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 에너지 대책
최철국_국회의원, 통합신당, 산업자원위원회 간사
2008년은 무자년 쥐띠 해다. 쥐는 부지런함과 영민함으로 12지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산, 재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쥐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난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운과 4,800만 국민 운이 모두 활짝 열리기를 기원한다. 특히 우리 석유산업계에 대운이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영 달갑지 않은 선물이 날아들었다. 우려하던 배럴당 100달러 유가 시대가 마침내 현실로 닥친 것이다.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2일 뉴욕상업거래소의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는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까지 올랐다 99.62달러로 폐장했다. 2004년 9월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선 후 3년여 만에 두 배로 치솟은 유가는 이로써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역대 최고 시세인 1980년 3월의 101.70달러에 바짝 육박했다. 유가가 작년에만 57%(WTI 기준)나 오른 이유는 중국, 인도 등 거대 신흥 개발도상국이 연 10%가까운 성장을 지속하면서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나 공급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산유국의 정정불안과 미국 달러화 약세 등이 겹쳐 있어서 상황이 조기에 개선될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고유가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원유 도입물량은 8억 8,540만 배럴로 06년에 비해 0.3%가 줄어들었는데 도입 단가가 배럴당 62.9달러에서 67.8달러로 상승하여 원유 수입액이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여기에 석유제품 119억 달러, LNG 131억 달러 등을 합친 에너지 총수입액이 907억달러에 달했다. 총 수입액 3,567억달러의 25%가 넘는다. 금년에는 에너지 수입액이 1,0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과거 1,2차 석유위기에 비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며 태평이다. 국제유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국내 휘발유 가격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므로 100달러의 상징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석유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는 등 우리 경제는 70년대 석유 위기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체질이 강해졌다. 하지만 고유가는 각종 공산품과 서비스 등 생필품 값을 끌어올리므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의 삶이 더욱 곤궁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새정부는 전면적인 고강도 고유가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공급 안정성을 기하기 위해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성과는 저조하다. 2006년 석유·가스 자주 개발률은 3.2%, 지난해에는 4% 수준이었다. 올해도 당초 목표인 10%에 못 미치는 5.7%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56%), 이탈리아(51%)는 물론 일본(10%)보다도 한참 떨어진다. 정부는 이에 따라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016년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적 자원확보가 가능한 28%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고유가와 함께 남미 각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자원 국유화를 강화하고 있어 자본과 의지가 있어도 새로운 광구를 확보하거나 기존 광구 지분참여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30년이 될지, 60년이 될지, 100년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화석연료가 고갈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비하여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연적·사회적·경제적 조건을 볼 때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풍력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지대처럼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강한 바람이 연중 일정하게 불어주는 쓸모없는 넓은 땅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이런 지역이 거의 없다. 태양광 발전 역시 낮은 이용률, 설치비 과다, 미관 저해, 비싼 땅값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전면적으로 보급할 수 없는 실정이다. 바이오메스, 폐기물, 지열, 태양열, 해양에너지 등 자연을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는 한결같이 보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정부는 2002년에 201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5%로 끌어올리겠다는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오고 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연평균 0.1%p도 증가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2%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공급 정책이 아쉽다.
수요정책, 즉 에너지소비절감 정책은 공급정책에 비해 단기간에 큰 효과를 낼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대기전력 줄이기”와 “적정 실내온도 유지”다.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연간 대기전력 소모량은 432kWh다. 대기전력 요금으로만 1년에 가구당 평균 10만원이 지출된다. 본인은 고유가가 본격화된 2005년에 국정감사 등을 통하여 대대적인 “플러그 뽑기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미국의 “1W령”처럼 강력한 대기전력 저감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겪이 되어 버렸다.
정부는 겨울철에는 18~20도, 여름철에는 26~28도의 실내온도를 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장 실내온도를 준수하는 가정은 10%도 안 되는 것 같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대체로 23~4도를 유지하고 있다. 겨울철 난방용 에너지, 여름철 냉방용 에너지 소비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겨울에는 반팔입고, 여름에는 옷을 껴입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과소비도 이런 과소비가 없다. 내복만 입어도 겨울철 난방온도를 3도 정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난방에너지의 20%를 줄일 수 있다. IMF 당시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에너지 절약 전국민운동”이 필요하다. 일본은 에너지 효율이 우리나라보다 3배나 높지만 2005년부터 환경성 주도로 겨울철에 옷을 두껍게 껴입는 이른바 ‘웜 비즈(Warm Biz)'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많이 배워야 한다.
에너지는 국가 생존의 문제다. 정부가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가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에 흡수된 이후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전문가가 제대로 육성되지 않고 있다. 산업자원부 내의 순환보직 시스템으로 인해 에너지정책을 긴 안목, 종합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전문 공무원이 양성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명박정부가 정부 조직을 재편하면서 산업자원부를 지식경제부로 바꾸려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에너지 자원 분야가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섣부른 구조개편 추진도 걱정이다. 에너지산업과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구조개편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공기업의 힘만으로는 에너지 자립을 기할 수 없다. 민간 에너지기업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여건만 조성해 주면 조선, 반도체, 휴대폰에 못지않게 우리의 석유산업도 세계 일류로 성장하리라고 믿는다. 새정부와 새국회에서 이러한 일을 해 주어야 한다. 최근 일부에서 시대흐름에 역행하여 석유산업에 새로운 규제를 가하거나 석유제품 가격을 통제하거나 유류세를 인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포퓰리즘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국익과 기업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