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할 수 없는 석유의 끝
박현동 국민일보 경제부장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면 더 좋고. 아무리 큰 위기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헤어날 구멍은 있고, 이는 인류발전의 동인(動因)이기도 하다. 궁즉통의 이치를 모르는 이가 없겠으나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시간은 흐르고, 생명은 유한(有限)하니…
세상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있으나 사실 대다수는 인간의 필요나 이기(己)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즐겁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내고,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때문에 인간은 고민한다. 심지어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석유를 찾아내고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원초적 갈등은 잉태돼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편리함이나 즐거움엔 반드시 대가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지구온난화와 이에 따른 오존층의 파괴도 석유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이나 즐거움의 대가라면 대가다. 피부질환, 심장질환 등도 환경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세상의 모든 재앙의 원인을 환경파괴에서 찾는 경향도 없지 않다. 다수는 그 책임을 화석 원료(석유)의 과다 소비에서 찾기도 한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반드시 틀린 주장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저 두 발이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을 때 우리는 국제원유 가격 상승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환경오염을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좀 더 안락하고, 좀 더 편안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지금 또 다른 걱정과 갈등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피할수 없는 숙제다. 자고 나면 오르는 국제원유 가격 때문에 차 가진 사람들의 불만은 커지지만 그렇다고 묘책이 없다. 편리함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자동차에 중독돼 있고, 그렇다고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을 다시 벌일 수도 없다.
석유의 고갈은 다른 대안을 불러올 것이다
머지않아 지구상에 석유자원이 완전 고갈된다고 한 번 상상해보자. 환경 파괴는 줄어들겠지만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잔인하리만큼 끔찍하다. 대부분의 기계는 멈춰 설 것이고, 추운 겨울을,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한다. 전기자동차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걸어서 출퇴근을 해야 한다. 밤은 더 어두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뿐일까. 정치, 사회적 후유증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종말이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서로의 판단은 다르겠지만 내 생각엔 상상에 그칠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시각 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암흑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영민함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류 발전 과정을 볼 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지만 인간은 영민하다.
그렇지만 그 탐욕의 끝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것 또한 인간이다. 춥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덥디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밤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인간은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석유 소비를 줄일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궁즉통의 원리가 적용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뿐 아니다. 정부는 각종 규제를 내놓을 게 당연하다. 우선 인간의 선(善)과 도덕(道德)에 의지해 석유소비절약 캠페인과 자동차 부제 운행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으로 도 부족하다면 대책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강제성을 동원한다. 여기엔 세금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럴듯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다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포장까지 하고서. 심지어 인류의 종말 운운하며 협박까지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제적으로는 에너지 확보전이 치열해질 것이다. 심지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원유가격이 무한정 오르도록 국제사회, 좀 더 냉혹하게 말하면 강대국들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표면적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도 석유에너지 확보를 위한 에너지전쟁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OPEC 입장에서 에너지 확보전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쩌면 궁즉통의 원리인지도 모른다. 전쟁은 상처는 깊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전쟁의 논리도 상황에 따라 변한다. 손실은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은 복구된다. 하지만 궁즉통의 원리가 작동하면 최대 피해자는 석유생산국이다. 대체에너지개발을 자극해 새로운 에너지가 만들어질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석유에너지의 유용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석유고갈우려의 확대는 세계질서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OPEC만 두려워할까. 사실 미국(세계 석유소비량의 25% 차지)을 포함한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국가들은 더 위험하다. 그들은 대다수 강대국이다. 석유에너지가 그들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석유에너지의 충분한 확보는 그 힘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앞으로도 핵심과제다. 만일 궁즉통의 원리가 시장을 지배하면‘석유=힘’의 등식이 무너질 것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라크 전쟁, 태평양전쟁 등 많은 전쟁의 이면에는 석유에너지 확보문제가 깔려 있음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석유자원은 무한한가. 2007년판 BP(British Petroleum) 통계에 따르면 세계 원유 매장량은 1조2000억 배럴(2006년 기준)이다. 일부 에너지 전문가들은 손쉽게 채굴할 수 있는 유전은 이미 모두 발견됐다고 주장한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생산을 지속한다면 41년 이후엔 석유자원은 고갈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산술적 계산이다.
현재 가용 가능한 매장량으로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는 부족하다고 예측한다. 그들은 수십년 안에 석유생산량이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피크 오일(peak oil)론'이다. 석유자원의 유한성을 인정한다면 피크 오일론은 시기의 문제일 뿐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전이 있을 수 있고, 갈수록 채굴기술과 정제기술이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피크 오일론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고 반박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또한 아직도 2조 배럴 이상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석유생산 정점을 2013∼2037년쯤으로 본다. OPEC는 100년 정도 더 버틸 수 있다고 추산한다. 어느 견해가 옳든지 간에 석유는 기본적으로 재생이 가능하지 않은 화석연료다. 종국적으로 석유는 고갈될 것은 운명에 있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즉 고갈은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위기는 석유의 고갈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다. 이는 고갈시점보다 위기시점이 훨씬 빨리 온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논란은 단순한 석유자원의 수급 문제에서 야기된 것만은 아니다. 석유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면 자본과 인류의 관심은 대체에너지 쪽으로 집중될 것이고, 이는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핵심적인 사실은 강대국들의 질서변화다.
이쯤에서 2007년을 접고 2008년을 생각해보자.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국제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 전제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아마도 자동차는 애물단지가 될 것이다. 타이어를 펑크 내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장식하기엔 거추장스럽다. 우리나라와 같이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나라는 더 그렇다. OPEC이라고 마냥 좋을까. 아니다. 줄어드는 소비에, 솔직히 말하면 궁즉통의 원리가 작동될까봐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지도 모른다. 쥐 고양이 걱정해 주는 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