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가격 상승의 이유와 전망
조상범_대한석유협회 과장
국내 경유가격 급등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월4주 국내 경유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1,876.92원으로 휘발유 1,876.62원을 넘어섰다.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을 역전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경유 소비자가격이 3월2주 이후 11주 연속 사상최고치를 갱신한 데 따른 것이다. 휘발유 가격 또한 11주 연속 상승했지만 경유가격 상승폭이 더욱 높았다.
월간 기준으로 보더라도 지난 5월 평균 경유가격은 1,803.35원으로 역시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경유 가격은 올 1월 대비 21%나 올라 휘발유 가격상승률 9%의 약 2.3배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 초 약 200원에 달하던 휘발유와 경유간 소비자가격차이는 5월에는 35원으로 좁혀졌으며, 5월 4째주에는 드디어 경유가 0.3원 더 높아진 것이다. 경유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어 이미 역전된 경유가격이 얼마나 더 상승할지 국민의 우려와 염려가 증폭되고 있다.
<그림> 국내 휘발유 및 경유 주유소가격 추이 (‘08.1.1주~5.4주)
국내 경유가 상승은 국제 경유가 상승 때문
그렇다면 왜 국내 경유가격은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는 것일까?
이는 바로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 석유제품가격에 연동되어 책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국제 휘발유가격 상승폭보다 경유가격 상승폭이 더욱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5월4주 기준 국제 경유가격은 배럴당 171.3달러로 휘발유의 136.1달러에 비해 26% 높게 거래되었다. 올 1월의 휘발유와 경유 국제가격이 각각 배럴당 99.6달러, 108.0달러였던 점을 고려해보면, 휘발유는 이 기간동안 37% 상승한 반면 경유는 59%나 상승하여 휘발유 상승률보다 0.6배 더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 3월2째주부터 시작된 원달러 환율 급등세는 최근에도 1천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국내가 인상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국내외 휘발유 및 경유가격 추이>
국제 경유가는 수급불균형 때문에 상승세
원래 경유 수요는 유럽, 중동, 남미 등 거의 전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데,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가의 경제발전 등으로 수요가 꾸준히 증가되어 왔다. 하지만 올 2~4월 중국내 일부 정유공장의 정기보수로 경유생산이 감소하자 중국 정부가 잠정적으로 17%의 경유 수입세를 줄여 국제시장에서 수입하였다. 이에 따라 3월의 경우 중국의 일일 경유 수입량이 전년동기대비 7배 정도 상승한 15만 배럴에 달했고, 4월에도 수입량이 73% 증가하는 등 올들어 넉 달 동안 경유수입이 전년동기에 비해 약 8배나 급증하였다. 결국 중국의 수입수요 증가가 아시아 역내의 경유 수급불균형을 초래했고, 국제 경유가격이상 급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이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예비발전용 연료인 경유 비축량을 늘리고 있으며, 쓰촨성 대지진 복구에 따른 경유 수요증가 등으로 국제경유가격 급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격 상승의 원인이 투기적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수급불균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이 해소되면 경유가격은 곧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으나, 최근 전세계적인 경유소비량 추이를 살펴보면 경유수요 증가는 이미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OECD국가의 휘발유 및 경유 수요를 분석해보면 소비량 자체는 두 유종간 비슷한 규모로 과거부터 꾸준히 수요가 증가되고 있다. 하지만 휘발유 소비량중 수송용 수요는 절대 다수인 98%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는 반면, 경유는 ‘73년에 수송용 비중이 29%이었으나 2005년에는 65%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05년의 휘발유 수송용 수요는 6억2,540만6천톤으로 1973년 대비 44% 증가한 반면, 경유는 4억37만톤으로 같은 기간 219%나 증가하여 경유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이는 EU 등에서 실시한 환경친화적 경유차량 보급 확대정책에 따른 것인데, 유럽국가 들은 경유가 휘발유에 비해 연비가 높아 경제성이 우수하며, 온실가스배출감축에도 유리하다는 이유로 CO2가스 저배출 경유차량에 대한 취등록세 등을 지원하였다. 이로 인해 수송용 경유 수요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유럽 등 OECD 선진국의 경유차량 보급확대 정책에 따른 경유수요증가와, 최근 중국 및 인도 등 비OECD 개발도상국가들의 급격한 경제발전에 의한 경유수요확대가 맞물려 국제 경유가격이 상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료 : Oil Information 2007 (OECD)
대부분 운전자들은 국내 휘발유 가격이 경유보다 더 높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도 그럴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경유가 휘발유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통상적으로 2005년 이전에는 연평균 국제 경유가격도 휘발유가격 대비 90% 대로 휘발유보다 낮았으나, 최근에는 수요 증가 등으로 경유가격이 휘발유 보다 더 높다. 다만 우리나라는 휘발유 세금이 경유보다 높아서 소비자 단계의 가격이 인위적으로 조정된 것일 뿐이다.
<휘발유 및 경유 국제가격 추이>
국내 경유가격 전망
국제경유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국내 경유가격의 향후 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유가격은 버스, 트럭, 화물차, 레미콘 등 산업수송용 요금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치솟는 경유값으로 화물연대는 총파업까지 불사한다는 강경한 입장이고, 생계형 화물차 운전자들은 유가보조금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어 경유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 경유가격이 하락해야 실질적인 물가가 인하될 수 있고, 생계형 경유차량 운전자들의 가처분 소득이 증가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고유가 대책 관계장관회의에서 6월말로 예정된 유가보조금 일몰시한의 연장을 검토하기로 하였고, 경유세금 인하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하니 유가급등의 충격이 다소 경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제 경유가격 추이를 살펴보건대 앞으로 큰 폭의 유가하락이나 환율변동이 없는 한, 경유가 고공행진은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가격이 국내가격에 반영되는 데에는 약 2주 내외의 시차가 발생하는데, 최근 2~3주간 국제 경유가격은 오히려 크게 상승하였다.
한편 OPEC 또한 최근 고유가는 수급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미 달러약세에 따른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라며 증산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알리 빔 이브라힘 알 나이미 석유장관은 지난 5월 중순, 국내 모 대학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최근 고유가는 석유시장 펀더멘틀 보다는 금융시장 급성장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의 상황은 석유수급상황은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원유가격 상승이 제품가격을 밀어올리는 형국이기 때문에 경유 이외에도 기타 제품가격 하락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5월~7월은 미국의 드라이빙 시즌이 도래하여 휘발유 및 경유 등 수송용 유류의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어서 국제 유가가 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높다.
경유가격 급등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중국의 경유 수급상황도 녹록치 않다. 국영석유사인 페트로차이나는 6월 한 달 동안 경유수입을 늘리고, 지진 이후 국내 경유수요 증가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유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국제유가의 고유가 체제가 고착화된 현재 상황에서 급격한 가격하락 요인이 없기 때문에 국내 경유가격은 당분간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