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총회 결과와 석유시장 영향
이 달 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6월 22일 열린 총회에서 지난해 1월부터 추진해온 생산량 감축을 7월 1일부터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비(非)OPEC 산유국들은 국제 유가 부양을 위해 하루 172만 배럴 상당의 감산에 합의하고 감산을 이행해 왔다. OPEC과 비OPEC의 감산 목표량은 각각 하루 118만 배럴과 54만 배럴이다. 이번 OPEC 총회에서 합의된 감산 완화의 내용은 5월 기준으로 152%에 이르는 OPEC의 과도한 감산 준수율을 증산을 통해 100%로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성명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OPEC이 목표로 삼은 감산량에 비추어 현재 요구되는 증산 물량은 하루 약 60만 배럴에 해당한다. 이처럼 OPEC이 과도한 감산 준수율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회원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이 정치‧경제적 위기로 급속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감산량은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만성적인 투자 부족과 운영자금 부족으로 감산 목표를 하루 58만이나 배럴 초과하고 있다.
그런데 OPEC이 감산 완화를 위해 합의한 내용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즉 구체적인 증산 물량이 적시돼있지 않을뿐더러 증산 물량을 어떤 방식으로 회원국들에게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총회 전에 증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국가들과 증산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국가들에 의한 타협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부연하자면 증산을 반대한 국가들에게는 모호하지만 기존에 설정된 국별 감산량과 생산한도를 전혀 변경시키지 않은 합의였다는 점에서 수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에 증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국가들에게는 모호하지만 국별 감산량과 생산한도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증산이 가능한 합의라는 점에서 수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증산 필요성을 주장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비OPEC 감산 참여국인 러시아였고 증산을 반대한 국가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이라크 등이었다.
종래의 감산 합의를 주도한 사우디와 러시아가 증산을 주장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그 하나는 국제 유가의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해 연평균 53달러를 기록했던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올해 5월 하순에 77달러까지 상승했다. 국제 유가의 급격한 상승은 석유 수출국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고유가로 세계 석유 수요가 둔화되고 여타 원유 생산국들의 공급이 확대되면 결국 석유수출국들의 시장점유율 감소나 가격 하락으로 석유 판매 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에 대한 미국의 가격 인하 압력이다. 미국은 지난 5월 8일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 제재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의 유가 상승이 산유국들의 감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OPEC을 맹비난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이 실제로 6월 초 OPEC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사우디에게 유가 안정을 위해 하루 100만 배럴을 증산하도록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미국이 이란 제재에 따른 유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란에 대한 제재 부활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우디가 미국의 증산 요구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정치적, 경제적 위기나 제재로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한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가격의 하락과 판매 수입의 감소가 예상되는 증산을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란 입장에서는 OPEC의 증산에 반대하는 것이 미국의 제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숙적인 사우디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시도를 저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합의는 이뤄졌고 모호한 합의 내용이 향후 국제 석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번 합의의 핵심인 감산 준수율 100% 유지는 당초 감산 합의가 이뤄진 2016년 11월 총회에서 결정한대로 12개 OPEC 회원국의 총 생산한도인 하루 3천만 배럴을 생산한다는 것과 같다. OPEC 14개 회원국 중 나이지리아와 리비아 두 나라는 정정 불안을 이유로 감산에서 면제됐고 전체 생산한도 설정에서도 제외돼 있다. 그런데 총 생산한도를 기존 목표대로 생산한다는 것은 현재의 과도한 감산 준수율을 낮추기 위한 증산은 물론 향후 예상되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추가 생산 감소분까지 충당이 가능한 증산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양국의 생산 감소분은 올 하반기에만 하루 50만 배럴을 넘을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요구되는 OPEC의 증산 물량은 하루 60만 배럴에 양국의 생산 감소분 50만 배럴을 더한 110만 배럴에 이르게 된다. 만일 이런 규모의 증산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면 국제 석유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해소되고 유가는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OPEC 회원국들 중에서 증산이 가능한 여유생산능력(spare capacity)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정도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생산량 증가는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란 등 증산을 반대했던 회원국들이 당초에 설정된 국가별 감산량과 생산한도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의 생산 확대를 일정 규모 이상은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이란은 총회 이후 나온 사우디의 증산 계획에 대해 “다른 회원국의 생산쿼터를 가져가는 것은 합의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증산 물량이 시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차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여유생산능력을 3개월 이내에 생산을 개시할 수 있는 설비 능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OPEC의 하반기 평균 증산 물량은 하루 60만 배럴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OPEC의 감산 완화로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공급 차질 물량은 보전되겠지만 큰 폭의 유가 하락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70달러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OPEC의 증산 외에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산유국의 정정 불안이나 사고로 예기치 못한 추가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하거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세계 경기 침체의 우려가 심화되는 경우 유가는 더 높거나 낮아질 수 있다.
하여튼 국제 유가는 2016년을 저점으로 지난해에 약 30% 상승했고 올해도 30% 내외의 상승이 예상된다. 국제 유가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세계 석유 수요의 증가세 둔화로 이어지고 국제 석유시장의 정제마진도 점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유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정제마진의 고공 행진에 힘입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 정유기업들이 앞으로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석유 수요의 둔화,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연료에 대한 유황함량 규제 강화, 원-달러 환율의 상승 등 변화하는 국제 석유시장의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