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을 알아야 기업이 산다
서인석 보좌관
1. 국회 리스크란 무엇인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법안들
네이버(NAVER)나 다음(DAUM)과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리스크’(Risk)라는 단어를 입력해보면 대외적 리스크, 경제 리스크, 대북 리스크라는 단어와 함께 ‘국회 리스크’ 혹은 ‘정치 리스크’라는 표현을 접할 수 있다. 경제나 국가안보와 관련한 리스크는 그 자체로 쉽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한데 리스크가 ‘정치’분야로까지 확대·적용되는 건 쉽사리 수긍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국회 리스크라는 단어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대략 2011년 말 경이다. 여기서 국회 리스크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국회, 정확하게는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국회 또는 정치 리스크가 정부차원에만 국한되거나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기업 입장에서 국회 리스크는 당장 ‘현존하는 위협’이자 사업이나 생업에 직접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참 잘나가던 벤처기업이 하루아침에 불법이 돼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1월 초 한참 잘나가던 벤처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인은 2015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개정안」에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온라인 자동차경매회사라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영업장(3300㎡ 이상 주차장, 200㎡ 이상 경매실)과 사무실 등 각종 공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중고차 모바일 경매 스타트업인 ‘헤이딜러’는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규정을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기업 차원에서의 국회 리스크
2015년 1월에 창업한 헤이딜러는, 중고차를 팔려는 개인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차량 사진 5장만 올리면 500여 명의 딜러들이 견적을 매기고, 그 가운데 개인이 원하는 딜러를 선택해 판매하는 역경매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다. 특히 헤이딜러는 판매과정을 단순화한 것은 물론 안심하고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중고차 판매를 희망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최적의 방식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헤이딜러의 돌풍은 국회를 통과한 규제 조치로 위기에 직면, 결국 2016년 1월 5일 폐업(廢業)하고 말았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거야 말로 ‘국회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난데없이 등장한 입법 때문에 멀쩡하게 잘 하고 있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모바일을 통해 온라인으로만 사업하는 회사에게 3300㎡ 이상 주차장과 200㎡ 이상 경매실은 절대 필요한 조건이 아니다. 이는 오프라인 방식으로 사업하는 기존 중고자동차 매매상들에게나 필요한 것들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경위는 이렇다. 헤이딜러의 등장으로 시장을 잠식당한 오프라인 방식의 중고자동차 매매상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과 함께 상대를 고사(枯死)시키기 위해 ‘입법을 활용’한 것이다.
반면 헤이딜러는 이 같은 경쟁상대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거나 혹은 알았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대응방법을 강구하지 못해 하루아침에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전통적 방식의 중고자동차 매매상들은 ‘입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입법을 통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함으로써 기득권을 지키고 나아가 경쟁 상대를 문 닫게 만드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국회 리스크
기업이 부담을 갖는 ‘국회 리스크’는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등장한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기업 법인세 증세,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또는 보완 등 대기업을 압박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었다.
당시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은 “재벌은 항상 탐욕에 차 있는 사람들이고 절제할 수 없다”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던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을 주장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를 보완해 재벌의 사익(私益) 남용을 막겠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한발 더 나아가 재벌 개혁을 주장하며 경제민주화를 총선 전략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기업 임원들은 인맥을 통해 입법 정보는 물론 의원들의 성향, 국회 발언 등을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국회와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기업은 보좌진을 영입해 국회 동향을 파악하는 등 국회 움직임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신문은 “대기업 임원들, 여의도서 숙식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대하는 기업 동향을 보도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도 정치권력처럼 민주화시키자는 것이다. 특히 경영권 세습을 막고 교체도 가능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들이 모두 3대 승계를 앞두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경영권 세습을 막자는 경제민주화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게 당사자인 대기업들에게는 여간 불편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국회 리스크로 인해 경영권을 세습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위험은 김종인 비대위원이 박근혜후보 대선 캠프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아 경제관련 대선 공약을 주도하면서 한층 더 커졌다. 하지만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승리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정권 출범 후 경제정책 기조를 경기부양에 두며 보수주의로 회귀하자, ‘경제민주화를 필두로 한 국회 리스크’는 잦아들었다.
대신 의원들의 개별적인 ‘입법’ 활동을 통해 특정 산업계 혹은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한 ‘규제안’들이 발의되면서 경제 주체인 기업과 개인 모두 경제민주화와는 또 다른 차원, 즉 개별 의원 중심의 ‘입법에 의한 국회 리스크’에 직면했다.
2.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변수, 입법
법안 통과에 따라 기업 주가도 변동
흔히 기업경영과 관련해서는 빠른 의사결정이나 매니지먼트가 강조된다. 때로는 CEO의 리더십이나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시장상황에 맞는 유연한 단기전략을 추진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추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자료도 있다. 또 언제 어떻게 발생하지 모르는 위험에 대해서도 요인별로 사전에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적도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홍보나 마케팅 혹은 매출과 시장상황 등에 방점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경영 나아가 시장에서의 생존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쓴이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입법’이라고 답하겠다. 앞서 헤이딜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입법은 기업 ‘존망’(存亡)을 좌우한다. 사업전략이나 리스크 대비 혹은 매니지먼트나 리더십, 매출과 마케팅, 성공적인 경영사례 등등은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한 요소일 수는 있으나 하루아침에 기업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다시 말해 사업전략이나 매니지먼트가 기업 존망을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한다면, 입법은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그렇다고 입법이 단순히 기업 문을 닫게 만드는 ‘유일한 힘’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입법은 당장 개별 기업 주가(株價)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입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시장을 뺐을 수도 있고, 반대로 기존 시장에 장벽을 높게 쌓아 경쟁자들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자신만 혼자 살아나는 것도 가능하다. 때에 따라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한두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2009년의 일이다. 언제고 그랬지만, 당시는 유독 국회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제18대 국회 최대 쟁점인 미디어 관련 법안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신문법」과 「방송법」 그리고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일명 IPTV법) 등 이른바 ‘미디어 관련 3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통과 여부에 따라 미디어시장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인화성’이 큰 사안이라 본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관심을 표명하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평소 자주 왕래하지 않던 증권사에 근무하는 후배조차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날이면, 글쓴이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 오늘 미디어 3법 통과 되나요?”라며 묻곤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안이 통과되면 콘텐츠 시장이 커지면서 방송장비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매출 증대가 수익 창출로 연결돼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당시 아날로그 TV로 디지털방송을 수신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셋톱박스’를 제작하는 회사의 주가가 영향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증권사 직원들이나 애널리스트들의 눈과 귀가 늘 여의도 국회를 향해 있는 것도, 이처럼 법률안 통과 여부가 주가 변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디어 3법은 2009년 7월 22일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만의 단독 표결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로운 법 시행으로 매출 증대
새로운 법률안 통과나 시행으로 뜻하지 않게 수익이 늘거나 매출이 증대하는 사례도 있다. 2016년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한국사회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공짜로 얻어먹지 말고 청탁도 하지 말라는 법의 취지대로 과도한 접대문화와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인 것을 그 첫 번째 공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고급음식점, 화훼업계, 한우농가, 공연계 등은 법 시행과 함께 큰 타격을 입었다. 일례로 강남의 고급 한식당이나 일식당이 폐업했다는 소식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뜻하지 않게 호텔 도시락 판매가 증가했다.
그러나 음이 있으면 양도 있기 마련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한끼 식사 값이 3만원으로 제한되자 호텔 도시락 판매가 늘어 어부지리로 ‘대박’을 친 것이다. 또한 일반음식점 매출은 줄어든데 반해, 구내식당 매출은 급격히 늘었다는 보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른바 ‘금연법’ 시행은 작은 술집들이 매상을 올리는 현상을 낳았다.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 2012년 12월부터 150㎡(약45평) 이상 규모의 술집을 포함한 일반음식점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다. 관련 규정은 더 강화돼 2014년 1월부터는 100㎡(약30평) 이상 규모의 식당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요컨대 웬만한 규모의 식당에서는 더 이상 술을 먹으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전에는 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손님이 잘 찾지 않던 30평 이하의 작은 식당으로 술꾼들이 몰리는 특이한 현상이 연출됐다.
이유는 간단한다. 국민건강증진법의 규정을 받지 않아 담배를 피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술을 마시다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워야 한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대화가 끊기는 건 물론이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면 날씨 탓에 밖에 나가는 자체로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술집이 있다고 한다면, 흡연자들이 이런 식당을 마다할 리 없지 않겠는가. 규모가 작은 식당 입장에서는 손님이 몰리고 매상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특히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은 매출 증대의 일등 공신으로 기능했다.
3. 헤이딜러 사건이 기업에게 주는 3가지 교훈
2016년 1월에 발생한 헤이딜러 사건이 기업경영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국회 리스크, 즉 입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사업의 존망이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늘 국회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국회의 입법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지만 단순히 입법 동향을 파악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단계별 대응전략을 수립해 맞설 수 있어야 자신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헤이딜러는 이 세 가지 모두에 어두웠던 탓에 결국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이 발의된 지 두 달 만에 멀쩡한 사업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개인이나 기업 입장에서 ‘국회 리스크’란, 정부 입장에서의 그것과 달리 법 개정을 계기로 기존 이익을 침해받거나 새로운 것을 할 수 없는 것 혹은 멀쩡한 사업이 존폐기로에 놓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회 리스크에는 국회가 법안 통과를 가로막는 것과 함께 이처럼 법 개정 또는 제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사업이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과 개인 입장에서는 전자에 비해 후자, 즉 국회에서의 법 개정으로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거나 심한 경우 문을 닫는 상황이 더 중요한 것이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을 계기로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은 더 자주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 기업(개인)은 과거와 달리 ‘국회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비란 단순히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동적 대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과 기업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고 더 확대하기 위한 법안을 입안하고, 나아가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 대응’도 포함된다. 헤이딜러 입장에서 보면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입법을 매개로 한 상대의 공격에 수동적으로 당한 것이지만, 반대로 중고자동차 매매상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업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 입법 활용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입법 마인드’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입법 마인드란, 우선 기업 스스로 변화한 환경에 대응해 ‘국회 리스크’를 인식하고 정확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규제를 가해오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함께 각 단계별 대응전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개별 회사 혹은 업역(業域)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과 절차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관련된 전문 인력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