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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사업법 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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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사업법 개정의 의미와 향후 과제

 

글·김 신 | 석유가스신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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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세금탈루액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사석유의 발목이 잡혔다. 유사석유시비를 차단할 수 있는 다양한 보완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유사석유를 정의내리고 솎아내 생산과 유통을 차단하는 선봉에는 산업자원부가 나섰다. 산업자원부 소관 법령인 석유사업법은 김택기의원의 대표발의 개정안이 지난 32일 국회 본회의를 전격 통과하며 유사석유를 차단하고 처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다. 행정자치부의 위험물 관련법령과 환경부 대기환경보전법령 역시 개정작업을 진행중이거나 추진중이어 유사석유가 편법적으로 판매되는 것을 막는 후방지원을 맡게 된다.

 

석사법 개정으로 유사석유 법논리 완벽해져

 

김택기의원의 대표발의로 개정된 석유사업법은 유사석유를 둘러싼 각종 시비를 차단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2년여가 넘도록 세녹스의 정체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는 유사석유를 규정한 석유사업법의 애매모호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유사석유의 제조나 저장, 운송 등을 금지하는 규정을 법에 담고 유사석유의 구체적인 정의는 시행령에서 명시화했던 기존 석유사업법령은 포괄위임입법과 죄형법정주의, 과잉금지 등의 헌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야기했다.

 

헌법에서 포괄위임입법을 금지하는데는 국회 통과가 전제돼야 하는 법에서 각종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효력을 갖는 시행령 등에 미룰 경우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으로 규정토록 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는 행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행정력이 남용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과잉금지 역시 법에서 규정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것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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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지방법원은 현행 석유사업법이 이들 3가지 원칙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들어 세녹스가 유사석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내렸다. 하지만 이번 개정 석유사업법은 유사석유의 정의와 제조, 판매 등에 대한 각종 규정을 법으로 끌어 올려 일원화, 구체화시켜 효과적인 행정력 집행의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정유사 제조 휘발유의 MTBE 혼합행위가 유사석유 제조행위에 해당된다는 일부의 근거없는 트집을 고려해 유사석유에 해당되는 경우와 그 예외에 대한 구분을 명확화하고 연료품질의 보정행위규정을 신설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법안에서 유사석유를 명확하게 판정내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산업자원부는 효과적인 제재방안도 확보했다.

 

유사석유 제조자는 물론 판매자에 대해서도 산업자원부가 즉각 형사고발하고 관련 시설을 폐쇄하거나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해당 사업자가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행정대집행 조항도 삽입했다. 일부 주유소가 석유사업법상의 등록을 취소하고 소방법에 근거한 위험물 취급소의 형태로 유사석유를 판매해도 단속이 불가능했던 점을 고려해 유사석유 관련시설이 타 법령에 의해 인허가를 받았더라도 산자부가 이를 취소토록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유사석유로 판정될 경우 신속한 행정력 집행을 위한 시스템도 갖췄다. 전문 용역기관과 계약을 맺어 유사석유 관련 사업장을 신속하게 폐쇄하고 관련제품을 안전하게 압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 석유품질검사소의 현장감시인력도 크게 충원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유사석유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구체화작업도 병행한다. 산자부는 법 개정의 후속작업으로 진행중인 시행령 개정에서 석유화학제품을 ‘나프타, 액화석유가스 또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나프타분해공정, 벤젠, 톨루엔, 크실렌 추출공정 또는 합성가스 생산공정으로 생산된 탄화수소물질’로 구체적으로 정의내려 유사석유 원료로 전용되는 것을 차단할 방침이다.

 

석유사업법 개정에 뒤이어 행정자치부 역시 유사석유 유통 근절에 팔을 걷어 부쳤다. 소방법 분법으로 새롭게 제정되는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 행자부는 위험물취급소에서 다룰 수 있는 제품을 명시화했다. 제정 시행령에서 행자부는 주유취급소에서 다룰 수 있는 위험물을 석유사업법상 주유소에서 취급 가능토록 규정한 석유제품에 한정한다는 단서조항을 포함시켰다.

 

법 운용의 목적이 달라 석유사업법에서는 주유소로, 위험물안전관리법에서는 주유취급소로 각각 다른 명칭으로 일컬어지고는 있지만 결국 둘의 기능이 동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취급소의 경우 자동차연료로 사용되는 위험물을 연료탱크나 용기에 담아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시화해 더 이상의 편법적인 유사석유 판매가 불가능하도록 배려했다.

 

휘발유 세율 인하·사법경찰제 도입 필요하다

 

석유사업법이나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유관 법령의 재정비가 수반되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높다. 2년여가 넘는 동안 세녹스와 LP파워같은 유사석유의 유통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주요 배경중 하나는 연료첨가제와 관련한 허술한 관리시스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연료첨가제를 관리하는 대기환경보전법령에는 별도의 첨가제 제조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을 충족시킬 경우 적합판정을 내려준다.

 

하지만 차량의 성능저하나 배기가스 증가, 노킹, 연료소비증가, 수명단축 등의 다양한 용도로 홍보되는 첨가제의 기능과는 달리 대기환경보전법령에서는 첨가제 사용에 따른 배출가스저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로 대기환경보전법령상에는 ‘첨가제 제조자가 제시한 최대의 비율로 첨가제를 자동차의 연료에 주입한 후 시험한 배출가스 측정치가 첨가제 주입전보다 배출가스항목별로 10% 이상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배출가스 총량은 5% 이상 증가해서는 안된다’는 막연한 표현으로 첨가제의 제조기준을 규정하고 있고 그 기준에 의해 적합 판정이 내려진다.

 

규정대로라면 연료에 첨가제를 섞었을 경우 자동차연료기준에 적합하고 연료 고유의 배출가스배출량에 비해 크게 초과되지만 않는다면 어떤 제품이라도 적합판정을 받을 수 있다. 첨가제 적합 판정을 받은 이후의 사후관리 역시 허술하다. 자동차용 연료의 경우 석유사업법에 규정된 품질기준에 적합한 지 여부를 생산과 수입, 유통 전 단계에 걸쳐 철저한 사전·사후관리가 병행되고 있지만 첨가제는 그렇지 못하다. 일단 첨가제 적합판정을 받게 되면 이후의 생산이나 유통단계에서 최초의 검사당시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

 

석유품질검사소가 시중에 유통중인 세녹스와 LP파워 등의 제품을 수거해 품질조사를 벌인 결과에 따르면 첨가제 적합판정을 받을 당시의 품질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첨가제 적합판정이 해당 제품에 대한 ‘공식 인가’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환경부가 방관한 결과 세녹스와 같은 유사석유가 소비자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환경부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했던 세녹스나 LP파워 생산사들이 뒤늦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대 광고로 제재를 받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환경부의 첨가제 적합판정은 그 외의 어떤 법률도 적용받지 않는 치외법권적인 의미로 확대해석되며 스스로의 편리에 따라 연료와 첨가제의 경계를 넘나 들었고 법률적인 다툼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제공해왔다.

산업자원부가 석유사업법을 개정해 연료첨가제의 제조나 판매기준을 별도로 규정하려 했던 것도 첨가제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연료로 전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컸다. 불행히도 첨가제관리방안이 환경부의 대기환경법령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운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정부가 추진중인 석유사업법 개정안에서는 삭제된 상태다.

 

하지만 환경부 스스로가 나선다면 문제는 다르다. 대기환경보전법령을 개정해 첨가제의 지위나 품질기준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사전, 사후 관리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제 2, 3의 세녹스 논란은 충분히 예방 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행정력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사법경찰관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봄직 하다. 사법경찰관제도란 중앙행정관청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의 행정수행과정에 사법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나 세관공무원, 광산보안관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이후부터는 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 상시단속반이 사법경찰권을 부여받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만약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유사석유단속과 관련한 사법권이 부여될 경우 불법사업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산업자원부 염명천 석유산업과장은 “전국적으로 약 255개 정도의 지자체에 각각 5~6명 정도의 사법경찰관을 임명하면 전국적으로 1천여명이 넘는 관련 공무원들이 유사석유의 유통근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업자원부는 현재 사법경찰관제도 도입을 법무부에 공식 요청해놓은 상태다.

 

이번 기회에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율의 재조정 검토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사석유의 생산과 유통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체계에 있다.

현재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14백원대를 넘어서고 있고 이중 세금비중이 66.2% OECD 평균인 62.7%에 비해 크게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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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석유의 유해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유사석유를 찾는 것은 정상적인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소비자들은 유사석유를 선호하면서 사실상의 조세저항에 나서고 있고 유사석유의 제조와 판매업자는 그 심리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휘발유 관련세금을 인하해 유사석유의 제조 동기를 차단할 수 있다면 1조원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유사석유 세금 탈루액을 정상적인 세원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정부의 입장에서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세율 인하의 명분이 주어졌을 때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행정부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관 부처의 유기적인 협조 뒤따라야

 

4월부터 효력을 갖게 되는 개정 석유사업법은 세녹스 관련 2심 재판부의 판결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산업자원부 염명천 석유산업과장은 “진행중인 세녹스 관련 재판은 개정전의 석유사업법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지만 개정법이 발효되는 4월 이후부터는 세녹스를 포함한 어떠한 유사석유도 제조나 판매가 허용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2년이 넘도록 지루하게 끌어왔던 세녹스 공방이 석유사업법 개정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니 반가운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댓가는 너무 컸다. 세녹스 생산사 한곳에서만 체납하고 있는 세금이 교통세와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을 모두 합해 9백여억원에 달하고 있다. 확인된 것만 30여가지에 달하는 각종 유사석유의 탈루액까지 합하면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어나게 된다.

 

유사석유의 발호로 석유사업자들이 입은 피해는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정상적인 법을 일탈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탈루하고 온갖 행정력을 빗겨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상 사업자들이 느꼈던 허탈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유사석유와 관련있는 모든 행정부처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사석유 근절에 앞장서야 할 이유들은 충분하다.

유사석유를 단속하고 제재하는 것이 산업자원부 소관업무라며 타 부처들이 손을 놓고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또다시 분란의 불씨를 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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