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PEC 법안의 영향은?
이 달 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국이 OPEC(석유수출국기구) 카르텔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하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이른바 NOPEC(No Oil Producing and Exporting Cartel Act of 2019) 법안이 하원 본회의에 넘겨졌다. 고즈음에 상원에서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이 통과됐다. 하원과 상원 본회의에 넘겨진 이들 법안은 각각 HR 948과 S 370으로 명명되고 있다. HR 948은 공화당과 민주당 하원의원 6명이 참여해 마련된 것으로 오하이오 주 공화당 하원의원이 대표 발의자다. S 370은 아이오와 주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다른 공화당 의원 한 명과 민주당 의원 두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법안은 지난해에도 각각의 법사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NOPEC 법안에 따르면, 미 법무부(DOJ)가 미국의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에 근거해 OPEC 산유국들의 카르텔 행위를 고발할 수 있다. 즉, 이 법안은 석유수출국들이 공동으로 석유의 생산과 수출입을 제한하거나 석유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설정해 미국 내 석유가격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이 법안은 주권국가의 면책권을 없애는 것이지만, 유일하게 미국의 법무장관만이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 법안이 발효되려면 앞으로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해당 법안에 대해 상하 양원이 각각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표결을 거쳐 가결돼야 한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은 백악관에 도착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아직 NOPEC 법안은 본회의 상정 여부조차 검토되지 않고 있다. 사실 2000년 이후 미 의회에서 OPEC 카르텔을 규제하려는 법안이 마련된 것은 20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그 어느 법안도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NOPEC 법안이 과거 어느 때보다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통과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근거는 대개 세 가지로 정리되고 있다. 첫째는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OPEC의 감산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수차례에 걸쳐 국제 유가가 OPEC의 감산에 의해 인위적으로 상승했다면서 OPEC 산유국들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25일과 3월 28일에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OPEC의 감산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 경제는 고유가에 취약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둘째는 미국 의회가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초에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있었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사우디 왕정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셋째는 미국 내 셰일오일 생산의 급증으로 미국의 해외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 1월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 2022년 미국이 석유의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가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석유 자립은 석유의 해외 조달에 따른 우려를 없애므로 미국으로 하여금 중동 정책 등 대외 전략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한다.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OPEC의 카르텔 행위에 영향을 적게 받게 된 것이 오히려 NOPEC 법안의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NOPEC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는 먼저 NOPEC의 제정이 미국 석유산업의 이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NOPEC의 시행으로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일부 산유국의 감산 공조 체제가 무너지면 국제 유가가 폭락해 미국의 원유생산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석유 컨설팅 업체인 SPI는 산유국들의 감산 공조가 없을 경우 국제 유가는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SPI는 2024년까지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하루 150만 배럴 감소하고 미국 석유산업에 3천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석유산업계의 최대 이익단체인 미국석유협회(API)와 미국 상공회의소가 NOPEC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에너지부(DOE) 장관인 릭 페리도 NOPEC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OPEC의 감산을 비난하고 있지만 NOPEC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이를 승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표명이 없다.
다음으로 NOPEC의 제정은 미국의 중동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1일자로 OPEC을 탈퇴한 카타르를 제외하고도 OPEC 회원국에는 중동의 사우디,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가 포함돼 있다. 14개 회원국 중 이들 5개국의 생산은 전체의 70~80%에 이른다. NOPEC에 의해 유가가 급락하면 국가 재정을 석유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중동 산유국들의 정치적 불안정이 더욱 증대되는 것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차치하더라도 사우디 등 전통적인 미국 우방국과의 관계 악화는 미국의 국가 이익을 해칠 수 있다.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으로 중동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은 감소했지만 미국에게 중동은 여전히 전략적 가치가 큰 지역이다. 향후에도 중동 지역의 안정을 통한 국제 에너지가격 안정은 미국 경제에 중요하며, 중국 및 러시아의 대 중동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전략목표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의 대내외적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NOPEC이 제정되고 시행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NOPEC 법안의 추진 논의 자체가 여러 측면에서 국제 석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NOPEC 법안의 추진은 미국이 사우디와 여타 OPEC 회원국들을 압박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산유국들의 과도한 감산으로 석유시장의 수급이 타이트해지고 가격이 상승하면, 미국 의회가 법안의 추진을 본격화 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행정부는 법안을 승인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사우디를 비롯한 OPEC 회원국에 대해 증산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미국 행정부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며, 그 대가로 OPEC 회원국에게 증산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편 NOPEC 법안에 대한 논의는 OPEC과 러시아의 공조 체제를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비OPEC의 대표적 산유국인 러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2017년 1월부터 OPEC과 감산 공조에 들어가 현재까지 비교적 높은 감산 이행률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 OPEC 의장이었던 아랍에미리트 에너지부 장관은 OPEC이 러시아와 항구적인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NOPEC에서는 당연히 이런 OPEC과 러시아의 관계를 문제 삼을 것이므로 OPEC과 러시아가 상호 협력 체제를 공식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유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NOPEC 법안 논의는 바람직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국제 유가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하는 기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휘발유 등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이 2월 둘째 주 이후 반등하기 시작해 상승 추세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다가오는 5월 초에 정부가 한시적으로 시행한 유류세 인하가 종료되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추가 상승 요인이 발생한다. 국내 유가의 안정을 위해 국제 유가의 안정이 긴요한 시점에서 NOPEC 법안이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