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거품 가능성 없나
글 | 추창근_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수억년전 지질시대부터 땅 밑에서 만들어지고 묻혀있던 석유가 처음 상업적으로 개발된 것은 지난 1859년 미국에서였다.이후 150년 동안 석유는 인류 문명발전의 원동력이자 경제개발의 핵심 에너지원이었다.지금의 전 세계 경제구조와 인류의 생활 양식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석유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럼에도 벌써 더 파낼 자원이 남지 않게 되는 석유의 완전고갈에 대한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이른바 ‘석유정점(oil peak)이론’으로,대개 40∼50년후면 석유가 모두 말라 버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령 석유가 가까운 장래에 바닥을 드러내지 않더라도,언젠가 석유의 시대는 끝나게 될것이고,그 석유의 자리는 아마 신·재생에너지가 대체하게 될것이다.태양열,태양광,풍력,지열,수력,조력 등 잠재력이 무한하고 고갈될 우려도 없는 저탄소·청정에너지원들이다.이미 지구적 화두(話頭)로 떠오른 온실가스 저감,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것이 대세라면 우리에게도 신·재생에너지는 피할 수 없는 과제임에 틀림없다.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아젠다로 내건 것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일 것이다.정부가 지난해 9월 확정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의 공급비중을 현재의 2.4%에서 2012년 4.0%,오는 2030년까지 11%로 높이고,생산은 현재 18억달러 수준에서 2012년 170억달러,2030년 3000억달러로 확대한다는 내용들을 골자로 하고 있다.이를 위해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전지 가스석탄액화(GTL/CTL)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 CCS(CO₂포집ㆍ저장) 등 9대 분야를 우리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도 내놨다.
야심찬 계획이다.실현되기만 한다면 지금과 같은 과도한 석유의존도를 대폭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그린에너지산업이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기대해 볼만 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나친 목표치를 세우고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연 신·재생에너지가 가까운 장래에 석유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또한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그린에너지 발전전략은 피할 수 없는 트렌드이다.하지만 그린에너지가 온실가스의 획기적인 감축을 의미하고,이를 위해 새로운 기술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과연 우리 수준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일본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들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해옴으로써 이미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선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지금 우리 기술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겨우 50~85%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설비의 수입의존도도 태양광이 75%,풍력은 무려 99.6%에 이를 정도로 우리의 기술력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태양광 발전장치의 핵심인 태양전지 패널의 경우 미국 일본 등이,풍력에너지 발전장치는 독일이 세계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자칫 신·재생에너지개발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일본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역역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재생에너지의 부족한 기술 말고도 낮은 경제성,좁은 국토여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그나마 실용화 속도가 빨라 대체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태양에너지나 풍력만 해도 그렇다.현재 기술로 전력 1㎾h를 생산하는데 태양광은 700원,풍력은 100원이상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계산이다.원자력의 경우 40원에 못미친다.1㎡의 집광판(태양전지)으로 얻을 수 있는 전기는 겨우 형광등 2개를 켤수 있는 60W 정도다.원전 1기 규모인 100만㎾급의 발전단지를 건설하려면 태양광은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1000만평,풍력은 최소한 그 절반의 땅이 필요하다고 한다.‘저탄소’를 말하지만,실제 국제원자력기구(IAEA) 분석에 따르면 전력 1kWh 생산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CO₂환산)는 원자력 10g,태양광 57g,풍력 14g이다.
그 실용적 한계가 너무나 뚜렷한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신재생에너지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은 미래의 대안으로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솔직히 정부의 녹색성장론에 그런 비현실성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녹아 있는지 의문이다.
신·재생에너지가 국제 원유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던 고유가 시대의 대안으로 급속히 부상했지만,유가가 급속히 떨어진 지금 상황에서 어떤 파장을 가져올 것이냐 하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지난해 7월 역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7달러를 기록했던 유가는 겨우 6개월만에 WTI(서부텍사스원유),두바이유 모두 최고치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40달러 안팎으로까지 내려왔다.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인 석유가격의 안정을 장담할 수는 없다.그런 점에서 단기적인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개발과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08년 지속가능 에너지 투자 경향’보고서만 보더라도 풍력과 태양광 등 청정 에너지에 대한 전세계 투자는 지난 2007년 1480억달러로 최대를 기록하면서 ‘그린에너지 투자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 양상이다.이는 2006년의 926억달러에 비해 60% 증가한 것이다.우리 또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 대안들도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규모 투자확대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나친 과열과 투자러시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다름아닌 ‘신·재생에너지 거품’의 가능성이다.이는 당연히 석유가격의 등락에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일 수 밖에 없다.말하자면 석유가격이 어느 수준이상이어야 신·재생에너지가 경제성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석유에 대해 경쟁력을 갖고 유망한 산업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기약할 수 있느냐 하는 얘기다.
신·재생에너지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전문가들은 그 마지노선의 석유가격을 배럴당 70달러선으로 보고 있다.그 이상의 수준이어야 신·재생에너지가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재 원유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결국 대규모 투자에 나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버블 붕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물론 단기간에 급락한 석유값이 또다시 크게 오를 소지 또한 없지 않지만,이미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전세계의 경기의 장기 침체가 가시화된 마당이고 보면 국제 원유가격이 다시 오른다 해도 상승폭은 제한적일 소지가 크다.
이 경우 대규모 시설투자에 나선 국내외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우선적으로 태양광 발전 시장에서 내년께 ‘버블 붕괴’가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에너지 소비의 합리화’다.우리가 지금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를 한꺼번에 바꾸고,갑자기 석유 소비를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데도 에너지 소비효율에 관한한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지난 2006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 효율성(석유로 환산한 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국내총생산) 지표는 3.8로,미국 5.69,일본 8.29,독일 8.36,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5.2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겨우 절반이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다시 말해 1달러의 GDP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1이라고 하면,일본은 0.46,미국 0.67,OECD 0.72의 에너지만을 쓴다는 얘기다.에너지 효율성이 낮다는 것은 같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에너지 비용 지출도 많다는 얘기다.
그런 경제구조를 어떻게 합리화·고도화 시키느냐 하는 것이 국가에너지 정책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과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당장에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의 혁신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수단의 강구와 추진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이유다.미국 시사주간지인 타임지는 2009년 신년호에서 에너지 절약 그 자체를 ‘제5의 에너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