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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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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 지금이 적기다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

 

올 여름은 참 대단했다. 덥기도 더웠지만 더위가 지속된 기간도 길었다. 7월말부터 시작하여 한 달 가까이 열대야가 지속되었을 정도로 더위가 맹위를 떨쳤다. 마치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냉방수요는 무더운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만 무더위의 지속기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덥기도 더웠지만 이 더위가 물러가지 않고 계속되니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올여름은 집집마다 에어컨을 사용한 시간이 무척 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8월 대비 올해 8월 전기요금이 50% 이상 증가한 가구가 189만 가구에 달했고 이 중 73만 가구는 5만 원 이상 요금이 증가했다.

 

냉방수요로 인해 8월에 급증한 전력소비를 잊을만할 때가 되자 추석을 전후하여 전국의 가구에 무시무시한 8월의 전기요금 고지서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요금폭탄이 배달되어 각 가정에서 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소보다 20-30만원 전기요금이 더 나온 수많은 가정에서는 특별히 감면받은 2-3만원의 할인 폭은 생색내기 정도로 비춰졌다. 유가파동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요금 누진제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에 맞는 요금체계라고 할 수 없다. 정부나 한전이 시대변화와 삶의 패턴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급률이 80%를 넘어섰다. 올해와 같은 폭염 속에서는 에어컨은 직장인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 줄뿐 아니라 노인들과 애기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정부가 한편으로는 폭염경보를 내리면서 집밖으로는 가급적 나가지 말라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에어컨을 조금만 틀라고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연중 무더위가 오래 지속되는 싱가포르와 홍콩은 에어컨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미국 북부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rust belt)가 쇠락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남부의 선벨트(sun belt) 지역의 휴스턴, 댈러스, 애틀란타, 마이애미, 올란드, 피닉스, 라스베이거스 등과 같은 대도시 역시 에어컨이 없었다면 그 존립이 위태하였을 것이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누진제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누진단계는 6단계이며 누진률도 무려 11.7배에 달한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가 모자랐던 경제개발기의 유산이다. 전기는 저장이 불가능하여 최대 전력수요보다 더 많은 용량의 발전설비를 건설해야 한다. 누진제와 같은 요금제도를 통하여 최대 전력수요를 줄일 수 있다면 엄청난 건설비가 들어가는 발전소를 안 지어도 되니 누진제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도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국민들의 편안한 삶도 공장의 가동에 못지않은 중요한 가치를 부여받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은 주택용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14% 이하이다. 최대 전력수요에 미치는 영향도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낮 시간에 사용이 급증하는 일반용과 수요의 55%를 넘는 산업용이 최대 전력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하여 정부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오래전부터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진제는 여러 가지 사유로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누진제 완화가 낮은 구간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서민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부 때에는 고유가로, 이명박 정부 때에는 전력수급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지금이 가장 적합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누진제 완화의 적기이다.

 

이번이 가장 누진제 완화의 적기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력수급이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올 여름처럼 전력수요가 높이 올라간 상황 하에서도 전력의 공급은 예비율 수준이 8% 안팎이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석탄 및 원전의 완공이 향후 몇 년간 줄줄이 계획되어 있다. 비록 누진제를 완화하여 전력소비가 급증하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저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 연료가격이 낮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완화하면 일시적으로 한전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최근에는 저유가와 이에 따른 낮은 연료비로 한전의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 특히 한전이 전력시장에서 도매로 사들이는 전기요금인 SMP에는 국제 가스가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전반적으로 연료가격이 낮기 때문에 그 수준도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 한전이 도매로 사들이는 전력의 구입비용이 높지 않은 반면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한전의 영업이익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쉽게 말해 전력을 싸게 발전소로부터 도매로 사고 팔 때에는 높은 누진단계에서 비싸게 파니 한전의 수익성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한전이 이처럼 다소 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니 누진제를 완화하기에는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말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비롯하여 여러 요금제도도 한꺼번에 고치자는 논의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는 불합리한 점이 많아서 손볼 곳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발전소에 가까운 지역이나 먼 지역이나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전기요금을 내는 불합리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여러 가지를 모두 고려하면 한 가지도 제대로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 국민들은 잘못된 전기요금 구조를 고쳐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겨울이 무척 추울 수 있고 또 내년 여름도 올해처럼 더우면 요금폭탄이 또 날라 올 수 있으니 먼저 누진제부터 고쳐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다. 이번에는 먼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집중하여 이를 고쳐야 할 때이다. 나중에 요금수준을 변경하거나 다른 전기요금 구조를 손봐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그 때가서 또 바꾸면 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한다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은 이번에도 물 건너가게 된다. 일단 누진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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