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의 영향과 대책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금년 초 한때 50달러까지 하락했던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현물가격이 지난 9월부터 가파르게 오르더니, 이제는 100달러를 눈앞에 두고 등락이 계속되고 있다. 유가가 상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급이 타이트하기 때문이지만, 최근에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은 겨울철 성수기를 앞두고 OPEC이 기대한 만큼 증산을 발표하지 않았고, 미국의 대 이란 제재우려, 터키의 이라크 쿠르드 공격 가능성 등 정세불안이 유가상승으로 더욱 부추킨 것이다.
또 하나는 달러약세, 국제적인 과잉 유동성으로 원유와 원자재 등에 투기자금이 몰리는 금융시장의 요인도 유가급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유가에는 정정불안과 투기요인들로 인해 수급상황보다 지나치게 올라간 측면도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 투기적 요인들이 유가를 부추킬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시장이 미래의 석유수급상황을 불안하게 본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지난 10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국제석유워크숍에서, 국제에너지기구인 IEA의 석유사업본부장인 로랜스 이글스는 중장기적으로 바이오 연료와 오일샌드 등 새로운 연료의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OPEC의 공급능력이 위축될 것이며 OPEC도 투자부진으로 여유생산능력이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제시했다. 이는 현재의 타이트한 공급여건이 해소되기는 쉽지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유가는 수급상황이외에도 심리적, 투기적 요인들로 등락의 격차가 매우 심하겠지만, 고유가 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가 100달러대로 인접하자 유가상승에 따른 경기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 경제의 규모도 커졌고, 산업구조도 아직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높지만, IT나, 반도체 및 서비스업의 비중도 과거보다 크게 높아져, 그만큼 유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작아졌다.
또한, 전체 에너지에서 석유소비의 비중도 80년초 61%에서 지금은 44%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런 결과로 금년 하반기에 배럴당 70달러 이상의 유가 상황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물가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되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 경제성장률도 유가가 저유가기조에서 고유가상황으로 전환하기 전인 2004년 이전에는 2∼3% 수준이었으나 2004년 이후에는 5%내외로 높아졌다. 높은 경제성장률 아래서도 최근 몇 년간 물가상승률은 2%를 조금 넘는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유가가 계속 상승할 경우에는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내년도 원유 평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치 5.0%보다 0.84%p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평균원유가가 130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2008년도 경제성장률은 약 3.0%로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1980년 제2차 석유위기와 지난 1988년의 외환위기를 제외한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이하로 하락한 사례가 없었다. 이는 향후 유가 향방에 따라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므로, 97%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항상 유가불안을 대비해 두어야 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유류세 인하의 목소리가 높다. 현행 유류세를 10% 인하하는 경우 2007년 수요전망을 기준으로 휘발유와 경유 및 LPG로부터의 세수감소는 총 1조5,459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또한 유류세에 30%인하 탄력세율을 적용하는 경우에는 세수손실이 보다 확대되어 1조 8,653억원 정도가 예상된다. 반면에 우리나라 승용차의 월평균 소비량인 165리터기준으로 보면 유류세 30%인하 탄력세율이 적용되면 월17,000원 정도 휘발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유류세 인하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하겠지만, 그동안 유가가 꾸준히 상승했음에도 금년 1∼7월까지 휘발유 소비는 5.2%의 높은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송용 석유의 가격 탄력성이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나라 예를 보더라도, 고유가대책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상을 계획하는 국가는 있으나, 단기 처방인 유류세인하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높
은 유류세로 인해 큰 부담을 받는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포괄적인 세율인하보다는 저소득층에 직접적인 보조를 통해 유가상승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더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지난 3년간 지속되어온 구조적인 유가상승하에서는 유류세 인하와 같은 단기 대비책으로 고유가 불안을 완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유가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에너지효율을 개선하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시키며 해외자원개발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대책들이다. 특히 에너지효율 개선과 신재생에너지의 보급확대를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을 크게 올려야 한다.
해외자원개발도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이러한 사업들은 막대한 초기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즉, 장기간에 걸쳐 사전에 투자해 놓아야만 그 결실을 보는 정책들이다. 이런 정책적 특성으로 인해, 정책우선 순위에서 멀어질 우려가 높다.
국제유가의 불안한 상승이 지속될 때는 그나마 국민적 공감을 얻어 정책추진에 동력을 얻을 수 있지만, 유가가 하락하거나,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면, 다른 시급한 정책으로 우선순위가 밀릴 수 가 있는 것이다. 고유가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유가가 오를 때는 물론, 유가가 낮을 때나 안정될 때도 이러한 장기 대책들을 얼마나 꾸준하게 지속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