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개편의 의미와 향후 과제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최근 전기요금 개편으로 매년 여름철 요금폭탄 논란을 유발하였던 주택용 누진제 요금이 대폭 개선되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때 도입된 이후 거의 40여년만의 개선이란 점에서 ‘만시지탄’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으나 어찌되었건 누진단계(6단계에서 3단계로 조정)와 누진폭(11.7배에서 3배로 축소)이 크게 축소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와 함께 찜통과 냉골교실의 논란을 초래한 교육용 요금도 하향 조정되었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들끓는 사회 여론의 열기에 부응하여 누진제 요금만이 아니라 모든 전기요금 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선언에 비하면 이번 개편의 폭과 정도에 다소 아쉬운 점은 있다. 여야 간의 뜨거운 정치쟁점에서 출발한 까닭에 이번 개편작업이 ‘요금체계의 정치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요금체계의 정상화’의 관점에서 이번 개편안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누진제 개편의 의미와 한계
우선, 이번 개편안의 가장 큰 의의는 주택용 소비자들이 여름철 냉방기 사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 무더위 속에서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누진제의 완화로 고소득계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는 비판 그리고 누진제 완화에 따른 전기소비 증가로 저탄소 경제를 위한 전기절약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이 우려하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나, 전자의 경우 고소득 1-2인 가구 증가 등의 가구형태 변화로 전기소비량과 소득수준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 설령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고소득층이라고 해도 거의 11.7배 비싼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분배 형평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전기요금보다 세금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 누진제 완화가 전기소비 증가를 초래할 수 있으나 절약이라는 것도 삶의 질 개선과 병행할 때만 의미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기절약을 유독 전기소비 전체의 13%에 불과한 주택용에만 강요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더구나 이번 개편안에 일반 가정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1,000kWh이상의 구간요금은 과거와 동일하게 유지하여 과도한 전력소비에 대한 절약 유인과 함께 패널티적 성격을 유지하였다.
물론 이번 누진제 개편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진제의 정치쟁점화로 인해 각 정당에서 경쟁적으로 요금인하를 발표하는 바람에 주택용 평균요금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다. 그 결과 주택용 요금의 원가회수율이 여전히 100%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나치게 낮은 요금으로 논란이 되었던 100kWh이하의 요금이 단계 통합과정에서 외형상 인상되기는 했으나, 이에 따른 인상분 보전이 이루어져 여전히 저렴한 요금이란 문제가 남아 있다.
향후 전기요금 체계 개선 과제와 고려사항
한편 이번 개편안이 결과적으로 주택용 누진제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일반용과 산업용 요금에 대한 개편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일반용과 산업용이 우리나라 전기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전기요금 개편의 남은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택용과 달리 일반용과 산업용은 현재 원가회수율이 100%를 상회하고 한전의 흑자도 발생하고 있어서 요금 인하의 요구가 높다. 이번 개편과정에서도 일부에서 요금인하 요구가 있었으나 반영되지는 않았다. 차후 개편과정에서도 일반용과 산업용 요금인하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에는 미처 반영되지 않은 숨은 비용과 대기오염 등 외부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저탄소 발전믹스로의 전환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를 반영할 경우 현재 일반용 및 산업용 요금수준을 그대로 유지해야 이로 인한 요금 인상요인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당분간 일반용과 산업용의 평균요금 수준은 그대로 유지하되, 차기 정부에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와 관련된 중장기 전기요금개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일반용과 산업용 요금은 용도별 요금이 아니라 전압별 계시별 요금체계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최근까지 그 방향으로 요금 개편이 진행되어 왔으나 아직 일부 요금에서 동일한 소비특성(전압 및 시간대)임에도 용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요금이 부과되고 있다. 이러한 통합과정에서 일부 용도에 경제적 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나 경과 규정 및 직접보조 수단을 동원하는 등의 완충장치를 통해 요금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택용도 여건이 구비되는 대로 전압별 계시별 요금제로 통합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산업용 요금의 경우 시간대별 교차보조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업용 경부하시간의 요금 수준은 너무 낮고 피크시간대의 요금 수준은 너무 높다. 이는 과거 설비부족에 대한 대비, 원전 및 석탄 등 기저발전의 가동률 제고라는 피크수요관리 목적이 과도하게 반영된 것으로 현재 시간대별 요금원가 체계에도 맞지 않다. 또한 이로 인해 주간시간대의 산업체와 야간시간을 포함한 24시간 가동하는 산업체간의 시간대별 교차보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피크시간대 요금은 인하하고 경부하시간대의 요금은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아직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최근 높은 증가율을 보이는 농사용 요금에 대해서도 중장기적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사용은 원가회수율이 거의 40%대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낮은 수준으로 농사용 요금중 일부는 사실상 산업용에 가까운 것도 있어 이를 감안한 점진적인 개편안이 필요하다. 물론 어려운 우리나라 농업 여건을 감안해 볼 때 일부 농사용 전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요금 자체를 낮게 해주는 것보다 직불제와 유사하게 직접보조 방식을 취하는 것이 농사용 전력의 효율적 사용을 유인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다섯째.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소비지역에 따른 비용차이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전국단일요금체제(제주는 제외)이다. 최근 송전망 갈등 등 장거리 송전망에 따른 비용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수요자들이 더 많은 송전관련 비용을 부담하도록 지역별 차등을 두는 것이 형평성 차원은 물론 발전소 입지와 수도권 부하분산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그 첫 단계로 현재 부과가 유예되어 있는 송전비용의 지역별 차등을 우선 반영하고 장기적으로 모선별 요금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전기요금의 개편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기요금 결정이 과도하게 정치화되지 않도록 전기요금을 둘러싼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것이다. 정부가 요금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현행 방식에서는 전기요금이 항상 정치쟁점화되고 자칫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제에 독립적인 에너지규제기구를 만들어 전기요금 등 에너지가격에 대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전기를 포함한 에너지시장의 공정한 감시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결정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형평성 그리고 저탄소의 친환경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