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제언
박중구 | 서울산업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녹색성장의 불이 당겨졌다.
2009년 한국의 화두는 녹색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기업, 가계 등을 포함한 모든 주체들이 여기에 몰입하고 있다. 정부와 준정부기관들은 녹색성장전략과 관련된 정책을 마련하고, 기업들은 공·사기업을 막론하고 이 화두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 속에 장착하려 하고 있다. 금융기관들 역시 녹색성장을 위한 금융기법을 창출하고 있으며, 노동자들 역시 녹색성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활동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가히 녹색 천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녹색성장에 대한 참여도가 높은 것은 한편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저탄소형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소위 전대미문의 경기침체, 즉 일국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겪고 있는 금융과 실물부문의 동시위기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전략으로서 녹색성장이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이러한 복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 또는 각 주체별로 준비하고 있는 전략들을 종합조정하고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태계 활성화 정책 필요
우선, 최근 성공적인 프로젝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수요와 공급, 즉 시장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사이에 시스템적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술개발이 수요의 진화에 민감하게 이루어질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수요지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실패의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시사점에 대응하여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은 기술개발에서 조달-조립·생산-마케팅에 이르는 부가가치창출사슬망(value-chain)의 각 공정들에 참여하고 있는 각 이해관계당사자들 간에 경쟁을 유발하는 한편으로 협력을 촉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vard Business Review)"는 21세기로 들어서는 첫머리인 2000년 1, 2월호의 화두로 공진(共進, Co-evolution)으로 설정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공동발전을 도모하는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수익 극대화를 도모하는 경영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위와 같은 움직임은 녹색성장정책의 성공이 이 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인자들로 구성된 생태계 내에서 이해관계당사자들 간 공진을 추구할 경우에 담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경쟁력 평가의 이론적・실증적 모형을 제공한 포터(Porter) 교수는 그동안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각 주체(nodes)간 네트워크(network) 효과를 강조하다가 최근 들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합주체(Institute for Collaboration)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다.
융·복합 분야를 우선설정 필요
이제 이와 같이 설정된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현재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불황기와 성장잠재력 자체의 하강추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그러하다. 녹색성장정책은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줌과 동시에, 특히 단기적으로 실질적인 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야로서 녹색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융·복합화 기술 및 제품군을 들 수 있다. 특히 현재까지 국민들의 경제력과 자존심을 부추겨 온 주력산업분야를 바탕으로 첨단 신기술, 즉 정보기술(IT), 생명기술(BT), 극세미립자기술(NT), 에너지·환경기술(ET) 등을 융·복합화하는 산업군을 활성화해 보자는 것이다.
흔히 기술의 융·복합화를 얘기할 경우 첨단의 신기술간 융·복합화를 먼저 떠올리는데, 이것이 한국경제의 현재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력산업분야에 종사하면서 소득을 창출해 온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현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경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능력에 부치는 신기술·신제품 분야를 강조하는 것이 좌절감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까지 국민들의 경제적 자존심을 지탱해온 주력산업분야를 바탕으로 신기술을 융·복합화하는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분야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 사다리(hierarchy)의 재편과정 속에서 선진국과 후발국 사이에 ‘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도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선·후진국(기업)의 우위요소를 연결하여 더욱 강한 경쟁우위를 창출 할 수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첨단 신기술의 개발과 그들 간 융·복합화를 시도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종기술간 융·복합화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서로 각기 다른 분야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술개발인력들이 상대 또는 다른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 또는 공동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융·복합화 기술의 개발 및 산업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조직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융·복합화를 통해 신기술 및 신제품, 신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체제 및 산업조직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균형발전 필요
이러한 녹색성장전략의 추진과정에서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화두가 계속 마찰을 빚고 있다. 즉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 현안과제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환경보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우(Arrow)가 주창한 바와 같이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환경에 대응하여 작용, 반작용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국 경제 ‘스스로의 재조직화·적응 (self-organizing)'하는 노력을 추진하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표설정을 요즈음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 ‘지속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즉 환경문제를 고려하면서 발전을 추구하자는 개념을 원용하여 ’지속가능 경쟁력 확보“로 하여 보면 어떨까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이미 OECD 선진국들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들의 경제 정책은 성장과 분배를 넘어선 경쟁력 강화로 전환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국가들의 경제 정책은 지난 30년 이상 성장과 분배가 마찰을 빚으면서 되풀이 되어 왔다. 성장을 추구하면서 드러난 분배 및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장정책이 다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고리가 재발해 왔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선진국들은 동태적 경쟁력 확보를 통해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표출되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녹색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잠재성장력 제고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경쟁력 제고는 단기적으로는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이라는 모순적 논리에 빠져 헤매고 있는 현재의 정책 목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념이고, 장기적으로는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제3의 정책목표가 될 수 있다. 모두가 경쟁의 정당성을 찾아 동태적 확대균형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녹색성장정책의 성공적 추진은 한국자본주의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s capitalism)에서 이해관계 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s' capitalism)로 진화할 때 달성가능할 것이며, 이러한 진화를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