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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이야기] 휘발유 자동차에 경유를 넣으면 왜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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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이야기 3


휘발유 자동차에 경유를 넣으면 왜 안될까?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는 자동차 연료비를 아낄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도 가리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정이다. 만약 휘발유 자동차에 값이 싼 경유(디젤)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경유는 값만 싼 것이 아니다. 연비도 휘발유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연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휘발유 자동차라고 반드시 휘발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휘발유 엔진이 달려있는 택시와 승용차에 휘발유와는 성질이 전혀 다른 액화석유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탕수수를 발효시켜서 만든 에탄올을 넣은 ‘가소홀’을 넣은 휘발유도 사용한다. 심지어 석유를 변환시킨 메탄올을 넣어서 만든 ‘유사 휘발유’도 기능적인 면에서는 휘발유 자동차의 연료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인 세금을 내지 않았고,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안전을 소홀히 한 탓에 생기는 폭발과 화재 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뿐이다.


  경유 자동차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유 대신 압축천연가스(CNG)를 쓰도록 개조한 버스도 있다. 정유 공장에서 생산한 경유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험 단계에 있지만 식물성 원료에서 생산한 ‘바이오 디젤’을 쓰는 나라도 있다. 콩이나 옥수수, 유채 등에서 뽑아낸 바이오 디젤을 사용하면 고갈 위기에 있고, 국제 정세에 따라 가격이 널뛰는 석유의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식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때문에 바이오 디젤이 완전한 청정 연료라고 볼 수는 없다. 북한처럼 석유가 귀한 나라에서는 석탄이나 목탄에서 만든 가스를 트럭의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내연기관의 엔진은 연료특성에 따라 정밀하게 조정돼 있다.


  결국 내연 기관에 사용하는 연료는 상당히 다양한 셈이다. 그렇다면 휘발유용으로 제작된 자동차에 값도 싸고 연비도 좋은 경유를 사용해도 될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휘발유가 경유보다 쉽게 증발하기 때문에 냄새가 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겉보기에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도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휘발유 자동차에 경유를 넣거나, 경유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으면 자동차의 운행 상태가 크게 나빠진다. 자칫하면 자동차 엔진을 분해해서 수리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휘발유와 경유 엔진의 내부 구조가 크게 다르고, 연료의 특성에 따라 정밀하게 조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휘발유 엔진은 연료를 분사시켜서 폭발시키는 방법이 경유 엔진과 크게 다르다. 휘발유 엔진에서는 적당한 비율의 공기와 혼합시킨 휘발유를 실린더 속으로 분사시켜 압축시킨 후에 점화 플러그에서 만들어지는 전기 방전을 이용해서 강제로 연료 혼합물을 점화시킨다. 연료 혼합물이 연소되면서 방출되는 열이 실린더 내부의 기체를 팽창시켜서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낸다. 그런 휘발유 엔진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사용하는 연료의 점화 특성과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열의 양에 따라 실린더로 넣어주는 연료와 공기의 혼합 비율, 압축 비율, 점화 시각 등을 정교하게 조정해주어야 한다. 그런 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엔진에서 노킹이나 심한 매연이 발생하고, 엔진의 상태가 고르지 않게 되어 승차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휘발유 품질 규격’을 정해서 정유 공장에서 생산하는 휘발유의 점화 특성과 발열량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보통’ 휘발유와 ‘고급’ 휘발유를 구분하는 ‘옥탄값’도 휘발유의 점화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에서도 품질 규격에 따라 생산된 휘발유에 맞도록 자동차의 엔진을 조절한다. 휘발유 대신 LNG를 사용하려면 엔진의 공기 혼합 비율과 점화 시각 등을 바꿔주어야 한다. 휘발유와 LNG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엔진의 그런 특성을 조절한다.


  그런데 경유는 휘발유보다 연소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양의 산소를 소비하고, 발열량도 15퍼센트 정도 더 많다. 따라서 휘발유 자동차의 엔진 특성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경유를 넣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실린더 속으로 분사된 연료 혼합물에 들어있는 산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넣어준 경유가 완전하게 연소되지 못한다. 결국 불완전 연소 때문에 심한 매연이 발생하게 되고, 엔진의 상태도 나빠지게 된다. 특히 검은 매연은 휘발유 자동차에 설치되어 있는 오염 제거 장치인 ‘삼중촉매전환장치’를 못쓰게 만들어버린다. 설사 경유가 완전히 연소된다고 하더라도 경유에서 발생하는 열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다. 휘발유 엔진의 특성을 경유에 맞도록 조절해주지 않은 상태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로 계속 운행을 하면 엔진이 불완전 연소된 매연이나 높은 온도 때문에 심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


경유엔진에는 점화플러그가 없는 대신 연료와 공기를 심하게 압축한다


  경유 엔진에는 휘발유 엔진에서 볼 수 있는 점화 플러그가 없다. 그 대신 경유와 공기의 혼합물을 훨씬 더 심하게 압축을 한다. 경유 엔진에서의 압축비율은 보통 25:1 이상으로 휘발유 엔진의 압축비율보다 훨씬 높다. 기체를 빠르게 압축시키면 온도가 올라간다. 가스 라이터의 연료 주입구에서 가스를 분출시키면 온도가 떨어져서 공기 중의 수분이 하얗게 응축되는 것과 반대의 현상이다. 경유 엔진에서는 심한 압축을 통해 연료 혼합물의 온도를 경유의 자연 발화 온도보다 높은 섭씨 700도에서 900도까지 가열시킨다.


  경유는 휘발유보다 발열량이 많기 때문에 큰 힘이 필요한 대형 버스, 트럭, 선박 등에서 사용하는 엔진에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휘발유보다 더 큰 탄화수소 분자들로 구성된 경유를 완전하게 연소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검은 매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폭발이 일어날 때의 온도가 휘발유 엔진보다 높기 때문에 질소 산화물과 같은 독성 오염 물질이 많이 발생하는 단점도 있다. 같은 양의 경유를 연소시키면 온실 기체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가 휘발유보다 훨씬 더 많이 방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점화된 연료를 완전하게 연소시켜 연비를 높여주는 터보 연료 분사 장치와 각종 전자식 조절 장치, 그리고 매연을 걸러주거나 다시 연소시켜주는 장치들이 개발되어 도움이 되고 있다. 승차감을 향상시켜주는 장치들도 설치되어 있다. 요즘에는 휘발유 엔진보다 연비가 40퍼센트 이상 높은 경유 엔진이 생산되어 대형 자동차나 선박뿐만 아니라 승용차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경유 자동차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보조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연비가 크게 떨어지고, 매연을 비롯한 오염 물질의 배출이 크게 늘어나고, 엔진의 상태가 나빠지게 된다. 경유 엔진을 사용하는 대형 자동차들이 매연을 많이 내뿜고, 경유 엔진을 장착한 차량의 관리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경유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우선 휘발유의 발화 온도가 경유보다 낮기 때문에 연료 혼합물이 충분히 압축되기 전에 폭발이 일어나 버린다. 피스톤이 올라가는 중간에 폭발이 일어나면 엔진의 작동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휘발유의 발열량이 경유보다 적기 때문에 엔진의 출력은 더욱 줄어들게 된다. 결국 경유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경우에도 엔진이 충분한 힘을 내지 못하게 되고, 자칫하면 아주 못쓰게 망가질 수도 있다. 결국 자동차에는 처음 설계한 연료를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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