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의 최근동향과 정유업계의 대응방향
임재규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너지모형연구실장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의 급증과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지구의 기후시스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인간의 건강, 식량안보, 사회기반 및 환경 등에 역효과를 초래하여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위험요소로 평가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매년 세계 GDP의 5~2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을 위한 Post-Kyoto 협상이 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체제 하에 진행 중이고, 협상의 관심 또한 전 세계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Post-Kyoto 협상은 선진국들과 개도국들이 난해한 논리를 앞세우는 참호전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공통의 이해와 관심사항을 강조하기보다 한쪽이 이기면 한쪽은 반드시 져야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진행되고 있어 합의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와 제5차 교토의정서 당사국총회(CMP-5)에서는 Post-Kyoto 체제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했다. 동 협상에서는 (1) 선진국의 강제적 온실가스 감축의무 강도와 (2)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행동 참여 및 검증 그리고 (3) 개도국의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을 위한 선진국의 재정 및 기술적 지원 등 핵심 이슈에 대해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단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Copenhagen Accord만 도출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올해 속개될 협상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핵심 화두로 부상한 만큼 어떠한 형태로든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의 수준에 대해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40% 감축하고, 개도국들도 상당한 수준의 감축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도 선진국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40% 감축해야 하며, 개도국도 기준배출전망(Business as Usual, BaU) 대비 15~30% 감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 많은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들이 자국의 여건과 능력을 반영하여 2020년까지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공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 감축할 계획이며, 중국은 배출집약도(배출량/국내총생산)를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0~45% 감축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기준전망(Business as Usual) 대비 30% 감축하는 자발적 감축목표를 국내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산업계, 가정, 수송 등 주요 부문에 대한 감축목표 할당과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등 다양한 정책수단의 도입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의해 발생하는 파급효과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다각적인 분석과 검토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민과 산업계에 이중적 부담을 요구하는 정책중복(policy overlap)이 발생하지 않도록 효율적인 정책 포트폴리오(policy portfolio)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효과는 미미해지고 국민이 부담해야할 비용만 확대시키는 부작용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에너지다소비산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이행은 경제와 산업구조 그리고 국민 생활패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은 매년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비용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산업계뿐만 아니라 일반국민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총체적 인식의 변화와 적극적인 행동 그리고 긍정적 희생이 요구된다. 특히 정부는 에너지가격을 인상하여 국민 모두에게 고통의 감내를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 각 분야의 에너지절약과 효율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변화와 행동, 그리고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산업계의 획기적인 기술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동시에 이를 위한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적 유인책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세계경제는 온실가스 저감기술 및 저감 know-how라는 새롭고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환경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은 오히려 국제시장 확대라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미 선진기업들은 미래 환경관련 시장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기술개발과 신시장 개척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 동안 국내 산업계도 정유, 철강, 발전업종 등 에너지다소비업종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해외 선진기업들과 비교하여 아직 방어적 자세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은 사회 각 분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산업, 가정, 수송 등 부문 간 감축목표 할당에 있어서 산업계의 주도적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산업계는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투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임을 인식하고 에너지절약 및 효율향상, 온실가스 저감 기술개발 및 환경관련 사업의 확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이들에 대한 투자 또한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가정부문과 수송부문의 비효율적 에너지소비 행태도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핵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즉, 전기료 등 과도하게 낮은 에너지가격으로 인한 일반 가정에서의 고질적인 에너지 다소비형 소비행태를 개선하고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승용차의 유류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와 같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국내외 여건변화는 국내 산업계의 혁신적인 노력과 체질개선을 필요로 한다. 업종별 여건이 서로 상이하지만 에너지절약, 효율향상, 기술개발 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요구되며 특히 정유업계에서 다른 업종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향후 정유업계가 정유공장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온실가스 감축비용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강화를 통해 수송용 유류를 중심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하는 간접적 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 국내 정유업계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사업장의 온실가스 감축여건과 비용에 대해서만 상대적으로 관심을 집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유업계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석유제품 수요 감소에 의한 간접적 비용이 오히려 중장기 사업여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항목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하여 앞으로의 국내외 상황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는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이미 그 심각성과 중요성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환경 이슈를 넘어 경제-에너지 전쟁으로 진화한지 오래다. 이제 누가 어떻게 발빠르게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선진국들과 선진기업들은 관련 세계시장을 선점하고 있기에 우리도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정부, 산업계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