닥이었던 곳을 이리저리 헤매는 느낌은 특별했다. 늦겨울이라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햇살만큼은 따가웠다. 루크가 쇼트 엘 제리드에서 서성이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의 장면에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으로 묘사된 데에도 이유가 있을 법했다. 어디서나 작렬하는 튀니지의 태양은 흡사 두 개의 거대한 광원을 가진 듯 했으니까. 색의 판타지와 빛의 리얼리티. 온통 비현실적인 풍광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것은 햇빛이었다.
여름이면 쇼트 엘 제리드 곳곳에서 신기루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는 듯 보이지만 다가가면 아무 것도 없는, 존재와 무(無)의 도착(倒錯)된 인연. 신기루 현상이 강력해지는 어떤 여름날엔 그 물웅덩이에 산(山) 그림자가 비치기까지 한다고 했다. 허상에 비친 허상, 헛것 위의 헛것이라니.
3. 시디 부 헬렐
튀니지 남서부의 중심 도시 토주르 동쪽에 있는 마을 시디 부 헬렐 인근에는 아예 스타워즈 캐년으로 불리는 협곡이 있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30여년 전 세상에 나온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의 주요 무대였기 때문이다. 샌드족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를 오비완 케노비가 구해낸 후 첫 대면하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시디 부 헬렐을 지나 산 밑에 차를 세운 뒤 30여분을 더 걸어 올라가니 갑자기 발 밑으로 장대한 스타워즈 캐년이 쪼개지듯 펼쳐졌다.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위태로움을 느끼면서도 협곡 위에 버티고 섰다. 끝 부분이 무너져 내린 바위들로 어지러운 캐년은 흡사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대지의 벌린 입 같은 형상이었다.
다시 먼 길을 돌아 협곡 속으로 들어갔다. 내려다볼 때의 아찔한 느낌과 달리, 직접 들어선 캐년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그곳에선 바람조차 부드럽게 잦아들었다. 아무도 없는 협곡을 느긋하게 산책하다가 R2D2가 샌드족을 피해 숨어있던 작은 동굴도 발견했다.
동굴 앞 큼지막한 바위에 오르니, 저절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책상다리 자세로 앉은 채 눈까지 감게 됐다. 사색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치열한 대화에 가깝다면, 명상은 오히려 기다림의 웅덩이 속으로 천천히 몸을 담그는 행위와 흡사하다. 사색은 더할수록 이롭고, 명상은 뺄수록 좋다. 공간은 변하기를 그치고 시간은 흐르기를 멈춘 듯 느껴지는 곳. 시원(始原)의 공간과 태고의 시간을 초대해둔 시디 부 헬렐의 바위들은 명상이 때로 텅 빈 형식 자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4. 마트마타, 과거의 미래를 품은 도시
튀니지가 단지 ‘스타워즈’에 촬영 무대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기로 한 조지 루카스는 외계 행성의 건축 양식에서 의상과 지명까지, 튀니지 남부의 삶과 역사에서 고스란히 아이디어를 따왔다. 카샤비아 같은 전통 의상은 그대로 제다이 기사 복장이 되었고, 수백년 전 혈거(穴居) 생활을 하던 베르베르인들의 크사르(성채)는 극중 인물들의 생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심지어 아나킨과 루크가 살던 행성 이름 타투인은 남부 도시 타타윈을 살짝 변형한 것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에 등장해 관광 명소가 된 마트마타의 시디 드리스 호텔은 영화의 흔적을 찾아온 단체 방문객들로 내내 붐볐다. 지표면에서 10여미터 원형으로 파고 들어간 지하에 굴을 뚫고 방을 만든 이 호텔의 독특한 모습은 마트마타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이기도 했다.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에 ‘마트마타 최악의 동굴 호텔’이라고까지 적혀 있는 시디 드리스 호텔은 영화에서의 말끔한 모습과 달리, 지저분하고 초라했다. 객실 판매보다는 ‘스타워즈’의 잔영을 찾아 잠시 들른 관광객들에게 기념품과 차를 파는 일이 훨씬 더 요긴해 보였다. 그래도 극중 루크가 함께 사는 삼촌 내외와 식사하며 자신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작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스타워즈’ 스태프들이 직접 그려 넣은 천장의 벽화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했다.
타타윈 주변에 있는 1000여년 전 베르베르인들의 요새, 크사르 울레드 솔탄으로 갔다. 또다른 요새 크사르 하다다와 함께 이곳은 아나킨을 비롯한 타투인 행성의 노예들이 사는 마을로 영화 속에 빈번히 등장했던 곳이었다.
척박한 황야의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크사르 울레드 솔탄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변을 높은 벽으로 둘러, 밖에선 그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좁은 입구를 지나 뜰로 들어서는 순간, 영화 속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모습에 찬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구름 한 조각 없는 짙푸른 하늘 밑, 2~4층 높이로 솟아오른 건물들의 석벽이 아침을 뚫고솟아오른 햇살을 받아 옅은 오렌지빛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황량하면서 아름다운 이 경관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개의 형용사가 구불구불한 흐름을 따라 기이한 조합을 만들어내며,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국의 이미지를 빚었다.
대조되는 것은 황량함과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었다. 강렬한 햇빛에 음지와 양지는 굵은 선으로 선명히 나뉘며 서로 잇대어 있는 두 개의 세계를 마주 세웠고, 계단의 단정한 직선과 건물의 자유로운 곡선은 곳곳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갖가지 무늬를 구현했다.
하지만 타타윈과 마트마타를 포함한 튀니지 남동부의 광야는 사실 인간이 살기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에서 “이곳이 어디냐”고 묻는 로봇 C3PO에게 루크가 “우주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답했을까.
태양은 뜨겁고 물은 부족하며 외침(外侵)은 잦았다. 대지의 열기에서 벗어나려고 땅을 파내려 가고, 약탈을 피해 언덕 위 성채 꼭대기에 곡물을 보관했던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생명의 끈질김과 절박함을 반증했다.
그리고 그런 혹독한 주거 환경은 이제 다시 공상과학이 가장 사랑하는 무대가 되는 역설을 만들었다. 밀려드는 관광객에 정작 주민들은 새로운 마을을 찾아 떠나야 하는. 그 어떤 움직임도 온전히 수락하지 않는 천칭 저울 같은 이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