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자원전쟁, 정부·기업의 합동 전략 필요
글 | 이달곤_국회의원, 지식경제위원회
세계 경제가 대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 미국발 신용경색 문제로 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이 벌어지고 있고, 유가와 주가는 매일 급격한 등락을 보이고 있다. 혼란에 빠진 세계 경제의 모습이다. 세계 경제 혼란이라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무대에 서게 될 한편의 연극이 있다. ‘자원전쟁’이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언제 무대에 등장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무대 뒤에서는 누가 주인공을 할 것인지, 제작자는 누가 될 것인지, 누가 말없이 서 있는 나무1, 가로등 2 같은 역할에 그칠 출연자는 누구 일지를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이미 이 연극은 상연이 된 적이 있다.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 역시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한 원인이기도 하다. 히틀러는 러시아의 유전지대를 노렸고, 북아프리카를 통해 아라비아로 진출하려했다. 일본은 미국의 석유 봉쇄를 빌미로 전쟁을 도발하기도 하였다. 다른 많은 분쟁도 자원을 둘러싸고 실제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자원 전쟁은 여전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정치의 판도가 무기의 사용이나 폭력, 선전포고와 종전 선언으로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조차 불분명한 방법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른바 스텔스 전쟁이다. 언제 공격을 받는지, 어디서 공격하는지도 알 수 없는 미확인 전쟁이다.
자원을 무기로 국제정세를 위협하는 전쟁 양식은 가상의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위협이다. 미국은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소련연방체제에서 이탈한 친서방 국가를 활용하여 카스피 해 지역의 석유 가스를 러시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수송로를 통해 공급하려 했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강력한 불만과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와 유럽의 에너지 기업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의 가스와 석유 자원에 대한 투자에 집중했고, 이를 통해 늘어나는 서방의 에너지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자 했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트빌리시를 지나 터키의 세이한(BTC 파이프라인)에 이르는 러시아의 석유 및 파이프 라인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은 서방에게는 러시아의 영향을 벗어나는 새로운 에너지 보급로의 확보이며 러시아에게는 살을 도려내는 비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또한 바쿠-트빌리시-터키 에르주름(BTE 라인)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루지야는 이른바 장미혁명으로 친서방으로 돌아섰고, 카스피해 자원전쟁의 1차 승리는 미국의 것이었다.
러시아는 2005년도의 BTC 파이프라인의 개통에 맞서 이러한 고통속에서도 제대로 반격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듯한 푸틴의 북극곰은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앞발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천연가스 독점공급권을 체결하여 카스피해의 해저를 통해 BTE 라인으로 천연가스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받으려는 미국측의 의도를 완벽하게 무산시켜 버렸다.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천연가스의 공급을 중단하여 서유럽에 대한 공급까지 중단시킬 수 있다는 위력시범을 보였다.
미국, 유럽은 러시아가 핵무기와 전차가 아닌 석유와 가스로 서구사회를 위협하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과거 유럽은 미국과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를 통해 구 소련의 유럽침공에 대한 대비를 했지만 새로운 에너지 폭탄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 공산주의 세력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러시아와 가스 석유의 공급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협력체제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이 아프리카 등에 대한 자원 확보를 위해 각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하고 있다.
이른바 강대국은 자국의 자원은 그대로 두고 타국의 지하자원 개발에 열을 올리거나 기존의 자원개발 계약도 거침없이 취소하는 등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오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법규 미비, 중앙정부의 권력 부재 등으로 인한 정치 혼란 등의 사유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서(西)캄차카 유전개발을 취소했고, 베네주엘라의 광구 지분율을 강제로 낮춰 버리는 등 불리한 계약이 속출하고 있다. 계약했어도 취소해버리는 힘없으면 그대로 죽으라는 식의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인 자원전쟁의 무대에서 해야 할 것은 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 작은 전투일망정 지속적으로 이기는 것이다. 해외자원개발을 촉진하고 자원 자주확보율을 높이는 것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인 것이다. 정부에서도 제3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에서 석유가스 자주개발율을 2016년에는 28%로 하기로 했고 매년 1조 이상 10년간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자원개발 인력과 R&D도 늘리기로 했다. 자원개발 공기업도 대형화하기로 했다.
해외자원개발 계획이 완벽한 것도 아니며 실현가능성을 논하기도 전에 희망의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무너진 폐허 위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이다. 해외자원개발 역시 기술도 뒤처지고 인력도 부족하고 정보도 모자라는 환경에서도 결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미 해외에서 석유개발 등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자원개발 선진국가의 기업에 비해서는 왜소할지 몰라도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일부의 부정적 인식이나 잘못된 접근이다. 해외자원개발은 상당한 위험성이 있고 성공가능성도 높지 않다. 성공의 보상이 크다고 해서 언제 어디서나 엘도라도를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주식시장에서 자원개발이 이른바 테마주로 떠올라 작전주가 되기도 했고, 해외자원개발을 빌미로 정부나 금융기관의 돈을 빼내거나 투자 유혹을 하는 이른바 “짝퉁 자원개발업체”들이 수사를 받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있다.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 문제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요즘 세태이다. 그래서 일부 기업의 잘못도 전체 기업의 흠결처럼 보여지기 쉽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업에서도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정부의 여러 제도가 있지만 그중 성공불 융자는 앞으로 회수율도 높아지고 융자금액도 많아져야 하고, 심의 과정도 개선되어야 한다. 해외자원개발협의회 등 자원개발 업체가 정부에 요구하는 바도 많을 것이다. 해외자원개발 업체도 대형화가 필요하고 외교 공관 등에서 총괄적인 지원체제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상당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온 국민이 박수 보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