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봄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겨울의 실종’으로 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만, 봄은‘생명’‘희망’등의 의미를 갖고 따스한 온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월 6일에 석유협회장에 취임하였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경칩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유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듯합니다. 필수 전략물자인 석유의 가격 및 수급 불안정이 지속되고, 현대사회의 혈액을 공급하는 석유산업이 생존과 지속성장을 향한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석유협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게 돼 큰 책임을 절감하는 바입니다.
밖에서 보는 정유산업과 안에서 체감하는 현실과는 현격한 괴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정유사들의 이윤에 대해 외부에선 따가운 시선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고유가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 또는 과점적 시장구조로 인한 태생적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유사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이윤창출이 일반 소비자들과 직결되어 있는 내수 정유 부문보다 석유제품 수출, 석유화학제품, 윤활유, 석유개발 등 부문에서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는 지난 해 정유5사의 영업이익 구조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정유부문 vs 비정유 부문의 매출액 비율은 81% vs 19%로 정유부문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영업이익은 31% vs 69%로 정유부문에 비해 비정유 부문이 월등히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유부문의 저조한 수익성은 타 산업과의 경영실적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2005년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율이 6.1%인 반면 정유사 정유부문 영업이 익율은 2.9%에 불과하며, 이것은 에너지공기업인 한전(5.3%)과 가스 공사(4.3%)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정유부문의 열악한 수익성은 한편으로는 정유산업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시사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유산업은 내수부진과 정제마진 감소로 경영여건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해 매출액은 고유가에 힘입어전년대비 14.5% 증가하였지만 영업이익은 정유부문 실적 악화에 기인하여 1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수익성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올해에는 경영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국제유가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과 인도 등의 정유산업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여 우리의 수출경쟁력을 위협하고 있으며, 내부로는 내수부진의 고착화와 정부의 인위적인 에너지믹스조정, 환경규제강화등 난제가산적해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정유사들이 비장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구찾기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은 도전과 혁신이 생존과 직결된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도화시설 투자 확대, 글로벌 전략 추진, 해외 유전개발 확대 등이 지속성장을 위한 블루오션의 모형으로 제시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지난 해 석유 제품 수출액 206억 달러 달성은 우리 정유산업이 수출 산업으로 탈바꿈한 주목할 만한 성과이며, 위기를 기회로 인식한 성장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외적인 여건 또한 결코 우호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란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올해 들어 국제유가가 속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유가에 매우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차에너지원중 석유의존도가 45%로서 주종에너지원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석유의 자주개발율은 3% 수준에 그쳐 소요량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상승은 원유도입액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를 가져오고, 물가상승으로 실질구매력을 악화시켜 소비침체를 초래하여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고유가시대’로 일컬어지는 작금의 고유가 상황은 일시적인 수급불균형이 아니라 구조적인 수급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화석에너지원에 대한 소비 증가가 205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적어도 고유가가 21세기 전반 내내 지속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자원확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 인도의 경제력 팽창에 따른 폭발적 수요 증가와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공격적 투자는 이러한 자원 전쟁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에너지는 이제 생존 차원에서 에너지 안보로 인식되어지고, 에너지 안보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의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세계 도처에서 에너지 자원을 닥치는 대로 확보하려는 전 방위적 에너지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간의 대립은‘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상치 않은 기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유산업은 안정적인 석유자원 공급을 통하여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한축을 담당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석유협회는 석유산업 및 해외 석유.가스개발 사업의 건전 발전을 위한 정책 대안 발굴과 한.산유국 협력사업, 전문인력 양성사업 등을 통하여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의 초석이 될 것임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대한석유협회 회장 김 생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