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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차 산업혁명이 촉발시킨 석유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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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촉발시킨 석유의 위기

 

SK증권 리서치센터

손지우 연구위원

 

2014년 이후 전 세계 석유관련산업에서 최대 이슈는 단연 저유가 시대의 도래일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 동안 고유가에 더 익숙했었다. 뉴밀레니엄 진입 이후로는 BRICs로 대변되는 대규모 신흥국가의 급격한 성장기에 맞물려 유가는 고공행진만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배럴 당 100달러라는 수치는 150년 석유 역사상 최대치에 근접할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이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일각에서는 200달러도 갈 수 있다는 장밋빛 예상을 서슴없이 내놓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때가 변곡점이었다. 희망찬 기대가 부풀어 있던 2014년 하반기부터 모두의 예상과 달리 유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한 때 30달러까지 깨지는 경악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3년 간 40달러 내외에서 횡보하는 저유가 구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는 재차 유가의 우상향을 무책임하게 예측하곤 했지만, 그런 전망에 무색하게 유가는 도통 반등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어느덧 저유가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면은 꽤나 긴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장기 저유가 시대가 불가피하다. 기본적인 문제는 200달러까지 바라봤던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감에 있다. 물론 높은 기대감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전망에 많은 정부/기업들이 의존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전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는 것이 문제로 작용했다. 심지어는 심해유전으로 대변되는 원가가 높은 자원까지 무분별하게 개발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그 투자가 마무리되면서 막대한 석유 물량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차후에도 2010년을 전후로 시작된 많은 프로젝트에서 물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석유업계에 닥친 현실이다.

 

 

이런 저유가 국면은 국내 정유 업계를 울고 웃게 만들었다. 일단 유가가 급락한 국면에서는 재고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대규모 적자가 이어졌었다. 이 때문에 재무상황이 악화되고 또한 중국/중동의 신규설비 대비 경쟁력 약화마저 문제로 제기되면서 마치 산업이 끝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2016년을 전후로 이러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유가가 낮은 수준에서 이어지다 보니 재고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대규모 발생했고, 또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투입되는 제반비용이 하락하면서 업체들이 이익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두운 예상이 지속되면서 신규설비가 진입하지 않아 공급부족이 발생하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2016년에서 2017년 초까지는 사상최대의 이익을 쏟아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산업의 존폐여부를 걱정하던 위기의식은 이와 함께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그러나 정말 위기가 소멸된 것일까? 원래 정유업이라는 것이 씨클리컬(cyclical) 산업인 만큼 좋았다 안 좋았다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만 있으면 될까? 아니다. 석유와 관련된 산업환경 자체에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5~10년 단위의 단발적인 이슈가 아니라, 1860년 이후 록펠러(J. D. Rockefeller)가 일궈낸 석유의 시대가 150년 만에 저물어가는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발단은 바로 4차 산업혁명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연결(connectivity)이다. 그리고 이 것이 가장 빠르고 깊게 침투하는 산업분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동차다. 스마트카(smart car)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몇 년 전부터 감지가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2014년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기조연설을 아우디(audi)의 회장 루퍼트 슈타들러가 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가전쇼에서 자동차 업계의 거목이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는 자동차의 1세대가 달리는 것이었고 2세대가 길들이는 것이었으며 3세대가 효율/안정/세련미를 추구했었다면, 앞으로 열리게 될 4세대에서는 연결(connectivity)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IT와의 융합을 통해 자율주행차량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었다. 슈타들러 뿐만이 아니었다. 2015년에는 벤츠의 회장 디터 제체, 2016년은 폭스바겐의 CEO 헤르베르트 디스, 그리고 올 해 2017년은 르노-니산의 회장 카를로스 곤이 기조연설을 진행하며 역시 자율주행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이는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자동차의 변화는 경제역사에서 통상 killer application의 역할을 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차가 이끌었다. 증기기관차는 화물운송의 시간과 공간을 획기적으로 축약하면서 생산성의 급증을 야기했고, 이는 곧 부가가치의 막대한 창출을 유도하면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2차 산업혁명은 내연기관차가 이끌었다. 내연기관차는 여객운송의 시간과 공간을 획기적으로 감축했다. 역시 생산성의 급증이 수반되며 산업혁명이 발생했다. 자동차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획기적 감축이라는 측면에서 늘 산업혁명을 야기해왔다. 그런데 또 한 번 자동차가 큰 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어찌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석유산업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율주행차,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서 IT기계를 대규모로 장착하는 스마트카는 기존 내연기관차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내연기관차는 지극히 적은 배터리 용량, 차량 내 추가여유공간부족, 낮은 연료효율,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계식 아날로그(analogue) 시스템이기에 IT기계의 진입이 어렵다. 그렇지만 전기차는 다르다. 배터리 용량, 차량 내 여유공간, 연료효율 등에서 내연기관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위에 있고, 전자식 디지털(digital) 시스템이기에 IT 소프트웨어의 제어도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최근 가전쇼와 모터쇼에서 스마트카가 발표될 때 전기차 형태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전기차 자체의 성능도 이제 기존 내연기관차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이미 등장한 2세대 전기차 LREV(Long Range Electronic Vehicle)가 핵심이다. 1세대 전기차의 가장 큰 문제는 성능이나 가격보다는 짧은 항속거리였다. 한 번 충전하면 약 100km 밖에 가지 못했기에 약 500km인 내연기관차 대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출시된 첫 2세대 전기차 쉐보레(Chevrolet) BOLT 1번 충전에 400km 가까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차량가격도 한화로 3,500만원 수준이 유지되는 선에서 말이다. 통상적으로 각국에서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이보다 더 저렴하게도 구매할 수 있는데, 차량의 크기가 국내 쌍용차의 티볼리와 유사한 CUV임을 감안한다면 꽤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미 BOLT는 지난 7월 미국 전기차 판매에서 랭킹 1위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한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2세대 전기차를 속속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스마트카-전기차의 성장은 정유업계에게는 구조적인 위기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현재 전 세계 석유의 소비에서 수송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판매증대는 필연적으로 석유소비의 급감을 야기한다. 사실 석유에게 있어서 수송은 마지막 보루였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로 전 세계는 전기/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가스로 분산시켜왔다. 그렇기에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이후 지속 감소해왔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대체가 안 되던 것이 자동차였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스마트카의 등장에 의해 빼앗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석유가 20세기 석탄을 대체했던 것처럼, 이제는 가스가 21세기에서 석유를 대체하는 그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 바 탈석유시대의 현실화다.

이러한 시기에 맞춰 전 세계적인 가스생산도 대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단 우리가 매우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셰일가스가 성공적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셰일가스 가격이 $3/mmbtu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석유의 단위로 환산하면 배럴 당 20달러에도 못 미치니 가격의 이점도 상당히 높다. 고가의 석유를 가스로 대체해야 할 경제적 당위성도 충분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미국의 변화에 자극을 받아 중국도 셰일가스를 뽑아내고 있다. 중국의 셰일가스 매장량은 미국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많기에 장기적으로 이들은 가스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대폭 늘릴 계획을 잡고 있다. 또한 세계 가스매장량 4위 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도 대규모로 유입을 하고 있다. 가스시대의 도래는 이미 곳곳에서 인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정유업체는 이런 탈석유시대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이미 역사적인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내려준 바 있다. 그는 창조적 파괴라는 단 한 마디로서 기업의 흥망성쇠, 혹은 경기순환론에 대한 핵심을 짚어냈다. 즉 과감하게 현대의 기술을 취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의 이론을 철저하게 받아들인 결과 바스프(화학), 티센크루프(철강), 지멘스, 보쉬(엔지니어링) 등등의 대단한 100년 기업들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거론된 어떤 기업들도 초기의 사업행태를 그대로 유지한 경우는 없다. 모두 철저하게 기존 주력산업에 대한 파괴와 신규 사업의 창출로서 미래를 대비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 정유업계에 필요한 것은 증설 내지 동종업계의 M&A가 아니라, 오히려 탈석유시대를 이끄는 스마트카와 가스 같은 새로운 기술분야에 대한 진출이 될 수도 있다.

영미권의 석유패권을 1970년대 중동으로 빼앗아 옴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우디의 석유장관 야마니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석기시대가 끝난 이유는 돌이 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더 나은 발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이야 말로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은 석유의 고갈 때문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발전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석유업계도 이런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지난 2년 간의 호황이 오히려 우리의 옳았던 고민을 더욱 느슨하게 만들었던 악재였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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