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선 자원개발, 실패 트라우마 극복해야"
조성훈(머니투데이 경제부 차장)
# 지식경제부와 한국석유공사가 최근 4조7000억원에 인수한 캐나다 하비스트에너지(이하 하비스트)의 확인 매장량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경부와 석유공사는 지난달(2009년 11월) 22일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하비스트의 올해 1월1일 기준 확인 매장량이 2억1990만 배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비스트가 올해 9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한 기업자료에 따르면 확인 매장량은 1억500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지경부와 석유공사가 발표한 확인 매장량보다 약 6990만 배럴 적은 것이다. 다만 추정 매장량(Probable reserves)을 포함할 경우 매장량은 2억2000만 배럴이다....(중략)
막대한 혈세가 새고 있다.
지난 2009년 한 언론(머니투데이)이 내보낸 '석유공사 하비스트 확인매장량 부풀렸다'는 제목의 기사다. 정부와 석유공사가 인수한 캐나다 석유회사 하비스트 에너지의 확인매장량과 추정매장량을 뭉뚱그려 발표해 뻥튀기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주목받지 못하던 이 보도는 이후 사실로 확인됐고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양파껍질까듯 부실의 실채가 속속 드러난 것이다.
하비스트는 우리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47%나 얹어주고 39억 5000만달러, 우리돈 4조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 사들였던 회사다. 그러나 4년뒤인 2013년 석유공사는 이를 전격 매각하기로 했고, 그나마 원매자가 없어 이마저도 수년째 공회전중이다.
석유공사가 제출한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하비스트의 현재 청산가치는 13억 8000만달러로, 우리돈 1조 5000억원이지만 청산시에도 약 1조 2000억원의 자금을 주고 팔아야한다. 하비스트와 석유공사가 직간접적으로 부담하는 차입금과 매입채무가 24억 1000만달러가 달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투자된 자금에 청산자금까지 더하면 45억 2500만달러, 우리돈으로 5조 4372억원이 날아가는 셈이다.
비단 석유공사만이 아니다. 광물공사는 암바토비 니켈 프로젝트 하나만으로 5년간 당기순손실 3조 8700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에너지자원공기업들의 5년간 당기순손실은 8조 12000억원에 달한다. 2007년 103% 수준이던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6905%까지 치솟았다. 또 석유공사는 64%에서 453%로, 가스공사는 228%에서 321%로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당시 에너지 공기업들은 정부의 자원 자주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의 에너지 기업들을 무리하게 인수한 게 화근이다. 당시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들에 목표를 채울 것을 독려했고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50달러를 넘나들던 유가가 절반이하로 떨어지면서 자산가치가 급락하고 적자도 심화되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수십조원의 막대한 혈세를 날렸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독려와 공기업들의 안이한 판단이 빚은 참극이다.
구조조정의 칼을 뽑다.
정부는 최근 에너지공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을 뽑았다. 지난 6월 발표된 구조조정 방안에서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부실이 누적된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에 대해 구조조정과 함께 해외자원개발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에너지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이후 발표한 자원개발 추진체계 개선방안을 통해 향후 원칙적으로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신규투자를 차단하기로 했다. 석유공사는 비축을, 가스공사는 가스도입 연계사업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자원개발 3사는 현재 해외에서 탐사사업 37개와 개발, 생산사업 54개등 91개 프로젝트를 운영 중인데 향후 신규투자는 민간기업과의 공동투자나 자산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투자로만 제한한다는 것이다.
석유, 가스공사의 비핵심자산은 매각하고 핵심자산은 경영관리를 통해 가치를 높여가도록 했다. 부실이 심각한 광물공사의 자원개발 기능은 사실상 폐지수순을 밟도록 했다.
정부는 장차 자원개발 투자를 민간위주로 전환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공기업과 함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민간자원개발 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다. 이를위해 민간의 수요가 많은 성공불융자 제도를 부활시키고 세제지원도 연장하기로 했다. 성공불융자제도는 해외자원개발 등 리스크가 큰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에 정부가 지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실패시 융자금을 면제해주고 성공시에는 원리금과 특별부담금을 징수하는 방식이다. 성공가능성이 낮은 경우 일부러 실패를 선택해 혈세를 낭비해 '눈먼돈'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올들어 폐지됐던 제도다.
이명박 정부당시 추진된 해외자원개발 부실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구조조정에대한 비판도 만만치않다. 과거의 실패 흔적을 지우기위해 자원개발 자체를 지나치게 옥죄려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예컨대 민간기업의 역량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은 방향전환이 자칫 해외자원개발 체계 전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우리 민간기업들의 일일 생산량이 4~6만배럴 수준으로 330만배럴에 달하는 영국 석유회사 BP와 같은 메이저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공기업이 자원개발에 나설수 밖에 없는 것은 애시당초 체급차이가 크고 위험부담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민간 석유회사들 조차 "글로벌 메이저에 비해 공기업이 역량이 미흡한게 사실이지만 그 역량도 30년간 쌓아올린 것으로 사장된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노형욱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이 6월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에너지, 환경,공공기관 기능조정과 관련하여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해외자원개발로 나아가다.
그러나 현재 정부내에서 해외자원개발은 여전히 일종의 금기어와 같은 상황이다.
감사원도 지난해 11월 석유공사 등 자원3사가 추진한 사업중 10여개 사업을 우선 매각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자산을 팔아 빚을 줄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업들은 아예 내년까지 매각시점을 정하기도 했다. 해외자원개발 예산은 지난해보다 73%깎였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정부예산을 포함한 우리 해외자원개발 투자규모가 일본과 중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과거보다 한 풀 꺾였지만 최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여전히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때문에 실패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원개발 자체를 배격하는 것도 경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한 관계자는 "무작정 에너지 자원 자급률을 높이자는 성급한 정책도 문제이나 고유가때 자산을 사들이다보니 저유가로 전화돼 실패한 것"이라며 "2000년대 후반 유가가 150달러까지 올라갈때는 자원개발을 왜 안했느냐는 비판이 많아 공기업들이 뛰어든것"인데 정치적으로 몰아가면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자원공기업 대표는 "그래도 자원공기업에 국내전문가들이 모두 모여있고 해외현장에서 실전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하는데 무작정 해외사업을 하지말라고 하면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만약 저유가가 끝나고 고유가가 오면 그때는 다시 자원개발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올텐데 실력과 경험없이 어떻게 그때를 대비할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