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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업 팔 비틀어 지역구 챙기는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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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 요즘 재계에서는 이런 탄식이 나온다. 일부 국회의원이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지역구 내 기업에 막대한 세금을 추가로 걷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면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거들고 나섰다. 본격적인 자치분권시대를 준비하려면 지방세 발굴을 통한 세수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은 지역자원시설세다. 지역자원시설세는 지하자원이나 오물처리시설 등 공공시설로 이익을 얻는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이다. 이 세금은 자원보호나 해당 지역 주민을 위해 쓰이므로 지방자치단체 수입으로 잡는다.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와 지역 표심을 얻으려는 국회의원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금 부담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 되레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관련 부처도 이중과세 논란이 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세워진 기업과 시설에 세금을 더 걷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의원·지자체 석유·시멘트 지역세금 내라

 

지역자원시설세 확대를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발의된 것만 20여 건이 넘는다. 대개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대표적인 게 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과 김태흠·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으로, 석유·시멘트 등을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이들이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석유는 생산량 또는 반출량 11, 천연가스는 생산량 11원씩 물어야 한다. 주 의원 측은 석유화학산업단지의 사고가 현재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인 발전소보다 빈번하고 피해도 훨씬 크다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은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석유화학산업단지에도 지역자원시설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멘트도 생산·운송 때 발생하는 분진 등으로 지역 주민이 피해가 크다며 생산량 1t1000(401포 기준 40)의 지역자원시설세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율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2013년 시멘트 공장 인근 지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주민 중 진폐증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판정받은 주민 64명에게 총 623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근거로 산정했다.

 

이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당장 정유업계는 연간 1800억원가량의 세금을 추가로 물어야 한다.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의 2017년 생산량은 180411원의 지역자원시설세를 매긴다면 단순 계산해도 1804억원을 물어야 한다. 정유 4사의 최근 4년간 정유부문 연평균 영업이익(21100억원)8.5%에 이르는 수치다. 시멘트는 2017년 시멘트 7(쌍용·삼표·한일·성신·한라·현대·아세아시멘트)의 생산량 738t 기준으로 약 528억원에 이른다. 이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대개 정유·시멘트 기업이 밀집한 보령·서천, 서산·태안, 여수, 동해·삼척 등지가 지역구다. 한국시멘트협회의 한 관계자는 시멘트 업계의 지난 10년 간 연평균 순이익이 400억원 선인데, 매년 500억원대의 세금을 더 내라는 건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세수를 늘릴 수 있는 해당 지역 지자체는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 국회는 조속히 지방세법 개정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시멘트 공장이 몰려 있는 제천·단양군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지난 50~60년간 환경 파괴와 분진 등으로 주민 건강은 물론 해당 지역이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장했다. 단양군 의회는 또 시멘트 401포에 40원을 과세하는 지역자원시설세는 판매 가격에 1도 되지 않아 (시멘트 업계가) 부담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환경 민원과 주민 건강 피해 등 각종 외부불경제를 유발하고 있는 시멘트 산업에 대해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과세 형평성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계는 물론 정부 부처도 이중과세 논란이 일 수 있다며 석유·시멘트의 지역자원시설세 부과에 신중한 입장이다. 시멘트는 원료인 석회석에 이미 지역자원시설세가 부과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석회석에 이미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연속된 가공공정을 통해 생산한 최종 상품인 시멘트는 석회석 비중이 90%에 이른다공산품인 시멘트까지 과세하려는 것은 이중과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료에 한 번, 완제품에 또 한 번 과세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철규 의원 측은 석회석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는 천연자원 채광의 대가로 모든 채광 주체에게 부과하는 세금이고, 시멘트는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불경제의 대가로 시멘트 제조사에 부과하는 세금이라며 과세 대상도 다르고, 세금 부과의 취지도 달라 유사한 조세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시멘트협회의 의뢰를 받은 법무법인 태평양은 과세의 취지 및 목적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과세 대상도 동일한 이중과세라고 해석했다.

 

해당 기업과 정부 부처는 이중과세반박

 

석유도 마찬가지다. 휘발유 등 석유 제품에 포함된 유류세에는 이미 환경 개선을 위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중과세금지 등 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 입장을 낸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도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중과세 문제와 지역 간 불형평성 문제, 부처간 이견이 있는 만큼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세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석유에 대한 지역자원시설세는 전기·가스요금, 유류비 등 물가상승 요인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위원회도도 조세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유소협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안전 명목으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면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기업에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면 단기적으로는 기업 부담이 늘지만 결국엔 이 부담이 소비자들에 전가돼 이중삼중의 과세부담이 국민에게 지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석유·시멘트 등으로 지역자원시설세를 확대하는 것은 지역 안전을 개선한다는 근본적인 명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자원시설세는 특정 자원·부동산 등을 과세 대상으로 하는 만큼 석유 제품이나 시멘트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시멘트 공장이나 천연가스 기지 등이 환경오염이나 안전사고 등을 유발한다는 근거도 없다. 국회가 세금 산정 기준으로 삼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2013년 결정은 대법원에서 시멘트 업계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최종 판결이 난 사안이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산자부는 천연가스 기지는 환경친화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안전 관리 비용도 한국가스공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산업계는 각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의 경우 이미 감당해야 할 세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내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연간 230억원)과 질소산화물(NOx) 배출 부과금(연간 650억원)도 내야 한다. 2020년 시행될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300억원)도 시멘트사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특히 NOx는 선택적촉매환원설비(SNCR)을 설치해도 기술적으로는 더는 감축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시멘트 산업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니다.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2019년 시멘트 출하량은 올해보다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7대 시멘트사만 해도 강원 동해·삼척·강릉·영월 등지에서 25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1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을 고사 위기로 내모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국회는 지역자원시설세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 산자부가 법 개정 자체에 반대하면서 논의가 다소 미뤄지긴 했지만, 2019년 상반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국회 법안소위는 내년 3월 행안부와 산자부의 절충안을 심사한 후 법 개정안을 4월 열리는 전체회의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지역자원시설세 확대를 당론으로 정한만큼 지방세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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