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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금융상품화와 투기적 거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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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금융상품화와 투기적 거래 증가
- 미국발금융위기의배경과시사점-

신삼호_연합뉴스 증권부장

원유(WTI)값이 이달 3일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인터넷과 경제전문 매체들을 타고 전세계에 퍼지자 경제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은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설마하던 유가 100달러 시대가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지자 세계는 고유가의 파장이 세계경제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걱정하며 몸을 떨었다.

유가가 세자릿수로 올라갈 것이라는 진단은 작년 하반기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은 중국 등의 수요 증가에다 급속히 진행되는 달러화 약세, 꾸준히 제기돼 온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근거로 100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유가 세자릿수 시대는 시기가 문제였지 조만간 현실화될 것으로 어느정도 예견됐던 사안이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의 이면에는 약(弱)달러가 있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달러화로 거래되는 WTI, 두바이, 브렌트유 등의 가격이 달러화 약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올라갔고 국제 투기자금들이 원유, 금 등의 상품시장을 약달러 시대의 피난처로 삼아 이 분야에 대거 몰려들었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달러화 약세 및 인플레이션 우려로 세계의 여유자금들은 원유, 금 등의 상품을 가치보존 및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삼은 지는 꽤 오래 됐다. 원유나 금 등의 상품을 대상으로 한 선물, 옵션 등 각종 파생상품이 개발되고 투자자들이 이 시장에 적극 참여하면서 원유 등은 오래전부터 일종의 금융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최근의 달러화 약세와 국제유동성 증가는 이런 금융상품화를 더욱 부추기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 관련 파생상품은 선물, 옵션 및 스왑거래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WTI선물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각종 인덱스 상품 들이 추가된다. 퀀트라고 불리는 금융공학자들은 각종 통계와 금융모델을 활용, 원유 선물이나 WTI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상품들을 개발,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한국에서도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원유파생상품이 포함된 펀드를 판매하고 있다.

원유가 금융상품화되면서 헤지펀드 등 투기자금 뿐 아니라 JP 모건, 메릴린치 등 세계 유명 IB(투자은행),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기관 및 개인투자가들이 관련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 원유 선물시장에만 헤지펀드 등이 약 1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각종 원유 관련 파생상품에도 상당한 금액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발표한 2008년 1월15일 기준 NyMex의 대형투기 자금에 의한 원유선물 순매수 규모는 8천399만 배럴에 이르고 있으며 원유선물시장 하루 거래량은 실제 세계 원유수요 보다 3-4배 많은 게 보통이다.

이러한 원유의 금융상품화는 원유가격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금융상품이 되면 상품 그 자체가 갖는 사용가치와 함께 투기적 수요나 청산 수요 등이 가격결정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최근의 유가는 투기적 수요 때문에 상당부분 거품이 끼여 있으며 현재 가격의 최소 5%에서 최대 20% 정도가 투기 수요에 의한 거품이라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유의 투기적 거품 주범으로 헤지펀드 지목

원유가격에 투기적 거품을 불러온 주범으로는 주로 헤지펀드들이 꼽힌다. 헤지펀드는 시장이 오를 때는 물론 빠질 때에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롱-숏 전략(매입자산과 매도자산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전략), 각종 아비트리지(차익거래) 등을 주로 구사하는 데 무엇보다도 헤지펀드는 거의 제한없이 차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투자규모를 실제 자산의 몇 배로 키울 수 있다 .더욱이 원유관련 파생상품들은 여타 파생상품들처럼 대개 거래규모의 15%의 증거금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어 그만큼 레버리지가 커진다.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파생상품은 또다른 파생상품을 낳는 특성이 있어 원유 관련 금융상품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원유관련 파생상품이 더 복잡해지고 거래규모가 커지면서 실물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에서 보듯이 주택 담보대출이라는 기초자산위에 이를 유동화한 각종 파생상품들이 2중, 3중으로 겹겹이 얹히면서 모기지 부실에 따른 손실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사태가 실물자산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 부문에서도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원유선물 등의 투기적 거래로 원유가격이 부풀려질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원유가격은 현재까지 실질적인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현재 원유 파생상품은 여타 금융부문의 파생상품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어 (헤지펀드의 파산 등)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연쇄효과에 따른 확산범위가 일부에 국한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아직은 가격이 생산량이나 수급구조 등 펀더멘털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약달러 가속화 등의 요인으로 원유에 투기적인 수요가 더 몰려들고 각종 파생상품의 규모가 커지면 현물시장이 파생상품 시장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선물가격이 투기수요로 크게 변동하면서 현물 가격을 움직이는, 이른바 `왜그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등이 선물을 팔아 선물가격이 빠질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 현물을 팔고 선물을 사려는 프로그램 매매가 촉발되면서 주가가 속절없이 빠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선물을 매수, 선물가격을 올려 현물 매수를 유발시킨 뒤 비싼 값에 주식을 팔고 빠져나오는 전략을 즐겨 사용한다.

현재 원유선물은 투기수요의 가세로 과매수상태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WTI는 역사적으로 현물가격보다 선물가격이 낮은 이른바 백워데이션 상태가 일반적이었는 데 최근 수년 사이에 선물가격이 현물보다 높아지는 콘탱고 상태가 더 오래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투기세력이 가세해 선물가격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美금리인하로 달러화 약세 가속화..꼬리가 몸통 흔드나

현재 미국의 금리인하 추세나 경제 전망 등을 보면 원유관련 파생상품에 더욱 많은 자금이 몰려들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미국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감수하고서도 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31일 정책금리를 0.5%포인트 인하, 연 3.0%로 낮췄다. 이런 금리인하는 미국의 경기하락 우려와 맞물려 달러 약세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금리인하와 이에따른 달러약세는 세계의 유동성을 상품부문으로 밀어내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실물 부문이 투자의 주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이미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화 약세로 금이 투자의 주축이 됐다며 `제2의 금본위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성급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아뭏든 투기세력이 가세하면 당연히 거품도 발생하고 거품이 부풀어 오르면 시장 변동성과 가격 불안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원유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입장으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원유관련 파생상품 시장을 주도할만한 자금과 전문인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어 이 시장에 헤게모니를 갖는 IB나 헤지펀드가 만들어 놓은 상황에 수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처지에선 시장 변동성 확대는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크다.

아울러 자금이 몰려들면서 원유관련 파생상품의 구조가 복잡하게 진화되면 예측가능성이 크게 줄어드는 반면 불확실성은 커지게 된다. 원유를 다른 금융상품과 결합해 만든 고수익-고위험 상품이 대거 등장하게 되면 거품 붕괴 등으로 시장이 부실화 됐을 때 생기는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면서 시장 혼란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시장 혼란이 가속화될 경우 우리 석유화학 회사들과 소비자들이 받게될 타격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복잡한 상품구조와 투기적 자본의 결합이 시장 부실 때 몰고올 혼란은 최근 세계 굼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다. 서브 프라임 관련 위기가 1년 가까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서브 프라임 뿐 아니라 MBS(모기지담보부증권), CDO(자산담보부증권) 등을 매개로 한 다양한 파생상품들도 부실화 됐지만 증권화 구조의 복잡성과 공개적 자료의 제한으로 인해 부실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정확한 피해규모와 파급범위를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정적인 장기 공급원 확보가 관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석유관련 파생금융 상품은 더 복잡, 다양하게 진화되고 시장 규모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펀더멘털에 관계없이 파생분야에서의 시장 변동으로 유가가 흔들릴 위험도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석유산업이 투기자본에 의한 시장 혼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원유의 장기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정유사들이 유전개발, 광구확보 등을 비롯, 안정적 공급원 확대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와함께 시장 변동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각종 헤징수단 강구에도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차원에서 세계금융 시장의 흐름을 잘알고 해박한 파생상품 지식을 지닌 전문인력을 영입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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