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등유세 인상에 유통업계 실력대응 나선다
글·김신|석유가스신문 편집국장
- 공동 대응책 마련하고 내달 16일 집단 시위 결의
- 주유소 판매량 10년새 65% 줄어 위기
- 석유일반판매소는 1,500곳 줄줄이 폐업
서민 난방용 연료인 등유의 세금 인상이 또다시 추진되면서 석유사업자들의 반발이 표면화되고 있다.
세제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고 재정경제부에 단순히 건의문을 제출하고 설득하는 선을 넘어서 집단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석유유통사업자들의 반발 강도가 특히 심하다는 점이다.
에너지세제개편과 관련해 지난 2001년 이후 현재까지 경유와 등유 세금이 꾸준히 인상중이지만 대부분 정유사들의 이익대변단체인 대한석유협회가 궂은일도 도맡아 해왔다.
세금 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제출하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작업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는 7월 등유 인상과 관련해서는 석유협회보다 석유유통사업자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거칠다.
정유사에서 기름을 공급받아 주유소나 대형 직매처 등에 공급하는 대리점은 물론이고 주유소나 석유일반판매소 등 석유소매사업자들까지 가세해 이번 등유 세금 인상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5월 9일 석유유통사업자 단체의 집행부 모임은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석유유통협회와 주유소협회, 석유일반판매소협회 집행부는 이날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긴급 모임을 갖고 정부의 등유세금 인상 계획에 공동 대응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합의된 대응방식은 몸으로라도 막겠다는 것.
석유일반판매소협회의 유성근회장은 “집단시위를 통해서라도 정부의 등유 세금 인상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협회는 지난 5월 12일 전국대의원총회를 열고 ‘생존권대책추진위원회 구성’과 ‘등유 세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한 집회 개최’ 등의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또 27일에는 경북 안동에서 이사회를 열고 6월 16일 과천 정부청사 앞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확정했다.
석유일반판매소 업계는 특히 대국민 호소문을 채택하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서명작업에도 착수하기로 해 등유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은 더욱 큰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호소문에서는 서민난방연료인 등유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지, 또 왜 세금을 인하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호소문의 한 구절.
‘가스배관이 없거나 가스시설비용이 모자라 겨울철 난방으로 석유밖에 사용할 수 없는 대상이 농어촌이나 도시서민들인데 또다시 등유 1드럼에 1만2,000원 가까운 세금을 더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
석유일반판매소협회는 전 회원사들이 난방유 소비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호소문을 전달할 계획이어 자칫 전 국민적 조세저항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달 초 유통사업자단체 집행부 모임에 참석했던 주유소협회의 양재억전무는 “석유일반판매소업계가 집회를 개최한다면 주유소사업자들도 동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27일 일반판매협회 이사회가 전격적으로 집회를 의결함에 따라 사상 초유의 석유유통사업자 연합의 실력행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석유유통협회는 국회 설득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김복주부회장은 “동일한 난방용도로 사용되지만 서민용인 등유세금만 꾸준히 인상되면서 사용이 편리하고 고급연료인 도시가스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가격수준을 유지해 소득역진성이 발생하고 있다”며 재경부가 개정법안에 등유세금 인하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회나 국무총리실, 청와대 등 입법부와 행정 최고 기관 등에 집중 설득 작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석유유통사업자단체들의 공동 대응 움직임에 대해 해당 업계 관계자들조차 의외라는 반응이다.
‘모래알같다’는 스스로의 비아냥에 익숙해져 있을 만큼 좀처럼 통일된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던 석유유통사업자들이 모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등유 세금 인상은 그만큼 석유유통사업자들에게 절박한 이슈인 셈이다.
- 대리점·주유소·부판점 공동 대응키로 -
사실 등유에 대한 석유유통사업자들의 시각은 약간씩은 차이가 있다.
다양한 석유제품을 취급할 수 있는 석유대리점이나 주유소 운영자들은 석유일반판매소에 비해 등유에 목을 매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동절기 계절 상품인 등유 말고도 휘발유나 경유 등 연중 고른 판매량을 보이는 석유제품들도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등유 판매 감소세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하향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1996년 주유소당 월평균 등유 판매량은 400드럼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141드럼으로 급감했다.<다음 그래프 참조>
<연도별주유소 등유 평균 판매량 및 판매 비중 추이>
그사이 주유소 수가 증가했고 석유소비가 정체세로 전환되는 등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감소폭은 지나치게 크다.
이같은 사실은 주유소 판매 석유제품중 등유가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주유소 석유제품 판매량중 등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22.7%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12.8%로 감소했다.
도시가스 보급이 갈수록 확산되고 등유세금인상마저 계속되면서 이제 등유는 주유소에서 단순한 ‘구색맞추기용 석유제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등유는 매출이나 이익 기여도가 크게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석유제품에 비해 주유소사업자들에게 두배의 번거로움을 주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등유를 실내등유와 보일러등유로 이원화시키면서 저장탱크나 주유기 등을 각각 별도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유 소비 감소와 관련해 석유일반판매소업계가 느끼는 충격은 주유소보다 훨씬 크다.
석유일반판매소업계는 동절기 등유 판매가 가장 큰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겨울철 등유 판매로 반짝 특수를 맛본 석유일반판매소 사업자들은 비수기인 여름철에는 얼음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며 다가오는 동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도시가스나 심야전력 보급이 확대되면서 수요처가 크게 줄어들고 있고 한술 더 떠 등유세금까지 해마다 크게 인상되면서 소비심리마져 위축돼 판매소업계의 경영난은 가중되고 있다.
석유일반판매소업계의 등유 판매량이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집계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사업자들이 판매물량을 정부에 의무 보고하는 주유소와는 달리 석유일반판매소는 월간 20㎘ 이하를 판매할 경우는 보고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판매소중 거래물량을 보고한 업소는 45% 정도에 불과해 정확한 등유판매량의 증감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석유일반판매소업소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는 사실로 심각한 경영난을 대변할 수 있다.
석유일반판매소협회의 유성근회장은 “한때 8,000여 곳에 달했던 일반판매소는 지난해 6,500여 곳까지 줄어 들었는데 도시가스보급 확대와 등유 세금 인상 등으로 난방유 수요가 크게 감소한 것이 주요 이유”라고 지적했다.
등유 소비 감소의 여파는 유전개발 등에 투입되는 에너지자원특별회계의 사용 용도 시비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등유 특별소비세 인하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석유일반판매소협회가 최근 구성에 합의한 생존권대책위원회는 에특회계의 재원중 일부가 일반판매소업계의 경영개선활동에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협회 유성근회장은 “대부분 원유를 도입하거나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부과금을 거둬 조성된 에특회계 예산이 석유제품의 경쟁연료인 도시가스나 대체에너지 사업은 물론 탄광과 골재 심지어는 소금사업자에게까지 지원되고 있다”며 형평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산자부는 에특회계 예산중 소금사업자의 폐업과 유통구조 개선사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20억원을 배정했다.
광산지역 공해방지나 안전시설 보조, 폐광지역 진흥 등 탄광사업자의 폐업이나 유통구조개선사업에는 무려 2,466억원이 투입됐다.
이에 대해 석유일반판매소 생존권대책위원회는 난방유 판매 사업자들이 심각한 생존권 위기에 처해 있는 만큼 석유에서 거둔 재원인 에특회계로 석유일반판매소의 폐업과 대체사업 창업비를 지원하도록 정부측에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다.
- 등유, 구색맞추기 상품으로 전락 위기 -
석유유통사업자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재정경제부가 등유세금 인하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에너지세제개편의 적용시점은 오는 7월로 재경부가 석유유통업계의 요구를 받아 들여 등유 세금을 인하하기 위해서는 특별소비세법 개정 작업이 필요한데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이 일단 문제다.
오는 6월 임시국회 이전까지는 법개정안을 마련해 관계부처 협의와 입법예고,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등 다양한 후속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등유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초래되는 세수 감소도 걸림돌이다.
오는 7월 인상 예정인 등유 특별소비세는 리터당 24원으로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인상분까지 감안하면 약 30원 수준에 달한다.
올해 하반기 등유 소비량을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수준인 1,818만배럴로 추정할 경우 정부는 약 867억원 정도의 추가 세수를 포기해야 한다.
경유 세금만 인상될 경우 상대적으로 값싼 등유가 세금 탈루를 노린 유사경유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어 등유 세금을 동반 인상시켜야 한다는 정책 목표도 재경부 입장에서는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석유유통사업자들의 집단적인 반발 움직임에도 등유 세금 인상과 관련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상 초유의 석유유통사업자 공동의 집단행동 가능성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