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무엇이 쟁점인가?
윤원철(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세금의 역할
재원 확보의 목적이자 적정한 자원 배분 달성
경제학에서 세금이라는 것은 외부효과나 불완전 경쟁 등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하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해, 특정 재화나 서비스 사용에 대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이외에도 누군가 지불해야 하는 숨은 비용을 세금의 형태로 부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금을 부과하면 그 만큼 소비가 줄고 흔히 경제학의 기본 원칙인 자원의 적정한 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물론 세금은 시장실패의 교정 수단뿐 아니라 정부의 공공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재원 확보의 목적도 있다.
국민의 의무로서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유류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가가 높은 시기에 유류세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였다. 기름값이 올라가면서 유류세를 조정하여 소비자와 기업의 부담을 조금 줄여 달라는 것이 기본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저유가 상황에서도 유류세 인하 요구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의 유류세 인하 요구의 배경에는 국내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최근 우리 경제의 현실을 고려할 때 경기 활성화와 소비 진작에는 동의하지만 유류세 인하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실제로 정부는 경기 활성화와 소비 진작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고, 그 가운데는 여러 형태의 감세정책도 포함하고 있다.
유류세 구조
원유 수입에서 판매까지의 일련의 과정 속 세금과 부과금
이제 유류세가 무엇이고, 과연 어느 정도 부담하는지 살펴보자. 원유를 수입해서 석유제품으로 정제하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세금과 부과금이 붙게 된다. 먼저 원유수입 단계에서 관세와 수입부과금이 붙는다. 정유사에서 석유제품을 출고하는 단계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를 부과한다. 이러한 교통세는 종량세 형태로 가격과 관계없이 리터당 휘발유의 경우 529원, 경유의 경우 375원이 붙는다. 여기에 15%의 교육세와 27%의 주행세를 추가적으로 부과한다. 최종적으로 우리 소비자들이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구입할 때 부가가치세 10%가 추가된다.
우리가 보통 유류세라고 하는 것은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를 합한 것을 말한다. 유류세에 주유소 구매단계에서의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세금은 리터당 휘발유의 경우 870원, 경유의 경우 630원 정도이다. 4월 3째주 휘발유와 경유의 국내 소비자 판매가격은 각각 리터당 1,361원과 1,121원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유류세와 부가가치세를 합하면 주유소 판매가격에서 차지하는 세금 비중이 휘발유는 64%, 경유는 56% 수준으로 절반을 훌쩍 넘게 된다.
유류세에 관한 쟁점
한국, OECD국가 소득 대비 높은 부담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유류세 수준은 외국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일까? 주유소 판매가격 대비 유류세의 비중만을 따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가 결코 높지 않다.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평균보다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OECD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나 구매력 평가지수를 고려한 유류세의 크기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이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구매력 평가지수를 고려할 경우 휘발유 가격은 최상위에 속하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하여 소득 대비 유류세를 상대적으로 많이 부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류세와 관련하여 또 다른 쟁점 가운데 하나는 유류세의 정책적인 효과에 관한 부분이다. 정부의 입장은 유류세를 인하하게 되면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가 늘어나서 대기질이 악화되고 에너지 소비 절약에도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격 대비 소비의 변화가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국내외 실증분석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용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에 대한 단기와 장기 소비탄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유류세를 낮춰 기름값이 어느 정도 내리더라도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가 갑자기 크게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편 웬만큼 유류세를 높이지 않는 한 휘발유와 경유의 소비를 줄여서 나타나는 대기질 개선과 소비 절약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유류세 인하에 해당하는 만큼 가계부문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여 소비 진작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제조업의 원가를 낮춤으로써 기업의 대외경쟁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결국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정부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효과는 제한적이며, 조금이나마 경기 활성화와 소비 진작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민경제 부담완화를 위한 유류세 인하 필요
이에 따른 세수감소에 따른 대책마련도 강구
어쩌면 정부의 실질적인 고민은 유류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유류세로 매년 20조 이상을 거두고 있으며, 유류세 인하폭만큼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세의 주요 지출 항목인 교통시설에 대한 투자와 운영·관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가짜석유 단속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여 탈세부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류세의 원래 기능은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하다. 어쩌면 서민경제의 부담 완화, 국내 제조업의 대외경쟁력 향상, 최근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 진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유류세를 인하하는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소비자와 기업의 부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도 함께 부담을 떠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