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점
에너지세제의 형평성이 필요하다
글·김신|석유가스신문 취재팀장
- 형평 잃은 세제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 -
- 공적의무 부담하는 정상 제품은 경쟁력 상실로 설자리 잃어 -
석유화학공정에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부생유(副生油)가 보일러연료시장을 크게 잠식하고 있다.
석유공사의 수급통계에 따르면 보일러연료시장에서 부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그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부생유에 부과되는 공적의무가 경쟁연료인 보일러등유 등에 비해 크게 낮아 소비자선택이 부생유에 집중되고 있다.
이를 두고 완전 군장 차림의 보일러등유가 군복만 입고 몸이 가벼운 부생유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석유업계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석유업계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결국 등유와 부생유 모두 완전군장시켜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6년이나 유예기간을 둘 예정이어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연산품인 석유제품에서 8% 내외의 생산비중을 차지하는 등유가 시장에서 급격히 퇴출되어감에 따라 벌써부터 정유공장의 가동율 조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만 완전 군장 요구
석유화학공정의 원료인 나프타의 전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부생유는 현재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1호인 등유대체형과 2호인 중유대체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유대체용은 대부분의 석유화학사에서 생산되는데 반해 등유대체용은 삼성토탈에서만 유일하게 독점 생산되며 보일러연료시장에서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토탈에 따르면 등유형 부생유는 지난 1998년 ‘해비엔드’라는 제품명으로 판매가 시작돼 석유사업법상 석유대체제로 규정된 지난 2002년 이후부터 ‘하이신(Hi-sene)’으로 이름을 바꿔 유통되고 있다.
산자부가 2002년 7월 부생유를 정식 석유대체연료로 규정한 것을 감안하면 그 이전의 약 5년여동안 삼성토탈은 이 부산물을 시중에 유통시키면서 세금이나 비축, 품질기준 등 정상적인 석유제품이 떠 안아야 하는 다양한 의무를 면제받고 팔아온 셈이다.
하지만 부생유의 보일러연료 시장 잠식이 거세지면서 산자부는 부랴부랴 부생유에 대한 공적 의무를 매기기로 결정했지만 시작부터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석유화학공정상의 부산물로 품질이 조악해 시장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경쟁연료인 등유에 비해 73% 수준의 의무만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일러등유에는 현재 리터당 1백54원의 특소세가 매겨지고 있지만 부생유에는 그 73%수준인 1백12원이 부과된다. 등유에는 23.1원의 교육세가 부과되고 부생유에는 그 73%수준인 16.8원이 매겨진다. 석유판매부과금 역시 등유에는 23원이, 부생유에는 그 73% 수준인 17원이 부과된다.
보일러등유와 부생유간의 제세부과금 차이는 리터당 무려 60원에 가까운 상태다.
정부의 에너지세제개편 일정에 따라 향후 등유세금이 추가로 인상될 경우 부생유와의 가격차이는 더 벌어지게 된다.
등유나 부생유 스스로의 원가절감노력과는 무관하게 정부의 세제정책에 따라 연료간의 가격경쟁력이 벌어지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부생유는 아예 비축의무도 없다.
결국 부생유는 부산물로 생산원가가 낮을 수 밖에 없어 정유사의 주력 석유제품으로 다양한 고정비를 떠안아야 하는 등유에 비해 이래저래 뛰어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석유유통협회의 김복주부회장은 “부생유는 석유화학공정상의 부산물로 원가개념이 없어 원유정제과정에서 다양한 고정비가 포함된 등유에 비해 제조원가가 낮은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시장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정부가 추가로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제개편따라 가격차 더 벌어질 것
부생유의 가격경쟁력은 시장점유율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삼성토탈에 따르면 등유형 부생유인 ‘하이신’은 삼성 관계사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1천여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석유공사의 수급통계에는 부생유의 보일러연료시장 점유율이 20%대에 근접한 상태다.
부생유가 제도권에 편입된 지난 2002년 1백56만배럴이 팔리며 보일러연료시장에서 12.4%의 점유율로 출발했지만 2003년에는 14.1%(165만배럴), 지난해에는 11월까지 19.1%(149만배럴)를 기록하며 꾸준히 소비자선택권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같은 기간 경쟁연료인 보일러등유는 시장점유율이나 판매량 모두 급감하고 있다.
2002년 1,101만배럴이 판매되며 보일러연료시장에서 87.6%의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2003년 85.9%(1천11만배럴), 지난해 11월까지 80.9%(7백53만배럴)를 기록중이다.
보일러등유가 시장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도시가스나 심야전력 등 대체제의 보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가스나 심야전력이 유독 보일러등유의 판매량만 빼앗아간데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일러등유나 부생유 모두 동일한 보일러연료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시가스 등의 대체제가 이들 연료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유독 부생유의 판매량만 오히려 소폭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반면 보일러등유는 과거 5년사이에 판매량이 절반수준으로 급감하고 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등유소비량은 약 10만9천배럴로 그 5년전인 1999년의 21만1천배럴에 비해 절반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동일한 경쟁환경속에서 한쪽은 판매량이 줄어들고 다른 쪽은 늘어나는데는 차등화된 공적 의무때문’이라는 석유업계의 지적은 이런 이유로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등유 소비 급감하는데 부생유만 약진
사정이 이런데도 산업자원부는 보일러등유와 부생유간 공적의무의 차이를 오는 2011년까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경쟁유종간 공적 부담금을 균등화하겠다”는 원칙은 밝히면서도 정작 적용시점은 앞으로 6년동안이나 유예를 두겠다는 설명이다.
그 사이 보일러등유는 가격경쟁에 밀려 아예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데도 좀처럼 석유업계의 위기론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석유협회의 석유수요전망위원회는 ‘보일러등유는 수요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부생연료 및 타 유종으로 대체되고 있어 향후 2~3년 이내에 발전부문 및 소수산업체를 제외하면 큰 폭의 수요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버려지는 석유화학공정상의 부산물에 경쟁력을 부여하는 것이 에너지자원의 재활용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논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아 도는 중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유정제과정의 연산품으로 일정수준 생산이 불가피한 중유가 다양한 대체제의 등장으로 남아 도는 처지인데도 오히려 경쟁연료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오리멀젼에 대해 낮은 공적의무를 부과하며 가격경쟁력을 제공하는 것을 감안하면 부생유에 대해 정부가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부생유논란을 계기로 정부 에너지세제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에 문제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연료를 사느냐의 가장 큰 기준이 가격이고 그 가격의 상당부분을 제세부과금이 차지하는데도 정부는 뚜렷한 논리나 배경없이 연료별 세금을 차등적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휘발유의 세전 공장도가격은 오히려 등유나 경유에 비해 낮은데도 소비자가격은 더 높다. 고율의 세금 때문이다.
휘발유의 경우처럼 고급연료에만 세금이 더 붙는 것은 아니다.
등유는 경유에 비해 고급연료에 속하지만 세금은 오히려 적게 부과된다.
등유는 부생유보다도 고급연료지만 세금은 더 많이 매겨지고 있다.
연료의 소비성향에 따라 세금부과기준이 일관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교통사업용 연료인 택시용 부탄은 일반 가정용연료인 프로판에 비해 세금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산업용과 대중수송연료로 쓰이는 경유는 서민난방연료인 등유보다 세금이 많이 부과된다.
시장에서 충분히 확인된 것처럼 정부의 들쭉날쭉한 세제정책은 각종 탈법을 부추기고 있다.
세금탈루를 노린 세녹스가 첨가제로 위장하며 2년이 넘도록 버젓이 시장에서 유통되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정부의 에너지세제개편 영향으로 경유와 등유 세금이 인상되면서 이들 제품 역시 유사제품의 주요 표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부생유 역시 세금이 붙지 않는 용제가 불법 혼합되며 시중에 나돌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으로 제세부과금이 없지만 연소성이 탁월해 그을음 등이 적게 발생하는 용제5호는 오히려 세금이 붙지만 품질은 저급한 부생유와 불법 혼합사용되고 있다.
부생유와 용제의 혼합과정에서 세금은 탈루되고 있지만 오히려 소비자는 더 좋은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인위적인 정부의 에너지세제정책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제는 정부가 에너지세제정책과 관련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가져야 할 때다.
석유와 석유대체연료간 차별적인 대우를 해야 하는 이유 역시 정말 공정하고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정부 스스로가 고민하고 관련사업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논리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많은 주력 에너지사업자들과 소비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국가경제의 중추적인 에너지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수만여 석유유통사업자들을 외면하고 1백여곳에 불과한 부생유업계의 안정적인 경쟁력과 시장을 보장해주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지를 묻는 석유업계의 목소리에 이제 정부는 성실하게 답변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