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관련 세금인하해야
글·홍창의|관동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시장상인들이 “IMF 때보다도 더 심각할 정도로 시장경기가 바닥이다”라고 울먹이고 있을 때, 정부와 여당 고위관계자들은 “경기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아직도 “앞으로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다”라고 낙관하고 있는 정부는 아마도 일련의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경기부양책의 한 방법으로 재정경제부는 24개 품목의 특별 소비세 인하 계획을 내놓고 장차 골프장도 대량 허가할 모양이다. 정부는 마치 부자가 돈을 쓰지 않아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세제혜택의 초점을 서민보다는 가진 자에게 맞추어 놓고 경기호전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폐지되는 특소세 품목인 골프용품, 프로젝션 TV, 에어컨과 고급 가구도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가 효과를 기대한 것만큼, 부자들이 그렇게 많이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부자들 대부분은 이 정도 품목들을 이미 다 갖추어 놓고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특소세 세율인하 효과는 중산층 호주머니에서나 볼 공산이 크다.
서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세금인하는 휘발유에 붙는 특소세(교통세)일 것이다. 우리 나라 휘발유세의 위력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주유소에서 소비자 가격이 1리터 당 1,400원이면 900원이 세금, 50원 정도가 유통마진이고 450원이 원래 가격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유독 휘발유에만 특소세인 교통세가 무려 공장도 가격의 160% 넘게 포함되어 있고 이외에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의 잡다한 세금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지금의 휘발유 세율 체제는 국제유가가 1배럴 당 2달러 수준일 시절에나 통하는 개념이다. 과거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값싸다고 낭비할까 두려워 높은 세금으로 과소비 방지의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30년 전에는 부자들만이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녔을 테니까, 당시엔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 세금체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수가 크게 늘었고 국제유가도 45달러에서 50달러를 육박한다. 서민들은 살인적인 차량 유류비에 과소비는 커녕 꼭 필요한 경우에도 차량이동을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세율을 내린다고 낭비할 서민은 없을 것이다.
서민들이 세금으로 찌들어 가는 동안, 정부는 휘발유 세금의 대박을 맛보고 있다. 과거 국제유가 2달러 시절과 비교해 보면, 원유가 인상에 따른 20배 이상의 세금 수입이 증가했고 자동차 등록 대수 증가에 따른 60배 이상의 세금수입이 증가했으니, 주행거리 증가까지 고려하지 않더라도 정부는 1,200배 이상의 휘발유 세수입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가 달러 환율까지 오르면 정부는 세 수입 증가의 즐거움에 표정관리를 할 지경에 이른다.
현 정부는 지금이 ‘고유가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1973년 당시의 정부도 1차 오일 쇼크로 배럴 당 2.5달러 수준이던 것이 4.7배인 11.7달러로 치솟았을 때에 ‘고유가’라고 했다. 아랍권의 산유국들은 지금의 국제유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유가는 계속 오를 것이다. 사실상, 국제 유가가 많이 올랐다고 해도 산유국으로 봐서는 강대국에 강탈당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석유의 경우 1배럴은 약 160리터(=158.9ℓ)로, 1배럴에 44달러라고 해봤자, 리터 당 330원, 생수보다 더 싸게 파는 셈이다. 자원이 고갈되어 갈수록 산유국들은 석유의 효용가치만큼 가격인상을 계속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의 내정불안과 사우디에 대한 테러 위험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들이 국제유가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OPEC의 생산능력에 대한 우려와 국제 투기세력까지 가세한다면, 국제유가는 예측불허이다.
과연 지금이 ‘고유가’ 시대이면, 앞으로 ‘저유가’ 시대가 올 것인가? 미래를 옳게 바라보면 진정한 ‘고유가’는 아직도 멀었고 그 때가서 지금을 ‘저유가’ 시대로 부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선다.
유가가 급등하면,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업들의 생산비용이 올라가게 되고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게 마련이다. 특히, 항공, 철도, 선박, 화물차를 이용하는 운송비의 증가는 전체적인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석유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일정 수준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실물경제 전반에 비용상승을 가져와 투자위축, 성장률 둔화 등으로 인해 경기의 장기적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경기 부양책은 소비자 가격 기준의 유가안정에서 찾아야 한다.
국제유가가 고가이기 때문에 휘발유 소비가격이 높다고 호도하면, 순진한 국민은 원유가가 떨어지면, 휘발유 값도 내려가겠지 하는 허망한 기대를 갖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저유가’ 시대는 다시 찾아 올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느끼는 휘발유 값의 부담감은 원유가격 때문이 아니라 IMF 때 대폭 인상된 지나치게 높은 세율 때문이다. 원유가격이 40원 오르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140원 인상되는 세율구조 속에서, 소비자의 부담은 엄청나게 가중되고 정부는 손해는 커녕, 100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 정부의 논리라면, 특소세는 부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사치 품목에 관한 세금이다. 가구당 차량 보유대수가 1대를 넘어선 지금, 휘발유는 더 이상 사치성 소비재가 아니다. 휘발유는 서민들의 생활 필수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서민들이 차량에 무리가 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가짜 휘발유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휘발유 세금이 너무 높은 데서 기인한다. 폐지되어야 할 특소세 0순위가 휘발유 특별소비세인데, 난데없이 벽걸이 TV 운운하는가? 휘발유에도 특소세가 있는 지 모르시는 건 아닌지?
이제는 휘발유 세율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국민과 산업체의 차량연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세제의 초점이 옮겨져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국민소득 증대와 후생증진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유류 세금체계가 유류 가격 구조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아래서, 세금이 변동되면 차량의 구매패턴까지 달라진다. LPG 가격이 낮으면 LPG 차량이 늘어나고 경유가격이 낮으면 경유차량이 늘어난다. 특정 차종의 급증은 자칫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정부는 휘발유, 경유 그리고 LPG 간 상대 가격 비를 2000년 100:47:26에서 2006년까지 100:75:60 으로 세법을 조정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서민이 기대했던 휘발유세의 인하는 무시된 채, 휘발유 가격을 그대로 두고 경유와 LPG의 세금만을 인상하여 가격비율을 인위적으로 맞추려 하고 있다. 이러한 세금 왜곡이 계속된다면, 국민들의 전체 유류세금 부담은 천정부지로 높아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제 유가는 계속 변동하게 마련이다. 유가의 미세한 변동에까지 전 국민이 민감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1년간 고정적이라면 국민의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국제 유가가 급변하고 환율이 널 뛰어도 휘발유 세율이 유동적으로 움직여만 주면, 서민이 지불하는 휘발유 비용은 일정하게 된다. 정부가 이번에 휘발유 특소세를 폐지 내지는 인하하여 잘만 활용하면, 서민에게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약이 되고 시장경기에는 획기적인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