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석탄화전을 조심하라"
글 세계일보 사회부 조병욱 기자
미세먼지가 찾아오다
미세먼지는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물질로 건강에 치명적
환경부에 따르면 국외영향은 30~50%, 나머지는 국내요인
봄철 불청객 황사가 주춤하자 요즘은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계절을 가리지도 않는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미세먼지는 주로 중국에서 넘어오지만 국내에서 자체 발생한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세먼지는 지름 50∼70마이크로미터인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지름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물질(PM10)이다.
이중 지름 2.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입자(PM2.5)를 초미세먼지라고 부른다. 미세먼지 입자가 작을수록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들러붙기 쉽고 바람을 타고 더 멀리 이동한다. 미세먼지가 위험한 이유는 토양과 중금속,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등 1차 입자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 오존, 수증기 등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이산화질소, 황산염 등 2차 입자가 건강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대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 먼지 중 국외 발생 분은 30∼50% 수준이며 나머지는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산업시설이 주요 미세먼지 발생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이 가운데 최근 증설을 추진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미세먼지의 원인을 규명하다
증설 추진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제 심각
그린피스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의 유해물질로 매년 1100여명이 예상보다 조기 사망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45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미세먼지의 가장 큰 원인이 화력발전소”라며 “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할거냐”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올해 내놓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강피해’ 보고서를 보면 그 피해는 무서울 정도다. 충남 태안과 당진, 전남 여수 등에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연간 최대 4만여명이 조기 사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석탄화력발전소의 유해성을 지정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움직임에 더디기만 하다.
그린피스의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초미세먼지(PM2.5), 이산화질소 등 인체유해물질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100여명이 예상 수명보다 먼저 숨진다. 국내 곳곳에서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53기에 더해 정부가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는 11개 지역 20기에 달한다.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라면 예정된 석탄화력발전소 신·증설 공사가 모두 끝나는 2030년에는 70기가 넘는 발전소가 돌아가게 된다.
그린피스가 신규 발전소 20기의 평균 운영기간을 40년으로 두고 유해물질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40년간 4만800여명이 발전소에서 나온 유해물질 때문에 일찍 숨을 거둘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 환경청(EPA)이 사용하는 오염 피해 시뮬레이션인 대기오염모델링시스템(CALPUFF)을 이용했다.
충남과 전남 지역을 포함해 강원도 삼척, 고성, 강릉 등에서도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당진에서는 매년 최대 470명, 태안에선 390명이 폐암과 허혈성 심장병, 뇌졸중 등으로 일찍 사망한다. 발전소가 약 40년 동안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당진 인구(16만명)의 12%가 수명보다 일찍 목숨을 잃는 셈이다. 전체 인구가 6만명에 불과한 태안에서는 이 비율이 무려 26%에 달한다. 주민 4명 중 1명 꼴이다. 그 밖의 지역에서도 매년 적게는 60명에서 많게는 200여명이 사망하게 될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지역에서는 작은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사망자들 대부분은 발병 원인조차 모르고 숨질 가능성이 크다. 공기 중 떠다니는 유해물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다 개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발병 정도와 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또 발전소가 내뿜는 이산화질소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과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진 주민의 47%는 발전소 건설을 반대했지만 이들의 의견은 무시됐다.
석탄화력발전소 증설
우리나라의 1인당 석탄소비량 세계 5위
석탄은 더 이상 ‘친환경’, ‘값싼’ 에너지원이라는 주장은 거짓말”
지난해 12월 파리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주요 의제는 ‘화석연료의 종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참가국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0% 이상 줄이기로 합의했고, 이를 위해 화석연료 사용 중단은 필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체 전력 생산량의 3분의 1을 석탄에 기대고 있다. 1인당 석탄 소비량은 중국, 미국, 일본을 제치고 무려 세계 5위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 정부가 새 전력계획을 세우면서 민간기업들을 대거 참여시킨 탓이다.
전력 생산을 맡게 된 국내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연료 원가가 싸고 설비가 단순해 돈이 적게 드는 석탄화력발전을 택했다. 파리 협약 당시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약 37%를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전력산업연구회의 분석 결과 이를 위해서는 12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야 하지만, 선언과는 정 반대로 20기를 더 짓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각국은 더 이상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효용보다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흔히 미세먼지 배출 주범으로 여겨지는 중국은 올해 안으로 베이징의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 3년 동안은 신규 석탄 광산을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은 이미 석탄화력발전소 655기의 문을 닫았고, 앞으로 619기를 더 폐쇄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규모의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탄 관련 사업 비중이 30%를 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기로 했다. 독일계 보험회사 알리안츠 등 400여개 국제 투자기관들도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등 윤리적 문제를 고려해 석탄 및 석탄발전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결정했다. 블룸버그 뉴 에너지 금융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105억 달러(약 128조7656억원)를 재생가능 에너지에 투자했고, 이어 미국이 560억 달러(약 65조2568억원), 인도는 전년대비 23% 늘어난 109억 달러(약 12조7017억원)를 쏟아부었다.
환경단체들은 석탄화력발전소의 증설 계획을 철회하고 환경영향평가를 현실성 있게 강화하라고 주장한다.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는 “국민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며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정확하게 실시해 발전소 주변 지역뿐 아니라 대기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을 고려한 건강피해와 환경피해 비용을 산출해야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도 성명서를 통해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초래되는 조기사망을 비롯한 건강피해, 기후변화 비용을 고려한다면 석탄은 더 이상 ‘친환경’, ‘값싼’ 에너지원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시민들은 깨끗한 공기를 원한다. 발전기업들은 대기오염 저감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생각과 기술 전환 시급
석탄산업이 직면한 “환경”과 “경제” 암초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 노력 필요
석탄화력발전소는 환경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사양산업에 접어들었다. 그린피스 손민우 기후에너지 담당자는 “석탄화력발전은 경제적 관점에서도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석탄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철회 방침이 이어지고 있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세계 주요 투자기관들의 투자철회 선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자산 규모 100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규모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올해 1월부터 석탄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방침을 밝혔다. 노르웨이 의회는 이미 지난 6월 매출액이나 전력 생산량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 대한 투자 회수를 결정했다. 아직 정확한 투자 철회 규모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금융권에서는 전 세계 122개 기업에 투자했던 87억달러(약 9조7000억원)이 회수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는 한국전력에 투자된 1600억원도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독일 RWE, 중국 선화, 미국 듀크 에너지, 호주 AGL에너지, 일본 전원발전(J-Power) 등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도 투자 철회대상으로 점쳐 진다.
지난해 12월에는 다국적 은행인 모간스탠리와 웰스파고은행이 석탄업체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도 석탄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공식화 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의 분석 보고서를 보면 세계 전력 발전시장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이후 9%포인트 감소했다. 은행은 해당 비율이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내려가면 이 속도는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국 대형 석탄 업체들의 주식을 추적하는 다우존스미국석탄지수는 2011년 7월 이후 최근까지 95% 하락했다. 발전용 석탄 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 t당 약 51달러(약 5만7000원)로, 2011년 시세인 t당 150달러(약 17만원)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석탄산업이 ‘환경’과 ‘경제’라는 두 가지 암초를 만난 것이다. 다국적 은행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기후변화가 국제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적절한 배출가스 정화설비 없이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의 신축 및 확장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줄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번 그린피스의 보고서는 그동안 인간을 이롭게 했던 에너지원이 사실은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빨리 알아챈 에너지 선진국들은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특히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 됐다.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도 이 같은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생각과 기술의 전환이 시급하다.