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아시아프리미엄 해소 위해 APEC이 힘 모아야
글·김현수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
“한·중·일 아시아 3개국이 원유수입에서 부당하게 아시아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 이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석유수급불안이 중국 탓만은 아니다”(푸청위 중국석유공사 사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이 열린 지난 11월 17일 부산 롯데호텔. 도하라운드, FTA 등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던 800명의 기업인들은 당면한 에너지 위기 극복에 대해서는 두말 없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 특히 중동산 원유로 인한 아시아프리미엄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일본이 한 목소리로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 원유시장 어디에도 없는 ‘아시아프리미엄’은 왜 발생할까? 같은 중동에서 원유를 가지고 오는데도 동북아시아 지역에 들어오는 원유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 평균 배럴당 1.5달러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가 뭘까? 실제로 1995~2004년까지 아시아 지역은 유럽에 비해서 1.17달러 높은 가격에, 미국에 비해서는 0.95달러 높은 가격에 원유를 도입했다.
아시아프리미엄은 우선 동북아지역의 원유공급원이 제약돼 있기 때문이다. 중동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공급이 한정된 시장에서는 당연히 공급자우선 시장이 형성되고 웃돈을 요구하게 된다. 또 중동 산유국의 원유공급 방식도 동북아시아 국가에게 불리하다. 중동 산유국은 자국의 원유를 판매할 때 도착지 제한, 제3자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재정거래를 방해하는 마케팅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시장 고유의 석유제품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것도 아시아프리미엄의 원인중 하나다. 동북아시아 국가만의 석유제품 시장이 있다면 제품을 통한 재정거래가 가능할 것이고 원유의 수급도 다소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동 오일자본의 동북아시아 정유시설 장악도 아시아프리미엄을 지속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아랍에미리트(UAE)의 IPIC 등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자신들이 보유한 동북아시아 정유공장과 장기공급계약을 채결하며 안정적인 고가의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다.
아시아프리미엄은 수요와 공급이 만들어낸 함정
아시아태평양 역내 21개 경제공동체(대만과 홍콩 때문에 국가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내 기업들이 동시에 문제제기를 한 아시아프리미엄은 공급자 우선시장에서 나타난 불평등이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급속한 산업화로 원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자체 생산이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산유국들이 만들어놓은 불평등의 덫에 걸린 셈이다.
동북아 3국의 석유소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석유소비의 66%, 세계 소비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수요증가도 9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3.7%에 달한다. 일본만 정체 됐을 뿐 한국이 5.8%, 중국이 8% 증가했다. 같은 기간동안 미국이 1.7%, 유럽 0.4%의 증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한다면 동북아 3국이 중동산 원유의 스펀지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이지만 동북아 3국의 자체적인 원유생산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예 비산유국이고 그나마 중국도 원유생산이 350~370만 배럴에 정체되며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중국의 현재 전체 원유 수요의 45%를 수입에 의존해 있고 2025년이면 75%를 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지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에 대한 의존도 한층 강화된다. 현재 동북아 3국의 중동 의존도는 한국이 78%, 중국 46%, 일본이 81%이다. 중국의 수요가 증가될수록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고 아시아프리미엄은 한층 강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중·일 석유공동체
아시아프리미엄의 해소 방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한·중·일 3국 석유업계가 원유의 공급·수송·저장에 대한 공동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9월 21일 한·중·일 석유업계 CEO들이 처음 모인 ‘동북아석유포럼’에서 합의된 공동협의체가 기업별로 구체적인 협력방안이 나와야 한다.
동북아 3국 석유업계가 공동 보조를 맞추면 전형적인 ‘셀러스 마켓(공급자 주도시장)’인 국제 원유시장에서 거대 바이어(전세계 원유의 17.6% 소비)로서 가격 및 물량확보 협상력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경쟁관계에 있는 한·중·일 석유업계가 손을 잡고 공동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중동산유국에 대한 바게닝파워(구매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한·중·일 3국의 에너지 소비량이 2010년에는 전 세계 소비량의 20%인 하루 약 2,000만 배럴이 예상되고 있는 만큼 동북아 3국의 긴밀한 공조체제 구축만이 고유가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동북아 석유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급속한 공업화로 오일히포로 불리는 중국도 절실하다.
왕티엔푸(王天普) 시노펙 총재도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인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정제 및 석유화학 공정과 비축, 운송시설 건설에 있어 상호협력이 필요하다”며 “동북아 지역 석유 및 가스 수송관을 별도로 설치하는 방안과 함께 싱가포르를 대체할 수 있는 중국·일본·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석유시장을 동북아에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중국은 동북아 석유공동체에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동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원유·가스를 공급하겠다는 전략은 한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안정적인 석유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중국은 서부대개발 사업중 하나인 서기동수(西氣東輸)를 중동지역과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동북아 3국은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아시아프리미엄 해소를 위해 동북아 3국이 가장 먼저 협력할 부문은 원유물류와 비축이다. 물류부문의 경우 연안수심이 얕아 대형유조선(VLCC)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많지 않은 중국과 항구를 많이 보유한 일본이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면 물류비와 함께 아시아프리미엄을 줄이는데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해 김장철 배추를 미리 선점해 대량으로 구매할 경우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듯 원유도 동북아 3국이 대량으로 공동구매를 한다면 아시아프리미엄이란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물류부문의 협력은 공동비축. 동북아 3국의 잉여 저장시설을 합리적으로 임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서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의 저장시설 일부가 공동 활용되고 있고, 일본에도 상당규모의 잉여 저장시설 일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공동비축을 통한다면 대량구매와 함께 중동산유국의 가격 놀음에 장단을 맞추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북아 3국의 협력관계중 원유 수송로의 안전 확보도 중요하다. 시노펙의 왕총재가 제시한 파이프라인도 안전을 위협 받고 있는 말라카해협을 대신해 보다 안정적인 수송로를 찾는 대안중 하나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아시아프리미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동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중도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에는 동북아 3국이 중동을 대체할 수 있는 역내 유전을 공동개발하는 방법과 아프리카, 중남미 등 대체시장을 찾는 것이다.
최근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의 원유에 대한 개발 논의도 동북아 지역이 중동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다. 이 들 지역의 원유가 공급된다면 동북아 지역에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 원유가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고 중동 원유와 효율적으로 경쟁함으로써 아시아 프리미엄을 감소 내지는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해외유전개발이 있어서도 동북아 3국이 공동으로 나설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지나친 경쟁으로 유전 매입가격을 높이기 보다는 상호 공동투자나 공동 지분참여 등을 통해서 유전을 개발하고 원유 공급원을 다원화한다면 아시아프리미엄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제시설의 협력을 통한 제품시장 형성도 필요하다. 현재 아시아프리미엄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한·중·일의 경우 중국은 정제시설이 부족하고 한국과 일본은 정제시설이 다소 과잉상태에 있다. 동북아 지역석유제품 교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중국의 원유수입을 줄일 수 있고 원유와 제품간 가격의 연계성이 강화되기 때문에 아시아 프리미엄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