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선물시장 도입의 문제점과 과제
윤창현_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사) 바른금융재정 포럼 이사장)
선물을 포함한 파생상품의 도입과 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변동성이다. 변동성은 위험을 의미한다. 가격이 움직이면 이에 연동된 수많은 자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이로 인한 위험이 발생한다. 파생상품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 리스크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피해가는 수단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 파생상품을 이용하게 되면 가격 하락시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투자자는 선물 매도 포지션을 취하게 되고 가격상승 시 손실을 보게 되는 투자자는 선물에 매수 포지션을 취하여 자신이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격의 움직임을 이용한 스펙거래도 등장하게 되고 차익거래나 스프레드 거래 등 여러 가지 전략이 화려하게 펼쳐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역시 선물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가격 변동성 심화와 그에 따른 헤지 수단의 제공이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유가와 관련하여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석유제품가격 하향 안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석유제품 선물의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휘발유선물을 도입하여 휘발유가격을 하락시키고 휘발유 가격의 변동성도 줄이자는 얘기인데 이는 아무리 보아도 문제가 있다.
많은 연구결과들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나 선물도입의 가격안정화 효과는 존재한다는 연구와 그렇지 않다는 연구가 나누어진다. 하지만 선물도입이 해당제품의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논의는 거의 없다. 오히려 최근 국제유가 급등에는 선물 시장의 투기 세력의 움직임이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불 이상 등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선물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고 글로벌 금융기업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 고위간부가 국제 유가 급등에는 과잉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선물시장의 투기 수요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선물 시장이 현물시장의 가격변동성을 오히려 부추기고 가격을 인상시키는 주객전도 현상도 나나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격변동성이 증가하거나 가격이 등락을 하는 경우 선물시장을 이용한 위험회피내지는 위험관리 기능은 어쨌건 작동한다. 그러나 가격하향안정화나 변동성 감소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휘발유 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심해져서 휘발유 선물을 도입되면 휘발유 공급자는 판매 가격을 미리 정할 수 있고 휘발유 소비자들은 구매 가격을 결정해 놓을 수 있는 헤징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휘발유 선물시장이 만들어진다고 휘발유 현물시장의 가격이 안정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휘발유 선물시장의 가격변동성이 현물시장에 전이되어 휘발유가격변화를 부추기는 현상까지 관찰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을 주객전도(主客顚倒) 즉 꼬리가 개를 흔든다(The tails wags the dog)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현물시장을 근거로 선물시장을 도입했더니 선물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가격이 크게 움직이면서 오히려 현물 시장이 크게 난리를 치는 주객전도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석유제품 선물을 도입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석유 선물을 도입해야겠다면 유가 안정 효과를 얘기하지 말고 선물 그 자체의 논리에 충실해서 리스크 헤징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석유시장에서는 현물시장가격을 결정할 때 선물시장 가격을 토대로 결정을 할 정도로 선물시장가격의 대표성과 영향력이 증대된 상태이다. 따라서 이를 감안하면 석유선물 내지는 석유제품 선물의 도입에 매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가 석유 선물 상장으로 휘발유 가격하락을 기대하는 배경에는 정유사나 주유소 같은 석유 사업자들이 선물 시장에 참여해 리스크를 헤징하고 얻은 이익만큼 가격을 낮춰 판매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석유제품 선물시장을 만들었다고 가격의 하락을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내수 석유가격을 하향시키겠다면 차라리 석유수입을 장려하는 정책 등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더 큰문제가 존재한다. 정유사들이 휘발유 가격의 하락을 걱정하여 휘발유 선물에 대량의 매도 포지션을 취하였다고 하자. 이런 포지션을 취하고 나서 실제로 원유가하락과 휘발유 가격의 하락이 일어나는 경우 정유사들은 선물포지션에서 커다란 이익이 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언론의 즉각적인 비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휘발유 가격의 하락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식의 고급정보 접근 가능성이 우선 지적될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선물매도를 취하지 않고 특정 시점에 큰 포지션을 취한 것도 이상하다는 식의 지적도 가능하다. 결국 정유사들이 헤징에 성공을 할 경우 이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결국 정유사들이 다른 투자자와 같은 조건하에서 휘발유선물시장을 이용하기는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시장을 둘러싼 환경에 기인한다. 석유제품 시장이 기본적으로 과점체제이므로 일반 투자자와는 다른 시장지배력을 가지게 되고 결국 일반 투자자보다 정보우위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여 헤징을 하여 이익을 보면서 일반투자자가 손실을 보았다는 식의 비판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아마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결코 마음 놓고 휘발유 선물시장에 진입하고 자유롭게 거래를 하기가 무척 힘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유사의 헤징은 선물애도를 통해 휘발유가격 하락 시 돈을 버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또한 정유사들은 지속적으로 선물매도 포지션을 취하기보다는 가격하락이 예상될 때 선별적으로 매도포지션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가격이 하락하면 즉각적으로 “너 가격하락을 알고 있었지?” 식의 비판이 나올 것이다. 일반 투자자를 희생시켜 선물시장에서 폭리를 취했다는 식의 비판도 나올 것이다. 이익을 보면 무언가 시장지배력이나 정보력 우위를 이용한 것이고 만일 반대로 휘발유 가격이 올라서 손실을 보면 거대 기업이 능력이 부족하다든가 그래가지고 되겠냐는 식의 지적도 나올 것이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다.
결국 이렇게 보면 정유사들이 휘발유 선물로 대표되는 석유제품 선물시장에서 자유롭게 플레이를 하기는 힘들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런 논리가 작동하면 휘발유 선물시장의 성공가능성은 매우 낮아지는 것이다. 또한 휘발유 선물 도입 후 가격이 등락이 심해진다든가 가격상승 움직임이 나타난다든가 하는 현상으로 인해 휘발유 시장가격이 영향을 받으면 이 시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장 참여자에 대한 여러 가지 제재조치가 취해지거나 심지어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이고 휘발유 시장의 교란에 대한 책임을 이 시장관계자가 뒤집어 쓰는 등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휘발유 선물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려면 우선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물시장이 만들어지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석유 선물 상장은 유가 하향안정화 대책이 아니다. 우선 이를 하향안정화 대책에서 제외해야 한다. 선물은 가격변동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또한 현물시장이 잘 정비되고 가격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선물 참여자들은 현물시장 가격을 보면서 매수도 포지션을 취할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 가격변동성이 커야 하고 거래 참여자들이나 거래량도 충분해야 한다. 이런 여건들을 면밀하게 점검해 보고 석유를 선물 시장에 상장해야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 도입 여건은 별로 좋지 않다. 정유사들은 수많은 주유소와 거래 조건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상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급가격정보는 일종의 영업기밀이다. 이를 공개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휘발유의 현물가격을 알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휘발유 가격의 변동성은 그리 크지 않다. 가격변동성이란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할 때 증가한다.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은 변동성이 낮은 시장이라는 의미이다.
휘발유 선물로 대표되는 석유제품 선물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물 시장이 잘 정비되고 휘발유 가격의 변동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 즉 기름가격의 등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수단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도입된 돈육선물은 돼지고기의 등급을 판정하고 가격을 매기는 ‘축산물등급판정소’라는 좋은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곳을 통해 돈육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현물 가격 고시가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거래소는 축산물등급판정소와 손잡고 선물 도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석유제품은 이러한 현물시장이 잘 갖추어 졌다고 보기가 힘든 시장이다.
또한 석유 선물을 상장해야 하니 현물시장 제도를 다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유사에게 공급가격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파트 분양가 정보를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선물시장에 석유를 상장시키겠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석유선물을 이유로 석유 유통 제도 전반을 바꾸도록 하는 경우 선물 상장후 시장이 계속 잘 되지 못하고 상장이 폐지가 되거나 할 경우 지나친 호들갑을 떤 셈이 되어 버린다.
석유 선물과 상관없이 현물가격 고시 시스템이 잘 정비되고 석유유통산업의 필요에 의해 상표표시나 수평거래금지 같은 제도가 변화되고 그 이후 휘발유 가격의 변동성이 증가하는 경우 이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물 상장이 검토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물시장에 상장된 상품 중 성공한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품 선물 중 금 같은 경우는 이미 실패했다. 석유 선물 상장을 이유로 현물 시장에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고 강요했는데 만약 선물 시장이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매우 위험하고 많은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
선물은 가격의 하향 안정화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현물시장이 자체적인 논리에 의해 잘 정비되고 개선된 이후 선물시장의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 성숙되면 자연스럽게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상황은 선물시장도입 여건이 미흡한 상황이다. 무리하게 도입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한번 일단 실패하면 다시 도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