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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칼럼]가속화되는 석유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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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화되는 석유의 ‘정치화’와 국가 에너지 안보 전략의 필요성

글·김현진|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급부상하는 에너지 안보 논의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및 국제유가의 급등이 국내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의 둔화 요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에너지 위기 가능성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2004년版 석유 위기’, 3차 오일 쇼크의 도래’, ‘중국發 에너지 위기의 원년’ 등이 빈번히 거론되는 가운데 작금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향후 구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자원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국민생활과 경제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향후 취해야 할 에너지 안보 정책의 모색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다.

가까운 장래에 정말 에너지 위기는 도래할 것인가. 위기가 닥친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 될 것인가. 위기 발생의 직·간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막을 수 없는 위기라면 그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성급한 해답을 제시하기 이전에 에너지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향후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 정책의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볼 것이며, 에너지 안보를 어떤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 선제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위기 요인의 다원화

에너지 위기, 또는 에너지 안보를 논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은 최근 들어 에너지 위기 발생 요인이 수급 불균형이나 급작스런 공급 중단 사태 등으로 인한 기존의 물량 위기 차원을 넘어 가격위기, 나아가 국가안보상의 총체적 위기 차원으로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에너지 위기의 전형은 1970년대 에너지 소비국들의 경제를 마비시키다시피 했던 두 차례의 오일 쇼크이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물량 위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조치로 인해 1차 오일 쇼크가, 1979년 회교 혁명으로 인한 이란의 전면적인 석유수출중단으로 2차 오일 쇼크가 발생했다. 중동산유국들에 의한 돌발적인 석유공급삭감은 원유가격의 폭등을 야기하여 1차 오일 쇼크시에는 원유 가격이 4배로, 2차 오일 쇼크시에는 3배로 폭등하였다. 불과 5,6년 만에 10배에 달하게 된 원유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대불황으로 빠졌으며, 석유소비국과 석유생산국 사이에 막대한 부의 이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물량위기는 가격 급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위기로 이어지게 되지만, 최근에는 물량 위기를 동반하지 않는 가격 위기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물량 위기를 동반하지 않는 가격 위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들어 지속되고 있는 국제유가의 급등현상을 들 수 있다.

2004년 초 배럴당 28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 7월 중순 현재 30% 가량 상승한 35~36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2003년 말 대부분의 에너지 예측기관은 2004년 기준유가를 24~25달러로 예측했으며, 고가격(이라크 사태 악화 등)의 경우에도 30달러를 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전망의 가장 큰 이유로는 이라크 사태 등 여러 가지 불확실성과 불투명 요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국제석유시장의 수급밸런스가 완화경향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계절적 비수기로 들어서는 2004 2/4분기에는 대폭적인 공급초과 현상에 따른 유가 하락이 예측되었다.

하지만 2004 7월 중순 현재 국제유가는 35달러를 넘고 있으며,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국제유가가 하락하더라도 30달러 이하로의 대폭적인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너지 전문 기관들의 전망치가 큰 폭으로 벗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유가가 지속되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는 △이라크 정세의 악화, OPEC산유국의 고유가 정책 선회(달러화 약세 및 산유국 재정 수익의 확보 필요), △중국 등 개도국 수요 급증으로 인한 수급구조의 악화, △저금리로 인한 국제석유시장으로의 대대적인 투기 자금 유입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요인으로 인한 원유의 공급 부족 현상은 야기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원유 공급이 수요를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유가 급등은 이라크 사태 등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지속되는 가운데 저금리를 배경으로 한 투기 자금의 매수에 기인한다고 해석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 석유시장의 투기자금 유입으로 인한 고유가는 단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유가 강세의 상당 부분이 투기 자금의 매수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 세력이 매수 포지션을 청산할 경우 오히려 유가 급락의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옳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석유시장의 카지노化에 의해 투기요인에 의한 원유가격의 급등락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상품거래소(NYMEX),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의 원유 및 석유제품의 선물거래는 이미 상당 부분 머니 게임 양상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산유국들도 ‘원유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OPEC이 아니다. 원유 가격은 투기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유가의 급등락 가능성은 우리나라와 같이 구조적으로 에너지 위기에 취약한 석유 수입국에 있어서는 경제위기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석유위기를 사실상 경험한 바 없는 중국이라는 거대 석유소비국의 탄생은 위기 확대에 따른 경제적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다.

중국은 90년대 중반까지 석유수입국이 아니었으며, 석탄 의존형 경제구조하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석유위기를 경험한 바 없다. 따라서 세계의 대부분의 석유소비국들이 70년대 2차례의 오일 쇼크 및 90~91년의 걸프전 발생에 따른 위기를 경험하면서 전략 비축유 보유 등 위기관리 태세를 강화한데 반해 중국은 석유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다. 특히 과거 석유위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석유수입국의 패닉에 따른 방대한 가수요의 발생이 석유위기의 영향을 증폭시켰음을 상기해 보면 석유위기를 경험하지 않은 거대 석유소비국의 등장은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격 위기 상황이 구조화되는 상황 속에서 필수 에너지의 공급원 확보를 위한 개별 국가간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에너지 위기는 군사 안보까지 포함한 국가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미 시베리아 유전, 이란 아자데간 유전개발, 카스피해 이권확보 등을 둘러싸고 세계 주요국간의 자원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냉전시대의 군사 동맹이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미러 접근 등 국제 에너지 동맹의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국제석유시장을 신뢰하지 않는 중국은 독자적인 에너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가속화되는 석유의 ‘정치화’와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필요성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국가간의 확보 경쟁은 석유의 ‘정치화’와 맞물려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반적으로 석유를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전략상품’으로 보는 관점과 ‘시장상품’으로 보는 관점이다.

‘전략상품’으로 보는 관점은 19세기 후반 석유가 등장한 이래 지속되어 왔다. 20세기 초 윈스턴 처칠이 영국 해군함정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시키면서 석유는 전쟁수행의 필수 자원으로 부상하였다. 석유 확보를 위해 각국은 잇달아 국영 석유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석유를 둘러싼 국가간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70년대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 쇼크는 석유에 대한 각국의 필사적 욕구를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불과 5,6년 만에 유가가 10배 이상 폭등하면서 세계 경제는 대불황에 빠졌다. 이후 석유는 군사적인 전략 물자 뿐만 아니라 경제 안정을 위한 필수 재화로서 전략적 확보와 비축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편 1980년대 후반 이후 국제석유시장의 발달과 함께 석유를 ‘시장상품’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한다. 석유는 이제 유통성이 뛰어난 국제 시장상품이며, 저장 탱크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도 자유롭게 조달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석유 확보를 위한 개별 국가 차원의 노력보다 국제 석유시장의 안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요구되며, 과다한 석유 확보 경쟁은 오히려 석유시장을 불안정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에너지의 ‘정치화’와 ‘시장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의 현실 세계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9.11테러 이후 에너지의 세계는 ‘정치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이에 따라 국제 석유시장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에너지의 ‘정치화’와 이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 에너지 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인가.

첫째, 국가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의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 한 가계의 안정적인 재테크에도 분산투자가 강조되는 마당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 의존도가 50%에 이르고 석유의 중동의존도가 80%에 가깝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미국의 석유 중동의존도가 20%, 서유럽의 경우 16%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 지역에 우리 경제의 사활을 맡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의 중동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는 중동지역에 이어 제2의 석유 생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러시아를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는 향후 국제석유시장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미국의 에너지 동맹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세계의 에너지 지도는 이미 러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자원확보를 위한 경쟁 및 갈등관계를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포괄적 협력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 특히 위기에 대비한 에너지 안전보장 체제의 확립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경험한 석유 소비국들이 국제에너지기구(IEA)를 창설하여 위기대응능력을 강화했듯이 동북아시아판 IEA(가칭 NEAEA)의 창설을 통하여 석유 공급 및 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석유비축의 강화와 융통시스템의 구축, 석유 비축기지의 공동 경영 및 이용 등은 동북아 중심 국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다.

셋째, 에너지 안보 개념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위기는 발생 요인과 파급효과가 기존의 물량 위기를 넘어 가격 위기, 나아가 국가안보상의 총체적 위기차원으로 다원화, 복합화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국가 전략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합리적인 가격 확보,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리스크의 회피를 동시에 수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 외교, 위기관리, 통상, 산업, 과학기술 등의 정책연계를 강화하여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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